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이야기/풀어 쓰는 건축이야기

발코니 있는 아파트라야 吉宅길택

무설자 2005. 12. 12. 1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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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 신문사에 기고원고로 썼는데 원고가 밀려있다해서 게재를 하지 못했습니다. 써 놓은 글이라 블로그에 올려 봅니다. 먼저 올린 글의 후편이라고 할까요? 이제 시행을 눈앞에 두고 있는데 참 안타까운 일입니다.

                                                                             

발코니 있는 아파트라야 吉宅

                                                                                                                             김 정 관

 

인공위성에서 지구를 내려다보면 사람이 만든 구조물 중에서 만리장성이 먼저 보인다고 했던가? 우리나라를 보면 어떨까? 아마 아파트만 보일지도 모른다. 시골에서 도시까지 거의 아파트가 원시시대의 공룡처럼 전 국토를 점령하고 있다.

 

노태우 정권 때 200만 호 공급이라는 물량 위주로 지어내다가 이제는 질적으로도 많이 나아져 괜찮은 주거 공간으로 정착이 되어가는 듯하다. 하지만 정말 아파트가 제대로 사람이 살만한 집일까라는 고민은 별도의 화두로 두어야 할 것 같다. 특히 발코니 확장이 합법화되어 외부 공간이 사라져 버린 신축 아파트는 좋은 집이라는 관점에서는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우리 선조들은 집을 단순히 물리적인 의미로만 보지 않았다. 집마다 그 집안의 가풍을 담아서 짓고 대를 물려 살면서 先代선대의 정신도 함께 이어왔다. 집을 고칠 때도 정신적인 면이 훼손되지 않도록 신중을 기했다. 그러니 집을 똑같이 지을 수 없었다. 집마다 가풍이 다르니 집도 다르게 지어질 수밖에 없지 않은가?

 

이 시대의 집은 어떤가? 아파트 브랜드마다 약간의 차이는 있다고 하겠지만 어금버금 다를 바 없는 집에 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따라서 지어놓은 집을 분양받아서 사는 아파트에서 가풍을 따지는 건 우물에서 숭늉 찾는 식이지 않은가? 아무리 아파트라고 해도 가풍까지는 아니라고 해도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정서는 담을 수 있지 않을까?

 

아파트는 집에다 사람이 맞춰서 살게 되니 삶의 행태도 비슷비슷하게 닮아가게 된다. 사람이 집을 짓지만 나중에는 집이 사람을 바꾸어놓는다고 하는데 아파트는 우리의 삶에 어떤 영향을 주게 되는 것일까? 사업자가 공급하는 집을 설계하는 사람이 이 집에서 어떻게 살 수 있을지 고민했을 리 만무하다. 그러니 이런 측면에서 아파트는 House일 뿐 Home이 될 여지는 아예 없다고 봐야 할 것이다. 그래서 이제부터라도 아파트에 행복한 삶이라는 정서적 프로그램을 담아 Home이 될 수 있는 노력을 해보아야 할 것이다. 

아파트는 House일 뿐 Home이 될 여지는 없다고 봐야 하기에 이제부터라도 행복한 삶이라는 정서적 프로그램이 담긴 Home이 되도록 애써야 하지 않을까?

 

유리상자 안에서 사는 사람들, 초고층 호화 아파트라지만 이 집에서 행복할까?

 

지난 시절에는 발코니 확장이 불법이었음에도 묵인해오다 단속을 강화하겠다며 칼을 빼들었다가 전격적으로 합법화시켜 버렸다. 발코니 확장을 묵인해오던 것과 합법적으로 인정해 버리는 건 큰 차이가 있다. 발코니가 꼭 있어야 한다는 순 기능을 알지 못한 무지의 소산으로 일부에서 행하는 확장은 선택적인 결과였다. 그런데 발코니 확장을 합법화시켜 버리니 아예 발코니가 없는 아파트로 공급되고 있으니 선택의 여지가 없게 되었다. 아파트를 살면서 발코니가 필요한 사람마저 이제는 공급되는 대로 살 수밖에 없으니 이를 어쩌나. 

 

발코니를 전체적으로 확장해서 전용공간으로 만들어 버리면 공중에 떠 있는 집인 아파트는 반쪽짜리가 되고 만다. 집은 방과 거실 주방 등으로 쓰는 내부 공간과 기본적인 옥외활동을 위한 외부공간이 함께 있어야 한다. 여기에서 아파트의 발코니는 마당과 정원이라는 최소한의 외부 공간의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내부와 외부를 완충하는 공간으로 필요한 역할이 있다. 비가 들치는 것을 막는 처마와 내부에 과다하게 드는 햇볕을 조절하는 차양의 기능과 테라스와 주방을 지원하는 후원의 기능이 그것이다. 

 

이렇게 발코니는 내부 공간과 파트너가 되어 사람이 사는 집으로서 갖추어야 될 기본 요건이 되는 공간이다. 이 기본 요건을 무시하고 확장을 해버리면 외부공간이 없는 갇힌 집이 되고 마는 것이다. 발코니가 없으면 비가 와도 창을 열어 놓을 수 없으니  장마철에 환기와 통풍에 문제가 생기고 햇볕이 많이 드니 커튼으로 창을 막아 시야를 막아버린다. 아랫집의 화재 시 화염과 연기에 대한 대처를 어렵게 하고 내 집의 화재 시에 대피 동선의 차단 등의 인명과 관련된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정서적으로도 꽃과 나무를 심은 화분 하나를 놓을 데가 없으니 집안 분위기가 삭막해질 것이며 빗소리를 들으며 바깥을 내다보는 낭만적인 정취를 누리는 것도 제한을 받을 것이다. 발코니를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다른 집과 차별화된 ‘우리 집’으로 만들어 낼 수 있다. 거실 앞 발코니는 다양한 형태의 정원으로 꾸밀 수 있다. 식물이 테마가 되는 작은 숲을 조성할 수 있고 수공간을 중심으로 소리 나는 정원으로 만들 수도 있다. 정원으로 향하는 시선을 통해 바깥과 집이 이어질 것이다.

 

안방 앞의 발코니 폭이 2미터 정도가 되면 바닥에 마루를 높이고 바깥쪽으로 나무 난간을 놓으면 작은 정자를 꾸밀 수 있다. 이곳은 다실이 되어 바깥을 관망하는 기가 막힌 공간이 될 것이다. 이런 공간이 없다면 한 달에 몇 번이나 바깥을 보게 될까? 이밖에도 대략 네댓 곳이 되는 발코니는 다양한 아이디어로 색다르고 유용한 외부공간을 조성할 수 있다. 이렇게 만들어진 다양한 공간은 우리 집에 대한 애착을 남다르게 할 수 있고 집에서 다양한 일상의 스토리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발코니로 만들어낼 수 있는 다양한 공간이 우리집에 대한 애착을 남다르게 가질 수 있고 집에서 다양한 일상의 스토리를 만들 수 있다 

 

 

살기에 좋은 집을 吉宅이라고 한다. 길택은 음양이 함께 있는 집이다. 전용공간이 정지되어 있는 음의 공간이라면 발코니는 살아 움직이는 양의 공간이라 볼 수 있다. 발코니를 살려야 음양이 어우러지는 좋은 집이라 할 것이다. 

 

발코니를 확장하여 전용공간을 넓혀 쓴다고 좋은 집이 되는 것이 아닌데 선심정책인지 정부가 주도하여 악법을 만들어가면서 문제가 안 될 것을 문제로 만들고 있다. 만약 이로 말미암은 좋은 집이 될 수 있는 기본 조건을 없애 버린 이 문제에 대한 책임을 어떻게 감당할 수 있을까? 발코니 확장 합법화는 어느 나라에도 없는 우리나라만의 우스꽝스러운 정책일 것이다. 

 

발코니를 불법으로 확장하는 것은 어쩌면 우매한 행위라고 보아야 한다. 정부는 다양한 공간 활용의 방법을 제시하여 아파트 주거의 바람직한 방향을 제시해야 할 것인데 잘못을 더 부추기고 있으니 답답할 뿐이다. 발코니가 살아야 아파트도 사람이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길택이 될 수 있다.

 

 

 

 

무 설 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