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집, 텃밭과 마당을 바라보며
지금까지 내가 살고 있는 집 이야기를 해 볼까 합니다.
돌아가신 아버님이 물려준 사십 년 묵은 이 집에서 고2부터 지금까지의 내 삶이 엮어져 왔습니다. 청춘이 지나 사십대 중반에 와 이제는 내 아이가 고3이 되어 있으니 한세대를 산 것이지요. 이 곳으로 이사 올 때 이 근방에서는 최신 유행의 가장 좋은 집이었는데 이제는 나이를 먹어 낡은 집이 되었습니다.
이 자리에서 시간이 사람을 키우고 나무도 키웠지만 집은 황폐하게 만들었나 봅니다. 옥상에 방수처리가 상해서 비가 새고 낡은 창문은 약한 바람에도 덜컹거립니다. 몇 번 칠한 페인트도 오래되어 외관은 흉하기 짝이 없습니다. 마루바닥도 상해서 내려앉고 비 새는 벽에는 곰팡이도 보입니다. 집 밖에 있는 화장실, 세면장도 이제 버틸 만큼 버틴 모양입니다. 한 겨울에 바깥에 나가 일을 보는 것도 이제는 한계인 듯 가족들의 불평이 해가 갈수록 심해집니다.
딸아이는 이 집에서 태어나 이십 년을 살았습니다. 아빠를 사랑하는 지 불평 없이 살아 준 딸아이가 예쁘기 그지없지만 이제는 부끄럽습니다. 내 아내는 어떨까요? 돈을 모르는 남편을 하늘 받들 듯 살아온 그녀는 이 집을 버텨온 기둥입니다.연탄 아궁이를 기름 보일러로 바꾼 것도 그녀이고, 단열이 안 되는 블록 벽에 스티로폴을 대어 따뜻하게 살게 한 것도 그녀입니다. 저는 참 간 큰 남편이지요.
이제 그렇게 살아온 우리 집 안으로 들어가 볼까요? 그 전에 바깥부터 봐야겠군요. 100평이나 되는 땅을 반으로 나누어서 바깥마당이 오십여 평이 있고 담을 쳐서 오십여 평에 스물 다섯 평의 집이 앉아 있습니다. 안뜰이라고 하기가 그렇지만 감나무가 한 그루 있고 화단에는 천리향, 유자나무, 장미, 향나무, 은행나무, 팔손이등 나무 밑에 백합도 핍니다. 현관 옆에는 장독대도 있지요. 그 옆에 지하수를 쓰는 우물도 있답니다.
현관으로 들면 마루가 있고 안방은 장지문으로 되어있어 제가 늦게 들어오면 어머님 잠을 깨우기 때문에 조심해야 됩니다. 마루 앞에는 테라스를 개조해 부엌을 만들어 놓았습니다. 큰며느리를 들인다고 아버님이 손수 입식 부엌으로 개조했으니 시아버지의 며느리 사랑이지요.
마루의 왼쪽이 딸아이 방입니다. 이 방에서 태어나 지금까지 살고 있는데 창을 열면 장미가 보입니다. 마루의 오른쪽이 아내와 쓰는 우리 방인데 열한 자 열네 자 되는 큰 방으로 안방보다 크지요. 아파트로 가게 되면 이 점이 제일 고민입니다. 아파트는 큰 방이 하나 밖에 없기 때문에 작은 방을 어머니를 드리게 되면 섭섭하실까봐 걱정이지요. 거실은 없지만 우리 식구는 이 집안에서 불편을 잊고 여태껏 살았습니다.
바깥마당에는 무화과나무 두 그루, 대추나무 두 그루, 유자나무 한 그루, 동백나무 두 그루가 있는데 감나무 한 그루는 이번에 큰 길이 집 앞으로 나면서 베어졌습니다. 남은 땅에는 텃밭을 만들어 옥수수, 고구마, 상추, 파 등 온갖 야채를 갈아먹었습니다. 야채 농사는 어머니 몫이었는데 올해는 집을 팔려고 준비하는 바람에 이제는 짓지 않으실 모양입니다.
이사 올 때 없던 고층 아파트가 이제는 주인인양 산을 가로막고 서있습니다. 그 곳에서 내려다보이는 우리 집은 어떤 풍경일까요? 이제는 집 주변에도 새 집으로 다 둘러싸여 오래 된 우리 집은 헐어내야 하는 흉물로 보이겠죠.
집은 오래되어 형편없고 버려지다시피 한 마당이지만 봄이 되니 흙에서는 온갖 풀들이 올라와 푸른 잎과 꽃을 피우고 나무에는 잎이 달리기도 전에 꽃이 핍니다. 이제 이 집의 주인은 풀과 나무가 되었습니다. 지천으로 나는 민들레는 한참 노란 꽃을 피우고 있습니다. 이름 모르는 파란 꽃과 분홍 꽃도 무리져 피어있습니다. 나리와 백합도 한참 잎을 키우고 꽃대를 올리고 있습니다.
텃밭에 방아도 이제 된장국에 넣어먹을 정도로 잎사귀가 컸습니다. 마당구석에서 산마도 촉을 올리고 더덕도 줄기를 뻗기 시작합니다. 산마는 온 마당에 퍼져 굵은 줄기 밑을 파 보면 어떤 것은 아기 팔뚝만하게 큰 것을 뽑기도 합니다. 제가 즐겨 먹는데 남자들에게 좋답니다.
대추나무는 아직 겨울가지 그대로입니다. 여름이 가까워야 잎을 낼 모양입니다. 감나무는 벌써 큰 잎으로 모양새를 만들고 있습니다. 무화과는 잎보다 열매가 먼저 나와서 크고 있습니다. 너무 자라서 베어버린 은행나무는 그 남은 둥치에서 가지가 올라와서 내 키만큼 커졌습니다. 그 가지에 난 여린 잎이 예쁩니다.
천리향은 꽃을 피워 향기를 자랑하고는 이제 무성하게 잎을 키우고 있습니다. 줄장미도 너무 자라 잘라내었는데 새 가지가 벌써 많이 뻗어 조금 있으면 꽃봉오리를 만들겁니다. 유자나무는 심지도 않았는데 씨가 떨어져서 이제는 내 키를 넘게 커버렸습니다. 탱자나무와 접을 붙여야 열매가 연다고 하는데 아직 그러지 못해 그런지 한번도 열매를 보지 못했습니다.
향나무는 우리 마당에서 제일 보기가 불편한 친구입니다. 마당의 가운데 있으면서 너무 위로 자라서 손을 대지 못해 꺽다리처럼 키만 크지요. 쉰 평 정도의 작은 마당에 온갖 풀과 나무들이 자라 이제는 보기 흉한 집을 치장하고 있습니다.
땅 팔릴 날만 기다리는 우리는 떠날 준비를 하는데 그걸 모르듯 꽃을 피우고 잎을 키우는 풀과 나무들에게 미안할 뿐입니다. 작은 나무는 우리와 떠날 수도 있겠지만 큰 나무는 그곳에서 아마도 마지막을 맞이해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오래된 집, 버려진 마당에서 벌어지는 풀과 나무들의 잔치는 슬프게 아름답습니다.
길도 없고 집도 없던 외딴 장소이던 우리 집이 길이 나고 집들로 둘러싸여 이제는 빈 마당마저 없어져 버려야하니 나무와 풀은 갈 데가 없습니다. 나무와 풀이 우리와 함께 살 수 있는 그런 동네에서 살고 싶습니다.
2003년 봄 날 마당을 바라보며 이 글을 씁니다.
이제는 돌아갈 수 없는 옛집을 떠나면서 썼던 글입니다.
아파트 생활에 젖어 살면서 옛날에 썼던 글을 보니 집은 불편했지만 마당을 밟으며 살았던 그 시절이 그립군요.
언제나 마당 있는 집에 살 수 있을까요.
무 설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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