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이야기/단독주택 양산 지산심한

단독주택 知山心閑, 터에 집을 앉히다

무설자 2020. 9. 28. 1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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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산리 단독주택, 심한재 설계작업기 2

  단독주택 知山心閑-터에 집을 앉히다

 

  터무니를 면밀하게 읽어내어 대지 주변을 살피는 작업이 마무리되고 나면 이제 터에 집을 앉히게 된다. 우리나라의 옛집을 살펴보면 중국이나 일본뿐만 아니라 세계의 어떤 나라와도 다른 외부공간체계를 가지고 있음을 알게 된다. 우리나라 한옥만 가지고 있는 마당이라는 독특한 쓰임새를 가진 외부공간을 쓰고 있다는 것이다.

  마당은 지붕만 없을 뿐 안채의 대청에는 안마당, 사랑채에는 사랑마당, 정지에는 정지마당, 행랑채에는 행랑마당으로 내부 용도와 이어진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우리의 옛집은 내부공간과 외부공간이 하나의 영역으로 묶여 있어서 담장으로 둘러싸인 전체가 이 되는 체계를 갖고 있다. 즉 건물의 내부 위주로 지어서 쓰는 요즘 단독주택은 옛집에 비해 반 밖에 쓰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지금 짓는 집이라고 해도 우리 한국의 주택은 그 뿌리를 한옥에 두고 설계를 해야 한다. 왜냐하면 누구나 나이가 들어가면 조상이 물려준 유전자가 발동이 되어 생활하게 되기 때문이다. 즉 정신이 지배하는 주관적인 이성이 점점 힘을 잃게 되고 유전자가 반응하는 감성이 이끄는 생활을 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집은 개성 있게 지으려 하기보다 한국인으로 살아야 하는 집이란 어떠해야 할까?’에 주목하고 그 점을 미리 예측해서 짓는 게 좋다.

  요즘 짓는 단독주택을 보면 편리함에 익숙해진 아파트 평면을 대지의 한쪽으로 놓고 넓은 잔디밭을 앞에 두는 집이 대부분이다이렇게 짓는 단독주택으로는 흙을 밟으며 살고자 하는 바람이 충족되기 어렵다. 내부공간과 연계되는 외부공간을 구성해야 조상님들이 물려준 유전자가 감응하는 집이 된다는 걸 꼭 강조하고 싶다.

 

  대지에 지어져 있는 집을 살펴보니

  현재 심한재의 집터에는 지은 지 4년 밖에 안 된 주택이 있다. 경사진 사다리꼴 진입공간을 오르면 장방형의 집터에 동향으로 정면을 두어 배치가 되어있다. 거실 앞에는 목재 데크를 설치해서 외부공간을 삼았고 남쪽에 터를 비워두었지만 내부공간과의 연계는 되어있지 않다.

  백오십 평의 대지에 서른 평의 집을 앉혔는데 쓸모 있는 외부공간은 거실 앞의 데크 밖에 없다. 집이 점유한 주변을 빼고 거의 백여 평이 쓰임새 없이 버려진 셈이다. 건물을 서쪽과 북쪽으로 붙여서 배치를 했는데 그 쪽에 위치한 주방과 연계되는 뒤뜰도 없다.

  경량철구조와 패널로 경제성을 따져서 값싼 소재로 지은 집이지만 배치와 평면을 살펴보니 터무니없는 집이라고 할 수밖에 없어 보인다. 골조나 재료를 탓하며 좋고 나쁜 집으로 부를 수 없다. 모양새로만 보는 집은 값비싼 재료로 화려하게 디자인한 외관에 눈길이 가겠지만 쓰임새를 살핀다면 소재만을 탓할 수 없지 않겠는가?

  시공자와 현장을 살피면서 착공을 하면 허물어낼 집을 살펴보니 벌써 기울어지고 있는 것을 확인하였다. 백년을 써도 좋은 집을 지어야 할 텐데 십년도 버티지 못하고 벌써 무너지고 있다니 기가 막힌다. 터무니없는 우리의 집짓기 현실이 이와 무엇이 다른지 생각해 볼 일이다.

 

진입도로에서 대지의 상단으로 올라가는 경사지 처리가 만만치 않은 숙제가 된다. 집터에 있는 기존 주택은 거실에서 동향으로 목재데크로만 열린게 되어있다.
기존주택의 외부공간은 난간으로 구획된 목재데크만 쓰게 되어 있다. 시멘트로 포장된 외부공간이 흉물스럽게 보인다.

 

  터를 두 영역으로 나누다

  지산심한知山心閑의 집터는 크게 상단의 평지와 도로와 이어진 경사 진입부분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터의 생김새를 살펴 장방형으로 반듯하게 쓸 수 있는 상단영역을 구분해서 집터로 쓰고 경사진 영역은 집으로 들어오는 진입공간으로 써야겠다고 보았다. 집터의 형국이 높이 돌출되어 있어서 주위에서 주목을 받게 되어 있으니 경사진 영역에 집으로 들어오는 통과의례의 과정적 공간의 의미를 부여하기로 하였다.

  지산심한의 집터는 사실 정자를 놓고 주변의 경관을 바라다보면 좋을 자리이다. 그러나 주택을 지어야 하니 남의 시선에 노출되어서는 곤란하지 않겠는가? 집이 앉는 자리는 담장을 둘러서 사위四圍의 시선을 막고 경사로 부분에는 단을 지은 조경 공간을 두어 진입영역으로 처리했다.

  주차는 집터의 삼면에 면한 도로의 서쪽 끝에서 집 안으로 바로 들어올 수 있다. 지산마을 진입로에서 바라보이는 집은 담장과 지붕만 보이지만 조경으로 단장된 진입공간은 전화위복의 결과이다. 조경 공간 사이로 난 계단으로 걸어 오르며 집에 대한 기대감을 증폭시키는 과정적 공간의 연출이 지산심한의 백미라 할 것이다.

 

 

  내외부가 어우러지는 네 곳의 마당

  지산심한은 집의 규모가 서른 평이지만 일층으로 지어지므로 내외부공간의 연계가 아주 중요하다. 아파트처럼 내부공간만 쓰고 바깥을 조경위주로 처리해버린다면 한옥을 계승하는 우리집이라 할 수 없을 것이다. 전문용어로 유기적 건축이라 표현하는 터무니가 녹아있는 집은 전통을 잇는 우리 주택의 기본이 된다.

  지산심한은 네 곳의 마당이 있다. 대문을 들어서면 '사이마당'이 있고 그 오른쪽에 '너른마당', 왼쪽이 '햇살마당', 집의 뒤쪽에 '뒷마당'이 그것이다. 거실영역은 목재데크와 이어지는데 '햇살마당'과 '사이마당'이 하나가 되어 동적動的인 영역이 된다'너른마당'은 한실에서 툇마루로 이어진 정적靜的인 영역이다. '뒷마당'은 주방과 다용도실과 하나 되어 일상생활을 지원하는 공간으로 쓴다.

  대문을 열고 들어서면 오른쪽은 한실과 침실, 너른마당이 하나가 된 북쪽의 정적 영역이다. 왼쪽은 거실과 하나 된 햇살마당과 사이마당이 남쪽의 동적 영역이며 주차공간으로 뒷길로 연결된다. 뒷마당은 아무리 넓게 두어도 모자라는 생활 영역이 되는데 빨래를 널고 외부공간을 관리하면서 쓰는 기자재도 보관하는 등 쓰임새가 많다는 것은 살아보면 알게 된다.

 

 

  터를 나누어내는 작업인 배치는 설계에서 밑그림을 그리는 아주 중요한 과정이다. 여생을 담아낼 단독주택을 설계하면서 멋들어진 외관에만 관심을 기울이고 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서구식 주택을 사진으로만 보고 마당의 중요성을 간과하는 게 요즘 짓는 단독주택의 현실이다. 우리집은 내외부 공간이 하나 되어야만 한국인이라는 유전자가 받아들이게 된다.

  이 시대의 한옥으로 짓는 우리집의 핵심은 집의 배치에서 마당을 찾아내는 데 있다. 지산심한의 네 곳의 마당은 집 안의 방들과 잘 융합되어 빠짐없는 우리집으로 자리 잡았다.

 

  무 설 자

 

-DAMDI E.MAGAZINE 연재중 (2020,09 )

다음 편은 '어떤 집이 아니라 어떻게 살 집으로 담아내는 평면 이야기'로 글을 이어간다.

 

  무설자(김정관)는 건축사로서 도반건축사사무소를 운영하고 있으며, 집은 만들어서 팔고 사는 대상이 아니라 정성을 다해 지어서 살아야 한다는 마음으로 건축설계를 하고 있습니다. 어쩌다 수필가로 등단을 하여 건축과 차생활에 대한 소소한 생각을 글로 풀어쓰면서 세상과 나눕니다.

  차는 우리의 삶에서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이만한 매개체가 없다는 마음으로 다반사로 차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집을 지으려고 준비하는 분들이나 이 글에서 궁금한 점을 함께 이야기를 나눌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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