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차는 아주 저렴한 차라서 누구라도 경제적인 부담 없이 마실 수 있다. 그런데 또 누구는 너무 비싸서 마시는 게 부담스러운 차라고도 한다. 누구는 저렴한 차라고 하고 또 다른 사람은 부담이 갈 정도로 비싸다고 하니 어느 말이 옳은 걸까?
정답은 다 맞는 말이라 할 수 있다. 둥근 모양으로 종이 포장지에 싸인 보이차는 어느 차 할 것 없이 비슷비슷해 보인다. 그런데 가격에서는 한 편에 만 원부터 백만 원 이상 하는 차까지 천차만별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한술 더 뜨면 사람에 따라서 몇 만 원짜리가 몇 백만 원 하는 차보다 더 맛있다고 하니 참 희한한 차가 보이차이다.
한 편을 끝으로 더 이상 보이차를 못 마시게 된 사람
오래전에 만났던 모 대학 교수는 선물로 받았던 보이차가 떨어지자 더 이상 마시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왜 그 교수는 보이차를 마시지 못하게 되었을까? 그가 선물로 받았던 보이차는 시중에서 구하기 어려운 차였던지 그만한 맛을 내는 차를 찾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 교수가 평소에 보이차를 마시던 분이었으면 선물로 받았던 차를 어떻게 마셔야 할지 알았을 것이다. 처음 접하는 보이차를 마시면서 그 차에 입맛이 길들여져 다른 차를 받아들이기 어려워져 버린 게 아닐까 싶다. 얼마나 특별한 차였으면 그가 마실 만한 다른 보이차를 찾지 못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보이차를 오랫동안 마셔오고 있는 내 입장에서는 어느 정도는 공감할 수 있는 얘기이다. 보이차는 다른 차에 비해 향미가 유별나지 않아 밥 같은 차라고 얘기할 수 있다. 평소에 밥을 먹으면서 맛을 음미해 가며 먹는 사람이 있을까마는 입맛이 까다로운 사람은 평소와 다른 쌀로 지은 밥을 먹게 되면 숟가락을 놓을지도 모른다. 보이차는 밥처럼 매일 마시는 차라서 입맛에 맞지 않은 차는 손이 잘 가지 않는다.
밥을 짓는 쌀도 산지가 한두 군데가 아니듯 보이차의 종류도 평생을 두고 마셔도 일부분이라 할 만큼 많다. 그 교수가 처음 마시게 되었던 차의 향미를 고집할 게 아니라 입에 맞는 차를 더 찾아보았으면 좋지 않았을까 싶다. 매일 밥을 먹듯이 다반사로 마시게 되는 보이차를 알고 마시면 이만한 소확행이 없는데 안타까운 일이다.
누구나 일엽편주의 처지로 마시는 보이차
보이차의 종류는 몇 가지나 될까? 흔히 보이차는 생차와 숙차정도로 구분해서 마시면서 차 생활을 시작한다. 그런데 마시면 마실수록 끝없이 많은 종류에 깊은 산속에서 길을 잃어버린 것처럼 혼돈에 빠지게 된다. 대지차와 고수차, 재배차와 야생차, 소수차와 고수차, 봄차와 가을차, 첫물차와 두물차, 신차와 노차 등등 수많은 갈래길을 만나게 되기 때문이다.
그뿐일까? 보이차를 만드는 차창만 해도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로 많은 데다 산지는 또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그런 데다 보이차는 후발효차라는 특성으로 보관 기간과 장소에 따라 향미가 달라진다. 앞에서 열거한 종류가 서로 섞이게 되면 그야말로 천차만별, 무궁무진이라 할 정도로 차마다 다르다고 할 수 있으니 혼돈의 차가 바로 보이차이다.
내가 소장해서 마시는 보이차는 약 오백여 종류가 있다. 보이차를 잘 모르는 사람이 이 얘기를 들으면 차의 종류와 양을 보고 입을 다물지 못할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알고 보면 오백여 종은 바다 같은 보이차 종류에 물 한 바가지 정도에 불과하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보이차를 마시면서 어느 정도 알게 되면 깊고 넓은 차의 세계에서 길을 찾기 어렵다고 느끼게 된다.
보이차를 이십여 년 가까이 마시다 보니 마시면서 알게 되다가 이제는 아는 만큼 찾아 마시게 되었다. 보이차를 마시기 시작할 때는 손에 잡히는 대로 마셔도 만족스러웠다. 마치 배고픈 사람이 반찬 투정할 겨를이 없는 것처럼 하루에 3리터 이상 물처럼, 아니 물도 이만큼 마실 수 없는데 그렇게 마셔도 좋았다. 지금도 하루에 마시는 양은 줄지 않았지만 마실 차를 스스로 선택할 수 있게 되었다.
시행착오를 줄여야 하는 보이차 생활
보이차는 누구나 쉽게 마실 수 있는 차이다. 357g 한 편에 몇 만 원이면 구입할 수 있고 5g이면 2리터를 우릴 수 있다. 보이차 한편이면 두 달을 족히 마실 수 있으니 경제적인 부담이 적다. 숙차를 커피메이커에 넣어 내려 마시면 따뜻한 차를 하루 종일 마실 수 있다. 숙차는 아랫배를 따스하게 하는 데다 효능을 살펴보면 건강까지 지켜주는 음료로 이만한 게 없다고 할 정도이다.
보이차를 꾸준하게 몇 년을 마신 사람을 보면 백여 편은 기본이고 더 많은 양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허다하다. 보이차는 구매 단위가 7편들이 한통으로 되기 쉬운 게 값이 싸기 때문이다. 그 해 만들어진 숙차는 한편에 2,3만 원 정도 하는 차가 많아서 한통을 이십만 원 이하로 구입할 수 있다. 통 단위로 구입하면 7편을 6편 정도 가격으로 살 수 있다 보니 방심하면 한 달에 몇 통씩 집안에 들여오게 되는 게 보이차이다.
보이차는 후발효 차라는 특성으로 오래 묵히면 더 좋은 향미를 가지는 걸로 알려져 있다. 그러다 보니 가격이 싼 신차를 구매해서 묵히면 가치가 오른다는 투자 개념의 유혹에 쉽게 빠지게 된다. 그런데 그 판단이 성급했다는 걸 알아차렸을 때는 이미 수백 편이 방에 가득 쌓여 있으니 이를 어째야 할까?
보이차를 처음 접했을 때와 차 마신 기간만큼 입맛은 달라지는 건 당연하다. 더 좋은 차에 입맛이 맞춰지게 되면 싸게 구입했던 차는 더 이상 손이 가지 않게 된다. 더 맛있는 차를 찾아 마시고 싶은 욕구는 끝이 없는데 싸다고 구입해 쟁여져 있는 차가 더 이상 내 입맛을 충족시켜주지 못한다면 낭패가 아닌가?
수없이 많은 보이차를 대강이라도 어떻게 알아가며 마실 수 있을까? 가장 좋은 방법은 보이차를 마신 지 오래된 사람을 찾아 멘토로 삼아 도움을 받는 것이라 생각한다. 멘토가 가지고 있는 차를 마시면서 내가 마시고 있는 차와 어떻게 다른지 알게 되면 차 생활이 진일보하게 된다. 나는 보이차 관련 온라인 카페와 동호회에 참여하면서 선배 다우들의 조언과 매달 찻자리에서 마실 수 있었던 차를 통해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었다.
보이차는 마시면서 알아가는 건 어두운 방에서 바늘 찾기만큼 어려운 일이다. 만나기 쉽지는 않겠지만 멘토를 정해 도움을 받거나 보이차 관련 온라인 카페와 동호회-다회에 참석하는 게 올바른 보이차 생활을 할 수 있는 지름길이라 할 수 있다. 이어지는 연재 글이 보이차에 관심이 있는 독자들에게 간접적인 멘토링이 되길 바라면서 글을 이어가려고 한다.
여성경제신문 '더봄' 연재 '무설자의 보이차 이야기' 4
무 설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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