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설자의 에세이 차 이야기 240515
아주 오랜만에 스승 대접 받은 날
스승의 날이라 해도 교육자가 아니니 별다른 감흥이 없는 게 사실이다. 하긴 교육자인 사람도 요즘은 스승 대접을 받을 분위기가 아니라서 어떨지 모르겠다. 교직에 몸 담은 적은 없었지만 15년 정도 대학 출강을 했었던 때는 스승 대접을 받아보기도 했었다.
스승의 날이 법정 공휴일이 아니지만 학교는 휴무일이라 알고 있다. 제자들이 선물하는 걸 막으려고 그런 정책을 시행하게 되었다는 점도 있다니 참 씁쓸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스승의 가르침에 고마운 마음을 담아 꽃다발을 전하며 ‘스승의 은혜’를 부르는 학생들의 합창이 환청처럼 들려온다.
요즘 들어서 알고 있는 교실 분위기에서 우리나라의 미래가 얼마나 암울한 지 염려하지 않을 수 없다. 교권이 아닌 교육 노동자 처지에서 참담한 비애를 감추며 강단을 지켜야 하는 교사들은 학생들에게 무엇을 가르치고 있을까? 君師父一體군사부일체라는 케케묵은 말을 꺼낼 수 있는 세태는 아니지만 스승의 자리가 없는 학교에서 학생들은 무엇을 배우고 있는지 알 수 없다.
敎權교권이란 무엇일까? 교사의 개인적인 권리나 권한이 아니라 다수 학생을 책임져야 할 스승의 자리일 것이다. 스승으로서 제자들에게 내릴 수 있는 가르침에 대한 권한과 책임이 바로 교권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권한은 없고 무한 책임만 강요하는 교단에서 '스승'은 부재하고 '교육 노동자인 교사'만 있는 게 지금의 학교일 것 같다.
비록 겸임교수로 강단에 섰었지만 강의에 진심을 다했고 그에 따른 보람도 있었다. 모교에서 강의를 맡고 있을 때 발표에 자신을 가지지 못하는 학생이 있었다. 그 학생이 가지고 있는 재능이 속에 갇혀 제대로 발휘되지 못하는 게 안타까웠다. 그 학생에게 발표력을 키울 수 있게 학원에 다니길 권했었다. 그 해 스승의 날에 그 학생이 학원의 발표대회에서 받았다는 상품을 선물로 전해준 기억이 새롭다.
교사가 학생들에게 지식을 전달하는 직능인으로 머물러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학생들의 마음까지 살펴 미래를 열어갈 수 있도록 이끌어야 하는 게 더 중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교사는 교권에 침해를 받아서는 안 된다. 교사가 강의로 학생들의 지식을 채우는 식의 단편적인 교육으로 우리나라의 미래를 기약하는 건 암울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올해 스승의 날은 오래 기억에 남을 일이 생겼다. 보이차를 마시면서 쓰는 내 글을 읽고 제자를 자처하는 다우 분이 선물을 보내왔기 때문이다. 글을 써서 차 관련 온라인 카페에 올리는 글마다 정성을 다해 붙여주시는 분이다. 그 다우 분은 댓글을 다시면서 자주 스승님으로 호칭하시더니 스승의 날에 맞춰 이벤트를 만들어 주셨다.
스승님이라는 호칭이 부담스러워 굳이 쓰시려면 멘토라고 불러 달라며 당부를 드렸다. 그랬더니 한술 더 떠서 스승님 멘토님이라고 덧붙여 부르시니 이를 어쩌면 좋은가? 사람의 관계가 팍팍해져 가는 요즘 가르친 적이 없는데 배우고 있으시다며 이렇게 따스한 정을 나누어 주신다.
이 나이에 스승의 날이 내게도 이렇게 의미 있는 날로 다가올 줄 미처 몰랐다. 치레로 하는 말이 아니라 진심을 담아 배우고 있으시니 다우 분의 멘토로서 글쓰기에 정성을 다해야겠다고 마음을 다진다. 오늘만큼은 나도 '스승의 날'을 맞아 세상의 어느 스승보다 보람과 자부심을 가져보는 날이다.
무 설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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