茶 이야기/짧은 차 이야기

두 분의 차 선생님

무설자 2022. 3. 8. 15:30
728x90

 

밀린 월세


오래전 월세방에서 생활했을 때 일입니다.
그날도 저는 주인집 불이 꺼지는 것을 본 후에야 집으로 조용히 들어갔습니다.
월세를 못 낸 지 두 달째가 되었습니다.
그동안 단 한 번도 월세를 밀려본 적이 없었는데,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실직을 당한 후부터 쉽게 일자리가 구해지지 않았습니다.

저는 서비스 업종에 일했었는데 가장 중요한 건 친절함이 우선이지 나이가 중요하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었습니다.
그런데 제 생각이 틀렸나 봅니다.
그동안 월급도 많지 않았고 한 달 벌어 한 달을 겨우 살았기 때문에 월세와 함께 당장 끼니를 해결하기도 힘들었습니다.
저에겐 눈물을 흘리는 것도 사치였습니다.

서울에서 직장 생활 잘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계신 부모님께 손을 벌려 실망시켜 드리기도 싫었습니다.
그래서 두 달째 집주인을 피해 도둑고양이처럼 살고 있었습니다.
며칠 전 아르바이트를 구했지만 월급을 받으려면 한 달이나 남았으니 이렇게 집주인을 피해 다니는 것도 한 달은 더해야 하는데 어떤 집주인이 가만히 있을까 싶었습니다.

그런데 늦은 밤 누군가 방문을 두드렸습니다.
저는 조심스레 문을 열었습니다.
집주인 어르신이었습니다.

"불이 켜져 있길래 왔어요."

잔뜩 긴장해서 어르신 앞에 서 있는데 손에 들린 반찬통을 내미셨습니다.

"반찬이 남았길래 가져왔어요."

제가 오해할까 봐 오히려 조심스러워하는 어르신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그제야 그동안의 사정을 잘 말씀드리고 고개 숙여 진심 어린 사과를 했습니다.

"그런 것 같더라고, 요즘 집에 계속 있길래 뭔 일이 생겼구나 했는데 그런 일이 있었네.
너무 걱정말고 지금까지 월세 한 번 안 밀렸는데 내가 그렇게 박한 사람은 아니우."

환한 미소를 지으며 돌아가시는 그 모습이 어찌나 크게 느껴지던지..
그런 어르신 덕분일까요?
이제는 착실하게 돈을 모아 전세에서 살 게 되었고 예전보다 좋은 조건의 직장을 구해서 열심히 일하며 살고 있습니다.

어르신의 그 따뜻한 마음 평생 잊지 못할 것입니다.


요즘 같은 세상에 누군가를 믿는다는 건,
정말 힘든 일이 되어버렸습니다.

내가 먼저 믿어주지 못한다면,
상대방도 나를 믿어주지 못할 것입니다.
결국엔 악순환이 되겠지요.

작은 믿음부터 실천해 보세요.
언젠가 큰 믿음이 되어 당신의 인생에
행운으로 돌아올지도 모릅니다.


# 오늘의 명언
믿음은 산산이 조각난 세상을 빛으로
나오게 하는 힘이다.
                                - 헬렌 켈러 –

 

========================================

 

 

제게는 평생 잊지 못할 차와 인연이 되어 만난 두 분의 다우가 있습니다.

한 분은 대구에 계셨고 또 한 분은 부산에서 자주 뵙던 분이었습니다.

지금은 두 분 다 운명을 달리 하셔서 다시는 만날 수 없게 되었습니다.

 

대구에 계셨던 분은 제가 쓰는 차에 대한 글을 자주 접하시고 꼭 만났으면 좋겠다고 연락을 주셨습니다.

대구에 업무차 출장을 갔다가 찾아뵈었는데 친 동기를 만난듯이 반겨주셨지요.

보이차를 일찍 접하셔서 꽤 많은 양을 수장하게 되었다며 귀한 차를 아낌없이 내어주셨지요.

 

그 이후로 출장이 아니라도 찾아뵈면서 그 분의 차에 대한 깊은 지식을 전해들었답니다.

보통 대여섯 시간에 걸쳐 차를 마셨는데 인급차는 기본으로 마실 수 있었으니 얼마나 좋았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급성으로 큰 병을 얻어서 좌탈로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접하고 황망하기 이를 데 없었습니다.

 

또 한 분은 다연회에서 만난 다우이신데 저의 고등학교 선배님이셨습니다.

처음 만나던 날이 다연회 창립행사를 하는 자리였는데 인사를 나누다보니 學緣학연이 닿는 분이었지요.

그 자리에서 선배님의 집으로 초대를 받았습니다.

 

선배님의 댁에서 저녁과 함께 차를 나누는 자리는 평생 잊을 수 없습니다.

부산의 보이차계에서는 모르는 분이 없을 정도인데 선배님의 방은 그야말로 수행자가 사는 듯 했습니다.

선배님은 당신이 마시는 차가 떨어질 때가 되면 한 두 편을 구입해서 마실 뿐 여유 분을 두지 않았습니다.

 

선배님과 다연회 다회에서도 뵙지만 따로 만나서 자주 차를 마셨습니다.

그를 통해 보이차를 깊이 있게 알게 되었는데 선배님은 가르쳐준 적이 없다고 하셨지요.

그 귀한 가르침도 이제는 더 받을 길이 없이 지병으로 운명을 달리 하셨습니다.

 

두 분께 받았던 차에 대한 심도있는 가르침을 이제는 접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저는 받기만 했는데 더 줄 게 없을까 관심을 아끼지 않으셨는데 이를 어째야 할까요?

두 분의 가르침을 받은 제가 할 일은 저의 짧은 지식이나마 글로 세상에 전하는 것이라 여깁니다.

 

물이 아래로 흐르듯 저는 두 분의 가르침을 받기만 했습니다.

혹시 제가 쓰는 글로 차를 모르는 분들이 차와 인연을 닿게 할 수 있다면 두 분께 은혜를 갚을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오늘도 글을 쓰면서 두 분이 제게 베푼 가르침을 생각합니다.

 

 

무 설 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