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연회 2022년 가을 다회 후기
인생 친구, 다우들과의 가을 나들이
한 달에 한번 꼭 만나는 벗들이 있다. 직업이나 나이, 성별을 불문하고 벗이 되어 매달 만난 지 15년이 지났다. 이 사람들과는 공통된 취미가 있어서 이렇게 오랫동안 모임을 가질 수 있다. 이 취미가 아니라면 남녀가, 스무 살 가까운 나이차에 직업도 다른데 어떻게 만날 수 있을까?
이 분들과 함께 하는 취미는 보이차 생활이다. 2006년에 보이차를 마시게 되면서 온라인 카페 활동을 시작하게 되었다. 지금은 보이차에 대한 정보를 온라인 검색이나 서적을 통해 접하기가 어렵지 않다. 그렇지만 2006년에는 온라인 정보라고 해봐야 차를 판매하는 사람들이 올리는 구매 안내글이 대부분이었다. 마침 보이차를 함께 마시는 사람들과의 모임을 시작하게 되었고 기꺼이 동참하게 되었다.
나도 그 모임의 어엿한 발기인으로 참여하게 되었다. 그 이후 발기 회원은 이렇게 저렇게 사라지고 맨 茶歷차력으로는 막내였던 나 혼자 남아 모임을 이끌고 있다. 모임 창립 십 주년 행사를 하고 나서 해체하려고 마음을 먹었었다. 그렇지만 나처럼 보이차를 알고 싶어 찾아오는 다우들이 끊이질 않아 지금까지 모임을 이어가고 있다.
해마다 가을이 되면 실내에서 벗어나 야외 다회를 기획하고 있다. 올해 야외 다회는 몇 년 전에 진행했던 한옥이 있는 농원을 예약하려고 했더니 코로나로 식당 운영을 하지 않는다고 했다. 야외 다회는 차보다 맛있는 식사가 우선이라 총무를 맡은 다우의 추천으로 양산 홍룡사 아래 맛집으로 잡았다.
열 분은 오지 않을까 예정했는데 좋은 날이라 그런지 약속이 많아 여섯 명이 참석했다. 열 명이 오면 성원이 된 것 같아 좋지만 대여섯 명이면 밥 먹고 차 마시며 얘기를 나누기 좋은 인원이다. 투명하게 깊은 가을 하늘, 따사로운 햇살도 좋고 그늘에서 맞는 바람이 얼마나 좋은지 모르는 날씨다. 여자 두 분에 남자 네 사람, 짝이 나누어지지 않으니 얼마나 좋은가?
홍룡사는 양산 천성산이 품고 있는 고찰이다. 산자락을 밟고 오르다가 더 가기 어려운 자리에 앉아 너른 터를 얻지 못한 절이다. 창건주 원효 스님은 계곡을 낀 절벽 아래에 어떻게 이런 터를 보았을까? 절에 들어 오른쪽으로 급한 경사길을 오르면 숨어 있는 폭포를 만난다. 사세가 크지 않아 유명세가 덜하니 이렇게 좋은 날씨에도 고즈넉해서 좋다.
다우들과 폭포를 낀 산사를 돌아보느라 산길을 올랐더니 밥 먹으러 가는 길이 바빠진다. 절 아랫동네에 있는 약선요리 음식점이다. 총무 다우의 직장이 양산이라 손님이 오면 가끔 오는 곳이라고 한다. 맛은 다우가 이미 검증했던 터라 선입견이 있었어도 너무 맛있었다.
식사를 마치고 우리의 일정대로 두어 시간 차를 마셔야 했는데 다우가 어렵사리 허락을 받을 수 있었다. 맛있는 식사에 야외 다회에 마시기 위해 특별히 준비한 차를 마시니 이보다 더 좋을 수 없었다. 우리 모임의 찻자리 분위기는 차보다 대화인지라 이런저런 얘기를 즐겁게 나누다 보니 시간 가는 줄 모르는 신선놀음이었다.
오랜만에 나오는 다우들과의 소풍 자리라서 그냥 헤어지기는 섭섭해서 꽃구경이 좋다는 물금 황산 공원으로 길을 잡았다. 주말 일정이 따로 있었던 다우 한 사람은 빠지고 다섯 명은 마지막 일정에 나섰다. 처음 가보는 황산 공원도 좋았지만 처음 보는 댑싸리가 너무 예뻐서 마무리 일정을 잘 잡아졌다고 다우들도 좋아라 했다.
일정의 보너스가 이어져서 신상 카페를 가보자는 총무 다우의 제안으로 밀리는 차 행렬을 뚫고 목적지에 도착했다. 양산 호포역 앞에 이런 카페가 있다니 하고 깜짝 놀랄 장소에 안 가봤으면 후회할 뻔했다. 어지간한 대형마트 같은 엄청난 규모인 베이커리 카페인데 자리가 없을 정도로 사람이 들어찼다.
건축사인 내가 보아도 이렇게 큰 규모로 카페를 열었다니 입이 딱 벌어진다. 낙동강 하구를 한눈에 바라볼 수 있다는데 초점을 맞춘 사업자의 판단에 놀랄 수밖에 없다. 인테리어를 따로 하지도 않고 공간의 규모와 평범한 가구로도 조망과 공간으로 고객이 찾아오게 만들어서 대단한 사업적 감각을 느낄 수 있다.
총무 다우가 끝 마무리까지 이렇게 만족하게 해 주어 이런 벗과 아무나 함께 할 수 있냐며 자랑하고 싶다. 가족과 보내지 않은 주말 일정이 뒤통수가 간지럽기도 하지만 좋은 벗이 있다는 게 또 다른 복이라 생각할 수 있었다. 살아가면서 좋은 친구 한 명을 둘 수 있으면 잘 사는 삶이라고 공자님이 말씀하셨는데 우리 다우들도 나처럼 남들이 부러워할 삶을 살고 있는 것이라 여겼으면 좋겠다. 참 좋은 사람들과 행복한 나들이를 보냈으니 오늘도 나만의 소확행을 누렸구나.
무 설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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