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설자의 에세이 차 이야기 240628
편지가 동봉된 생일 선물을 받고
생일이 되면 가까운 사람보다 멀리 사는 사람들이 축하 메시지를 보내온다. 카톡에 생일이라고 알려주는 문명의 이기 덕분에 축하를 받게 된다. 카톡으로 건조한 멘트가 담긴 축하를 받아도 무소식보다 마음에 파장이 인다.
카톡 메시지보다 전화 통화로 축하 안부를 전하면 더 반갑다. 생일날 전화를 넣어 축하드린다는 인사를 하는 사람이 있었다. 지난 겨울방학을 이용해 현장 실습을 했었던 대학생이다. 대학 3학년의 겨울방학은 온전히 자신의 시간을 가질 수 있는 마지막 방학이다. 그런데 실습 요청을 해 와서 수락을 받아 두 달 간 우리 사무실에서 함께 했던 학생이다.
그 학생은 학교에서 흡족하게 배우지 못했다며 건축사사무소에서 현장 실습을 하며 단독주택 공부를 더 하고 싶다고 했다. 단독주택 설계는 삶에 대한 진지한 고찰이 필요한 프로젝트이다. 어쩌면 이 학생은 두 달 동안 나에게 배운 게 아마 ‘삶이란 무엇인가?’라는 것이지 않았을까 싶다.
이 학생은 요즘 젊은이 같지 않게 고리타분하다고 여길 수 있는 내 말을 잘 들어주었다. 두 달간 펜글씨 천자문 교본도 써내고 가르쳐 주는 대로 단독주택 설계 과정도 잘 따라와 주었다. 그러다보니 딱딱한 실습이 아니라 두 달이라는 길지 않았던 시간 동안 단독주택 설계의 기본 맥락은 짚을 수 있었던 것 같다.
자꾸만 요즘 사람들이라는 꼰대 어투를 쓰는 것 같지만 이제 이십 대를 넘겼는데도 마음이 전해지지 않았을까 여길 정도이다. 실습이 끝나고도 안부 전화를 넣는 것도 잊지 않았고 졸업 설계를 하는 중이라며 조언을 구하러 다녀가기도 했다. 두 달 동안 인생에 대해 매일 얘길 나누다보니 제법 깊은 정이 들었나보다.
어제는 봄 학기를 졸업 설계로 끝냈다며 인사를 하러 왔는데 이미 지난 생일 선물까지 챙겨왔다. 그 학생이 선물이라며 가져온 게 무엇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선물에 편지가 들어 있었다. 이렇게 받을 수 있는 선물은 세상에 하나 밖에 없는, 내가 아니면 받을 수 없는 선물인 셈이다.
항상 감사한 김정관 대표님께
생신 축하드립니다. 대표님, 실습을 진행하던 두 달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여름이 다가오니 시간이 참 빠르게 흘러간다는 것을 다시금 깨닫게 됩니다. 비록 짧다면 짧았던 두 달은 제게 있어서 소중한 경험 중 하나입니다.
건축이야기 뿐만 아니라 제게 해주셨던 모든 인생이야기는 너무 재밌게 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스쳐지나가는 이야기라도 놓치지 않으려 열심히 들었고 이는 제 인생의 밑거름이 될 좋은 양분일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염치불구 하지만 앞으로도 많은 가르침 부탁드립니다.
항상 행복하시고 대표님의 건축스토리가 멋진 마무리를 지을 수 있기를 염원합니다.
2024. 6. 22.
글을 쓰는 젊은이가 드물고 더구나 만년필로 글씨를 쓰는 사람은 거의 없다시피 하는 게 요즘이다. 그런데 이 학생은 글도 잘 쓰고 글씨도 열심히 쓰고 있으니 세대를 넘어 벗으로 마음에 담긴다. 천자문 펜글씨 교본으로 한자도 익히고 글씨 연습도 해보라는 조언을 잘 받아들여 이렇게 손글씨로 마음을 전해 주는 이 친구가 어찌 정이 가지 않겠는가?
실습을 시작할 때 보이차를 권했었다. 실습 기간 중에는 열심히 잘 마셔서 개학하면 계속 마시라고 표일배와 숙차를 선물했었다. 지금도 꾸준하게 마시고 있다 하는데 부디 나이를 뛰어 넘을 수 있는 다우로 지낼 수 있기를 바란다.
이 학생은 2학기부터 인턴으로 근무를 하다가 9월경부터 건축사사무소에서 일한다고 한다. 마침 건축을 잘 배울 수 있는 선배 건축사님께 추천했는데 입사 허락을 받았다. 이렇게 성실하고 건축에 대해 진심인 친구를 받아들인 선배님도 복덩이를 안게 된 것이라 자신할 수 있다.
이런 선물을 받을 수 있는 나도 어떤 공덕을 지었을지 모르지만 복 받은 사람이 아닐까 싶다. 사람 관계에서 나이라는 한계는 뛰어넘는 게 쉽지 않지만 대가를 바라지 않는 마음을 주고받을 때만 인연이 맺어지지 않을까 싶다. 올해 생일은 이 친구의 선물로 오래 기억이 남을 것이다. 곧 시작될 이 친구의 사회생활에 건승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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