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이야기

함께 걸어갈 사람이 생겼습니다

무설자 2020. 10. 24. 2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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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십오 년을 나와 함께 걸어온 아내에게 머리를 숙이며

 

                                                                                                             김 정 관

 

 함께 걸어갈 사람이 생겼습니다  -비야*안톤의 실험적 결혼생활 에세이

 한비야.안토니우스 반 주트펀 지음

 푸른숲

 

 

  결혼은 누구나 해야하는 일인 시대는 끝난듯하다. 누구나 하던 결혼이었던 시대에는 혼기가 있어서 때를 놓치면 온 집안에 가장 큰 걱정꺼리였다. 그 결혼이 이제는 선택이라 할 정도인데다 기혼자라 할지라도 평생을 함께 할 수 있을지 장담하기 어렵게 되었다.

  이제는 여자가 무조건 남자를 따라야 한다는 정서의 여필종부니 부창부수 같은 말은 옛말이 되고 있는 실정이다. 가정은 물론 사회생활에서도 남녀 역할의 경계선은 빠르게 허물어져 가고 있다. 가정에서도 사위의 위치는 몰라도 며느리의 자리가 옅어지면서 부계 중심에서 모계로 넘어가고 있는 분위기이다.

  한국 사회에서 결혼이 가족 간의 결합에서 개인과 개인의 만남으로 그 흐름이 급속도로 옮겨가고 있어 보인다. 출산율에서 세계 최하위라는 성적표에서 여성의 역할이 남자를 보필하기보다 주도적인 삶을 살려고 하는 주체적인 경향을 볼 수 있다. 남녀가 하나되어 가정을 이루고 그 결합의 증표로 아이를 낳아 기른다는 전통적인 결혼관이 급속도로 붕괴되고 있다. 

 

  이 책의 부제가 비야 * 안톤의 실험적 결혼생활 에세이인데 한국의 결혼생활은 아마도 대부분 실험적이지 않나 싶다. 결혼 시기가 여러가지 사유로 늦어지고 있는데다가 아이를 낳지 않고 살겠다는 커플이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그 원인은 아마도 여성들의 사회활동에 출산과 육아의 부담이 높기 때문일 것이다.

  한비야씨는 그동안 저술활동을 통해 전 세계를 누비는 사람으로 그 이름이 널리 알려져 있다. 하지만 그가 결혼을 했다는 사실을 나는 이 책을 통해 알게 되었다. 한 곳에 머물러 살기 어려운 그의 활동 영역을 보면 어떻게 가정을 이룰 수 있을까 생각했었기에 책을 읽으며 실험적 결혼생활이기에 가능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결혼이 한 사람의 인생을 행복하게 하지 않는다는 결론이 아마도 우리나라의 여성들 대부분이 미혼이 아니라 비혼으로 살게 만드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짝을 짓고 2세를 출산해서 대를 잇는 본능을 따르지 않고 이성적으로 따진다면 누가 결혼을 할 수 있을까? 결혼은 연애의 무덤이라고 하지만 결혼을 하지 않고 혼자 살아가면 더 나은 삶이 될 수 있을까? 

  환갑이라는 나이에 결혼을 선택한 한비야씨를 보면서 비혼非婚이 아니라 미혼未婚으로 살아왔다는 걸 알게 되었다. 결혼은 필수가 아니라 선택이라는 부정적인 인생철학이기보다 시기를 가늠할 뿐 누구나 해야할 일이라는 걸 알려쥐서 고맙다. 해야 할 일이 중요한 사람은 결혼 시기를 늦출 수는 있겠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이라면 사회적 통념의 적령기를 놓치지 않았으면 좋겠다.

 

  결혼은 인륜지대사라는 말을 케케묵은 말이라고 지나치는 사람이 있다면 혼자 살아가는 삶이 만족스러울 것이라는 확신이 있느냐고 묻고 싶다. 결혼이 인륜지대사라고 하는 건 그만큼 신중한 선택을 해야 한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한비야씨가 지구 건너편에서 반려자를 찾아 어느 한쪽도 일상을 포기하지 않고 나누어 사는 결혼생활이 실험적이라고 했다.

  실험적 결혼생활, 하지만 그 누구에게도 결혼생활이 실험적이지 않을 수는 없을 것이다. 이십 년을 살았던 삼십 년을 살았던 결혼을 하더라도 살아온 지난 날이 훼손되거나 포기하지 않고 이어지기를 바랄 것이다. 한 남자와 한 여자가 결혼이라는 인생길의 통과의례를 치르고 부부가 되더라도 삶의 연속성이 온전히 보전될 수 있는 길을 이 책에서 엿보게 된다.

  이제 갓 예순에 접어든 나도 삼십오 년간 함께 살아온 아내의 인생을 돌이켜 본다. 그대는 왜 시댁의 며느리로, 나의 아내로, 딸의 어머니로 대명사의 삶을 살아오셨는가? 남은 인생을 온전한 그대의 삶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하려면 내가 그대를 위해 어떻게 해야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