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설자의 에세이 숙차시음기 210304
대평 동몽童夢 - 노차의 향미를 잊어도 좋을만한 노반장숙차
에피소드1-고수차모료 숙차
2009년에 동몽同夢이라는 숙차를 선물로 받았다. 후배의 지인이 곤명에서 귀국하면서 가져온 차였는데 보이차에 막 입문했던 때 였는지라 충격을 받았다. 고수차라는 이름의 의미도 제대로 몰랐는데 고수차 모료로 만들었다는 그 숙차는 값싼 차라는 숙차에 대한 인식에 혼란을 불러일어켰다.
지금은 고수차 모료로 만든 고급숙차를 어렵잖게 만날 수 있지만 그 때는 차산지가 표기된 숙차도 드물었었다. 2006년 차였던 동몽을 2009년에 받아서 마셨는데 겨우 3년 지난 숙차에서 숙미가 거의 없었다. 어쩌면 숙차에는 적당한 숙미가 있어야 제맛이 난다고 받아들였기에 처음 만나는 특별한 숙차에 의아해 했었다.
에피소드2-노차는 환상의 차?
노차라고 하지만 어느 정도의 향미라야 탄복하면서 고개를 끄덕일 수 있을까? 무설자라는 닉네임 덕분에 인생차라고 할만한 노차를 만날 기회를 몇 번 가질 수 있었다. 첫번째 차는 대구의 동경당에서 마셨던 남인이며, 두번째는 경주의 아사가차관에서 마셨던 노차였고 세번째 차로는 대연동 도림원에서 만난 홍인이었다.
그 차들을 마셨을 당시 진기 50년이 지난 전설의 인급차였으니 그 감흥은 이루 말로 다할 수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어쩌랴 그 당시에는 그 귀한 차맛을 충분히 받아들일 구감을 가지지 못했으니. 그나마 보이차 생활 십년이 넘었을 때의 도림원에서 마셨던 홍인은 영원히 잊을 수 없을 향미의 끝판을 맛볼 수 있었다.
왜 두 가지 에피소드를 프롤로그 삼아 얘기했을까? 대평 동몽을 마시고 나니 고수 숙차를 처음 접했던 06 皇印同夢과 기억에 남는 인급노차를 마셨을 때가 생각났기 때문이다. 동몽을 만나면서 편당 십만원이 넘는 고수 숙차를 손쉽게 구입할 수 있을지 망설이면서 판단근거가 될 수도 있을지 모르겠다.
2018년에 긴압되어 출시된 동몽은 대평보이 고수숙차 노반장 시리즈의 연년익수, 문답과 삼형제로 같은 시기에 발효된 모료라고 한다. 처음에 연년익수가 소개되면서 차를 마신 반응은 가히 폭발적이었다. 문제는 쉽게 접근하기 어려운 가격대였다.
문답≫연년익수≫동몽의 순서대로 모료의 급수를 썼다고 한다. 연년익수는 모료 그대로, 문답은 1~5등급, 동몽은 7~11등급으로 차를 만들었다는 얘기이다. 노반장 숙차 삼형제는 대평보이의 고급숙차로 다시 만들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코로나 시대가 낳은 산물이라는 사연으로 남을 차가 될 것인가?
동몽은 노반장 숙차의 보급형이라고 볼 수 있지만 가격대가 쉽게 다가오기는 쉽지 않는 건 틀림없다. 숙차도 이제는 싼차라는 인식을 불식해야 하는 게 차창마다 고급모료로 만들어 앞다투어 출시하고 있다. 싸다고 마시는 숙차가 아니라 어떤 숙차를 마셔야 할지 생각을 바꿔야 할 시기가 도래했다고 봐야 하는 건 틀림없다.
동몽의 병면을 보면 낮은 급지로 만들었다고 하지만 노반장 모료이기에 예사롭게 볼 수가 없다. 童夢이라는 이름은 어린 아이의 꿈이라는 의미인데 여태까지의 숙차라는 고정관념을 버리고 순수한 마음으로 보라는 의미일까? 06년도의 皇印同夢을 마셨을 때의 신선했던 충격을 떠올리며 같은 이름을 쓸 수 없어서 한글로는 같은 이름이지만 차의 맥락은 이어져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06황인동몽이 대평님과 인연이 닿아 있다는 얘길 들었었기에...
이 횡파형 자사호는 저의 도반이자 다우인 응관님께 선물로 받았다. 횡파형호는 손잡이가 있어서 쓰기에 아주 편리하다. 니료를 기억하지 못하지만 정성 들여 만든 호임에 틀림없어 보인다.
이 호는 뚜껑이 깊어서 많이 기울여도 빠지지 않아서 깨뜨릴 위험이 적다. 오래된 자사호에서 깊은 뚜껑을 볼 수 있다. 응관님이 이 자사호를 만든 분에게 이렇게 만들어 달라고 주문을 했다고 한다.
이제 동몽을 우려보자. 개완 크기로 보면 3~4g만 넣어도 되는데 진하게 마셔보려고 6g을 계량해서 넣었다. 차는 연하게 마시는 습관을 들이라고 하는데 맛있는 차는 진하게 우려서 깊은 풍미를 음미하라고도 한다.
노차를 우려 드시는 분들은 150ml정도의 호에 10g 이상 넣는 것을 자주 보았다. 차를 내면 거의 간장색인데 그 향미에서 거북한 느낌이 거의 없었다. 예전에 차바위님들께 인급차를 얻어 마실 때도 다 그렇게 우려내었다.
홍인이 지금 시세로는 1억이 넘는다고 하는데 10g이면 300만원이 넘지 않는가. ㅎ~~ 인급차를 오래 소장하고 있었던 차바위님이기에 차의 시세와는 상관없이 그렇게 차를 낼 수 있었을 것이다. 내가 그 분께 귀한 차를 너무 많이 넣는게 아니냐고 했었는데 이렇게 얘기하는 게 아닌가.
"무설자와 차를 마시는데 이 귀한 인연이 닿은 자리에서 아까울 게 있겠습니까? "
너무 고맙기도 하지만 무설자가 누구이길래 이런 대접을 받을 수 있는지 황망하기 이를 데 없었다.
과연 탕색이 진하다. 과연 어떤 향미가 담겨서 나왔을까? 禪師가 사과를 들고서 대중에게 묻기를 "누가 맛을 한번 얘기해 볼 텐가?" 대중 속에서 한 사람이 나와서 선사의 손에 있는 사과를 뺏어서 한입 베어 먹고는 "바로 이 맛이로군요." 하더라나...
보통 숙차의 맛은 발효과정을 통해 차의 드센 성품이 많이 순화되어 쓴맛과 떫은맛이 가셔지고 달고 순한 향미를 가지게 된다. 차를 마시는 사람의 구감에 따라 쓰고 떫은 맛을 싫어하는 게 보통이다. 그러나 쓴맛이 적은 차는 밍밍한 맛이 되어 후운이나 회감이 떨어지므로 숙차를 싫어하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동몽은 쓴맛이 살아 있다. 진하게 낸 처음에는 신맛이 약간 받치는데 서너 번 내고나면 기분 좋은 쓴맛에 농한 숙차의 풍미가 진미珍味로 다가온다. 어느 때 사무실로 찾아온 스님이 연년익수를 마시고 난 뒤 이렇게 말했다.
"제대로 된 노차는 이제 마시기 어려운데 이만한 차라면 고민할 일이 없겠는데요?"
동몽은 모료의 급지만 차이가 날 뿐 연년익수와 같은 형제이므로 이런 평가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다. 다만 떫은맛이 구감에 좀 불편하므로 순화되는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 노차와 이어지는 평가에 대해서는 차를 계속 우려내면 알 수 있다.
스무 번을 우려낸 동몽의 탕색이다. 차의 품질을 가릴 때 흔히 차의 향미가 우리는 회수回數를 얼마나 지속할 수 있는지 따지게 된다. 특히 숙차에서 향미가 초반에 진하게 나오다가 금방 끊어지는 경우가 많은데 이런 차는 좋은 평을 받지 못한다.
노차에 대한 호감도는 차를 수십 번을 우려도 그 향미가 계속 지속되는데 있다. 소위 작업차라고 하는 가짜 노차는 열 번을 우려내지도 못하고 향미가 떨어져 버린다. 그런데 잘 보관된 차는 탕색만 옅어질 뿐 고유한 향미가 계속 지속된다.
노차를 마시는 자리에 앉게 되면 차를 바꾸는 시점에 엽저를 챙기는 사람이 있다. 찻자리에서 여러가지 차를 마시기에 그만 마시게 되므로 우리던 차는 그 뒤로도 계속 마셔도 향미를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그 엽저를 챙겨오게 되면 마지막에는 끓여서 차의 마지막 향미를 즐길 수 있다.
글의 서두에 프롤로그 삼아 언급한 인급차와 황인동몽을 언급했었다. 대평동몽은 차의 향미를 몇 번까지 우려내어 마실 수 있는지 알 수 없다. 구감이 예민한 사람이라면 탕색이 백탕에 이를 때까지 우릴지도 모른다.
연년익수를 마시던 스님이 이만한 숙차라면 구태여 노차를 찾을 필요가 없다고 한 그 얘기에 고개를 끄덕일 수 있겠다. 차의 향미를 어찌 필설로 다 언급할 수 있을까? 노반장 모료로 만든 동몽, 지금 마셔도 좋지만 시간이 지난 그만큼 더 좋은 향미를 즐길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를 담아 시음기를 마무리해본다.
무 설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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