‘후드득’ 빗방울 소리가 난간을 치더니 곧 비가 쏟아진다. 앞산에 비구름이 낮게 깔려 있더니 비가 내린다. 겨울비는 잎이 마른나무도 꼭 필요하지만 도시에 사는 우리에게도 메마른 정서를 적시는데 큰 도움이 된다.
집 아래 마당의 나무에 닿는 빗소리가 꽤 크게 들려온다. 거실로 드는 바람에 비가 묻어 겨울 냄새가 밴 찬 기운이 몸에 전해온다. 컴퓨터를 켜고 블로그에 저장해 놓은 비 노래 모음을 틀어 쓸쓸한 겨울 분위기에 젖어본다.
아침마다 눈을 뜨면 처음 일이 뒷방 창문을 열고 뒷산 숲에서 불어오는 산바람을 집으로 들여놓는 것이다.
창문을 열면 바람에 산새가 지저귀는 소리도 덤으로 묻어온다. 산에 바로 면해 있는 언덕 위의 집이라 지하철에서 걸어서 15분 거리, 급경사 길을 가쁜 숨을 몰아쉬며 올라야 한다. 그렇지만 그 대가로 얻는 건 돈으로는 살 수 없는 가치다.
남향집의 1.2미터 처마가 주는 혜택 또한 말로 이를 수 없다. 여름에는 햇살이 거실 문지방을 넘어서지 않는데 겨울이면 거실 마루로 반이나 넘어온다. 처마가 있는 남향집, 비 오는 정취를 창을 열어 놓고 빗줄기를 소리까지 담아 바라보고 즐긴다.
이 정도로 우리 집을 소개하면 산속에 있는 전원주택으로 상상할지 모르겠지만 사실은 오래된, 소위 구축 아파트의 풍경이다. 이 아파트는 산을 깎아 집을 짓다 보니 2개 층은 옹벽으로 높아져 9층 높이에 있는 7층이 우리 집이 되었다. 앞으로는 9층 높이에 있지만 뒤는 바로 숲을 보게 되어있다. 길이 끝나는 곳이 아파트 입구다 보니 차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앞 동 사이로 보이는 경관은 동네가 내려다보이고 멀리 산이 보이니 산에 사는 감흥을 온전히 누리게 된다.
이제 이 정도로 우거寓居를 소개하고 요즘 말이 많은 아파트 발코니 확장 문제를 얘기해보자. 전 세계에서 우리나라 사람처럼 집 평수에 민감한 사람이 있을까 싶다. 전용면적 25.7평이면 네 식구가 사는데 큰 불편이 없을 것인데 집에 붙어있는 발코니는 전부 확장을 한다고 난리다. 어른을 모시고 살기에는 방이 작으니 두 명이 한 방을 쓰기 위해 방을 일부 넓히는 것은 이해가 가지만 거실까지 확장을 하는 통에 실제 발코니는 안방 앞 정도를 남기고 다 없애 버렸다.
없애지 못해 안달하며 불법으로 확장하지 않는 집이 없다시피 해서 이젠 아예 합법화되고 말았다. 웃기는 얘기지만 이제 신축 아파트는 미리 확장된 도면으로 지어진다. 그러니 아파트 발코니는 아예 사라져 버린 셈이다.
아파트 발코니는?
구축 아파트에는 있고 신축 아파트에는 없는 발코니의 고유기능을 생각해보자. 발코니의 가장 큰 기능은 주택에 있는 마당을 대체하는 역할이다. 그 공간에 화단을 만들어 화초나 작은 나무를 심기도 하고 아니면 화분을 놓는다. 빨래도 널고 바깥바람을 쐬기도 한다.
또 하나를 살펴보자면 방재의 기능이다. 실내에 화재가 발생했을 때는 발코니를 통해 옆집으로 피난을 해야 하고, 밑층에서 불이 났을 때 외벽을 타고 올라오는 불길이나 연기를 막을 수 있는 역할을 하게 된다.
그다음은 정서적인 부분이다. 발코니가 없이 외벽에 창을 설치할 경우 창의 높이는 안전 등의 이유로 높아지게 되므로 방은 폐쇄적인 상황을 벗어나기 어렵고 창이 높더라도 침대 등 가구를 설치하면 위험할 수 있다. 발코니가 면해 있으면 그 공간이 외부와의 완충공간이 되므로 안정된 공간 분위기를 가지게 된다.
또 차양의 기능을 생각해보자. 차양이 없는 창에 면한 방은 햇살을 견디기 어렵고 여름이 아니더라도 직접 광선이 드는 방을 커튼으로 조절해야 하므로 그 불편한 생활을 견뎌야 한다. 이때 발코니는 차양이 된다.
또 발코니는 1.2~1.5 미터가 빠져나온 처마의 역할을 하게 된다. 우리나라의 기후 특성상 난방을 하는 겨울을 제외하고는 창문을 열어놓고 생활하게 되는데 비가 올 때 처마가 없으면 창문을 닫아야 한다. 비 온다는 일기예보가 없어 창문을 열어두고 외출을 했는데 비가 쏟아지기 시작한다. 발코니가 있는 집은 아무런 걱정이 없지만 발코니 없이 창을 열어둔 집은 큰 일이지 않은가? 처마가 있는 집은 비와 관계없이 창을 열어 놓을 수 있지만 처마가 없는 집은 닫아야 한다. 습한 여름에 창을 닫고 우기를 넘겨야 된다면 얼마나 갑갑할 것인가?
아파트 발코니가 사라졌는데?
발코니를 확장해서 발코니가 없는 집이 되면 이 모든 것이 문제가 된다. 이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당연히 발코니를 그대로 두면 된다. 글의 서두에 언급한 우리 집의 괜찮은 분위기는 발코니를 확장하지 않고 살면 얻어지는 것이다.
정서적으로나 기능적으로나 발코니를 확장한 아파트에 비해서 얼마나 살만한 분위기인가? 전면만 열린 초고층 아파트는 발코니 확장 문제가 아니더라도 주거로서는 완전 꽝이다. 맞통풍이 될 수 없으니 앞에 넓은 창이 있어도 환기가 어려운 데다가 안전 상의 이유로 개폐가 거의 되지 않으니 폐쇄적인 공간에 갇혀 있는 형국에 살아야 하는 것이다.
높이 지은 집에 산다고 사람까지 높아지는 것이 아닐 것인데 상상을 초월하는 분양가에도 그 집을 분양받는 사람이 많은 것은 필자로서는 이해하기 어렵다. 과밀한 대도시라면 주변의 여건 때문이라지만 소도시 까지서도 그런 집으로 주거건축이 이루어지는 것은 사용자의 무지를 이용하는 것은 아닐까?
발코니가 주는 혜택으로 행복한 우리집
다시 우리 집으로 이야기를 돌려본다. 구축 아파트는 이제 오래된 집이라 집값은 해가 지나도 오르지 않는다.
오르기는커녕 부동산 중개사무소에 붙은 집 매매가를 보면 썩 기분은 좋지 않지만 이 집을 떠나고 싶은 마음은 그렇게 들지 않는다. 아파트라지만 어차피 내가 살기 위한 집이 아닌가?
발코니 확장을 합법화했던 논리가 더 좋은 주거환경을 만들기 위한 배려가 아니라 사람의 욕심을 깔고 이루어진다는데 문제가 있는 것이다. 우리의 주거가 이제는 아파트 위주로 다 이루어지는 지금, 새로 지으려고 하는 아파트가 더 나은 주거환경을 위함이어야 할 것인데 부동산적인 경제 논리나 표를 얻기 위한 정치논리가 우선이라면 회복하기 어려운 우를 범한 것이 될 것이다. 도시의 그림이 되는 새 아파트들이 그 속에 사는 사람을 병들게 하는 집이라면 그 책임을 누가 져야 할 것인가?
아파트라지만 어차피 우리 식구의 일상을 행복하게 담기 위해 사는 집이 아닌가?
아파트가 처음 지어졌을 때 사람들은 닭장이라고 부르며 누가 거기에 살겠나 하고 조소했다. 그렇지만 이제는 사람의 집을 버리고 아파트 생활에 잘 적응해서 집다운 집을 만들어가면서 사는가 했는데 다시 닭장과 같은 집을 만들어 살려고 하는 게 아닌가 싶다.
창을 닫고 사는 겨울이지만 곧 봄이 오고 창을 열게 될 것이다. 봄이 오면 뒷방 창문을 열어 산 숲에서 들려오는 바람소리, 새소리를 집 안에 들일 것이다. 거실에 앉아 화분에 담긴 나무지만 잎새 사이로 보이는 비 그치고 갠 밤하늘에 구름에 걸린 달도 발코니를 내려다보지 않을까?
오래된 아파트의 발코니가 주는 작지만 깊은 행복
집 밖에선 세상과 다투는 일과에 시달리지만 집에서 누리는 일상은 평안했으면 좋겠다. 오래된 아파트의 발코니가 주는 작은 행복을 글로 표현해보니 나의 우거寓居만 한 곳이 없다. 이 얼마나 다행스러운가?
바람소리가 스산해서 그런지 홀로 잠들지 못하고 깨어 있다. 이제 먼저 잠든 아내의 숨소리를 자장가 삼아 잠을 청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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