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의 다성이라 일컫는 초의선사는 그의 저서 ‘다신전’에서 ‘차를 마실 때는 손님이 적은 것을 귀하게 여긴다. 손님이 많으면 시끄러워서 아취가 적어진다. 홀로 마시면 신령하며, 둘이 마시면 아주 좋고, 서넛이 마시면 고아한 멋이 있고, 대여섯이면 여럿이 마시는 일상적인 것이며, 일곱여덟이 마시면 널리 베푸는 것이다’라고 했다.
차 마시는 데 목적을 두면 이 말을 귀담아 들어야 할 것이다. 차의 향미는 커피와 달리 은근하며 고아해서 집중해서 마시지 않으면 제대로 음미하기 어렵다. 그래서 녹차를 주로 마시는 일본의 차 문화는 도의 경지까지 접목한 茶道다도로 승화시켰다. 그렇지만 보이차는 혼자 마셔도 좋지만 일상에서 가족이나 지인들과 대화를 나누기 위한 매개체로 마시면 더 좋다.
혼자 마시면 좋은 녹차
녹차는 고급일수록 향미가 은근해서 珍味진미를 맛보는 게 쉽지 않다. 녹차 맛이 구수하다고 한다면 잘못 만들어진 차라고 보아야 한다. 제대로 만들어진 녹차라면 풋풋한 차 고유의 향미가 입안에 스미듯 다가온다. 이른 봄에 잎을 따서 만든 첫물차라면 물 온도도 낮춰서 알맞은 시간을 두고 우려내야 한다.
향미가 은근한 녹차는 주위가 산만하고 번잡하면 차향을 음미하는데 집중할 수 없다. 그래서 차를 마시는 시간과 장소도 제한을 받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茶禪一味다선일미라고 하는지도 모른다. 홀로 마셔야 신령하다는 의미가 여기에 있다.
둘이 마시거나 더 많은 사람들과 마시더라도 녹차를 마시는 자리에서 대화는 사절이다. 그래서 다도라는 분위기의 일본에서는 차실도 서넛 명이 들어가기 어려운 아주 좁은 공간이다. 녹차 위주의 한국이나 일본에서는 오로지 차의 향미를 오롯이 음미하는데 찻자리의 목적을 둔다.
여럿이 찻자리를 가져도 혼자 마시는 분위기가 되어야 하니 다도는 수행이나 다름없어 보인다. 우리나라에 차 생활이 일반화되지 못하고 있는 원인이 바로 이런 일본풍의 다도에 있는지도 모른다. 다도는 필요에 의해 선택하는 차 문화일 뿐 다반사로 마시는 생활 속의 차는 따로 구속할 게 아무것도 없어야 한다.
차는 편하게 마시면 되는데
보이차는 실사구시로 마시는 생활 차라고 할 수 있다. 보이차가 내 손에 있으면 끓인 물을 부어 우려 마시면 된다. 뜨거운 물을 붓고 그대로 따라 마시면 되니 형식에 구애 받지 않고 편한대로 마시면 되는 차가 보이차라고 할 수 있다.
흔히 차를 어려워하며 따로 공부를 해야 마실 수 있다고 여긴다. 그런 말을 들을 필요 없이 커피를 마시듯이 차도 입에 맞으면 마시면 그만이다. 차를 마시다 보면 궁금한 게 생기기 마련이나 그때 정보 검색이나 쳇지피티를 통해 답을 얻을 수 있다. 마시다 보면 알게 되는 정도로도 일상 차 생활은 무리가 없을 것이다. 커피 대신에 선택하는 차가 아니라 커피를 마시면서 차도 함께 마시면 된다.
차를 마시지 않으면 커피와 청량음료를 마실 수밖에 없는데 몸에 이롭지 않을 것이라는 불안감을 지울 수 없다. 커피나 청량음료는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마시는 음료인데 마시면서 또 다른 스트레스를 받는 셈이다. 그러니 이제 차를 마시면서 건강도 지키고 스트레스도 줄일 수 있으면 좋겠다.
녹차는 세 번 정도 우려 마시는 차라서 혼자 마셔야 온전한 향미를 음미할 수 있다. 그런데 보이차는 열 번까지도 우릴 수 있으니 가족이나 지인들과 대화를 나누면서 마시면 좋다. 녹차는 보통 한 종류를 가지고 마시지만 보이차는 수십 종류 이상 소장하고 있으니 차를 바꿔가며 마시다보면 대화가 오래 이어진다.
여럿이 마시면서 알아가는 보이차
보이차는 종류가 너무 많아서 마시다보면 미궁에 빠지게 된다. 한날한시에 만들어진 차라고 해도 묵힌 만큼, 보관된 장소에 따라 다른 향미로 변화되는 차가 보이차이다. 또 같은 산에서 자라는 차나무라도 주변 환경과 수령에 따라 향미 차이가 크다. 또 보이차는 차나무가 자라는 곳이 아열대 기후이므로 사계절 찻잎을 딸 수 있어 그 해 나온 차라도 향미가 다르다.
녹차처럼 만들어진 차는 생차이고 발효 과정을 더하면 숙차가 된다. 또 보이차는 생차나 숙차를 막론하고 시간이 지날수록 맛이 깊어진다고 한다. 산지, 樹齡수령, 채엽 시기, 발효 여부에 따라 해마다 수많은 차가 나오는데 보관 기간과 장소에 따라 변화되니 보이차는 무궁무진한 종류가 있게 되는 것이다.
음식을 먹으며 맛을 느끼는 구감은 사람마다 다르다. 매운맛, 짠맛, 단맛, 쓴맛, 신맛을 오미라고 하는데 맛을 받아들이는 취향에 따라 같은 음식이라도 호불호가 갈리게 된다. 그러니 수많은 종류의 보이차를 선택하는 기준도 사람마다 다를 수밖에 없다. 그래서 보이차는 접하는 차마다 흥미진진해지고 무궁무진한 종류에 빠져드는 즐거움으로 마실 수 있다.
수백 종류를 가지고 있다한들 앞으로 만날 보이차는 언제나 처음 맛보게 되는 차가 된다. 정보 검색으로 보이차를 알아가는 데 한계가 있는 건 내가 마셔야 할 차를 찾아야 하기 때문이다. 보이차에 대한 궁금증을 풀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보이차 동호회에 참석하거나 나보다 먼저 마신 사람들이 공감하는 차를 자주 마셔보는 것이다. 그래서 보이차는 먼저 시작했고 많이 마셔본 사람과 자주 찻자리를 가지면 가장 좋은 가르침을 받게 된다.
녹차는 한두 가지를 마시며 깊이를 얻을 수 있다면 보이차는 여러 종류를 마시면서 가없는 넓이에서 다양한 향미를 즐길 수 있다. 녹차는 고요한 방에서 나 홀로 음미하며 내면을 돌아볼 수 있다면 보이차는 가족이나 진인들과 모여 앉아 여러 종류를 마시면서 대화를 나눌 수 있어서 좋다. 녹차는 차의 향미를 음미하는 데 집중한다면 보이차는 함께 자리하는 사람과 주고받는 대화가 더 좋다.
보이차는 생차는 녹차와 백차, 청차의 향미와 가깝고, 숙차는 홍차의 짙은 향미를 닮았다. 생차는 묵힌 세월만큼 달라지는 향미를 천천히 즐길 수 있고, 숙차는 발효되면서 들뜬 향미가 안정되는 맛을 나눌 수 있다. 그래서 여럿이 마시면서 말하기보다 들을 얘기가 많아서 좋은 차가 보이차이다. 보이차는 초의선사가 말한 여럿이 마시면서 대화를 주고 받으며 마음도 나누고 가격이 저렴한 차도 많으니 베풀 수 있어서 좋다.
여성경제신문 '더봄' 연재 '무설자의 보이차 이야기' 4
무 설 자
'茶 이야기 > 여성경제신문연재-무설자의 보이차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색깔로 나누는 여섯 종류의 차, 육대차류 (0) | 2024.07.15 |
---|---|
茶차, WHO에서 왜 10대 슈퍼푸드로 선정했을까? (0) | 2024.07.15 |
보이차 멘토링 (0) | 2024.07.15 |
보이차를 마실 때 우리집에서 일어나는 일 (0) | 2024.07.15 |
할아버지 차 주세요 (0) | 2024.07.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