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이야기/단독주택 양산 지산심한

단독주택, 知山心閑 - 집을 생각하는 화두, '얼마나'와 '어떻게'

무설자 2020. 7. 30. 1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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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산리 단독주택, 심한재 설계작업기 프롤로그

집을 생각하는 화두, ‘얼마나어떻게

 

지산심한의 집터는 통도사가 있는 영축산을 배경으로 하는 지산마을의 입구에 위치하고 있다. 靈山인 영축산의 기운을 받을 수 있길 바란다.

 

통도사가 있는 영축산 자락의 양산 지산리에 집터를 잡은 단독주택 설계 작업이 마무리 단계에 이르고 있다. 건축주는 집의 규모를 서른 평 이하의 단층으로 지으려고 했다. 여태껏 서른 채 가까운 단독주택을 설계했지만 최소 마흔 평은 넘어야 방이 세 개가 들어가면서 손님이 묵어갈 수 있는 집이 된다.

 

서른 평 정도의 규모로 집다운 집을 지을 수 있을까? 아파트의 규모와 비교해서 생각해 보면 전용면적 25.7 평이면 방이 세 개가 나오는 살기에 부족함이 없는 넉넉한 집이다. 물론 발코니를 법이 허용하는 대로 확장한 상태라서 거의 마흔 평에 가까운 면적이 된다.

 

단독주택의 서른 평은 아파트로 치면 분양면적 스무 평 초반 대에 해당되는 규모가 될 것이니 평생 살아야 하는 집으로는 부족할지도 모른다. 평소에는 부부만 지내면 되지만 가끔 손님이 와서 묵어갈 침실까지 해결해야 한다는 목표를 두고 작업에 들어갔다. 규모가 얼마나 되어야 하나?’라는 조건보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명제의 차이를 생각해야 했다.

 

유마경에 이런 얘기가 나온다. 경의 제목에 언급된 유마거사가 병이 났다는 소식을 듣고 붓다는 문수보살의 대표로 문병을 다녀오라고 한다. 유마거사의 집에 도착해서 붓다의 제자인 사리불은 작은 방에 이 많은 사람들이 들어갈 수 있을지 걱정을 하는 대목이 있다.

 

그 때 사리불(舍利弗)은 이 방안에 앉을 자리[牀座]가 없는 것을 보고 이렇게 생각하였다.

'이렇게 많은 보살과 수많은 대제자들은 어디에 앉아야 할 것인가?'

장자 유마거사는 그러한 마음을 알고 사리불에게 말하였다.

"도대체 그대는 진리[]를 구하기 위하여 온 것입니까, 아니면 앉을 자리를 원하는 겁니까?"

사리불이 말하였다.

"저는 진리를 위해서 왔지, 앉을 자리 때문에 온 것은 아닙니다."

유마거사는 말하였다.

"알았습니다, 사리불이여. 진리를 구하는 사람은 신명[軀命]도 돌아보지 말아야 하는데, 하물며 앉을 자리에 집착해서야 되겠습니까?“ -[출처] 유마경 부사의품|작성자 임기영불교연구소

 

집터는 도로에서 3미터 정도 높여서 석축으로 돋우어서조성했고 멀리 영축산 능선이 보인다. 이 터에는 이미 서른 평 규모의 집이 있는데 지은지 오래되지 않아보이는데 사람이 산 흔적이 보이지 않는다. 공사를 시작하면 이 집은 허물어지고 말 텐데 이 집의 팔자가 참 사납다.

 

집을 지으려고 하는 사람은 어떤 부분에 관심을 가지고 있을까? 아마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떻게 살 집이라는 쓰임새보다 모양새에 치중하는 어떤 집을 지을 지 더 관심을 두는 경우가 많을 것이다. 집의 모양새는 집에서 누리는 삶의 질은 분명 쓰임새를 잘 살펴야 한다. 그런데 이와 무관하게 근사하고 특이한 외관의 모양새을 자랑꺼리로 삼으려는 경우가 많다.

 

집을 지으려는 결심을 하고 나서 어떤 집이어야 하는지 인터넷을 검색하고 단독주택에 대한 책을 구입해서 눈에 드는 집을 찾으려고 애를 쓴다. 심지어 인터넷에서 찾은 집의 외관을 보여주며 나머지는 설계자에게 알아서 해달라며 맡기는 경우도 많다. 보기에 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는 말이 집에서도 과연 그럴까?

 

병문안을 온 붓다의 제자가 방이 작아서 문병객이 다 들어갈 수 있을까 걱정을 할 때 이 곳에 온 목적이 뭐냐고 물었던 유마거사의 질문을 생각해보자. 방의 크기에 잠깐 관심을 두었던 제자는 유마거사의 한 마디에 곧 그가 이 곳을 찾아왔던 목적을 돌이켜보며 정신을 차리게 된다. 그대는 무엇을 하려고 여기에 왔는가?

 

단독주택을 지으려고 하면 그들이 살고자 하는 삶에 대한 관념적인 생각에서 구체화된 구상으로 정리해야 한다. 건축사는 건축주의 구체화된 삶의 구상을 집으로 옮겨내는 역할을 한다. 건축주는 건축사가 그려낸 도면을 확인하면서 그들이 살고자하는 삶이 그 집에서 이루어질 수 있을지 판단해야 한다.

 

집터에서 보이는 풍경, 앞에 보이는 案山이 편안하니 이 터는 당호처럼 마음이 한가로운 삶을 누리게 할 수 있을 듯하다.

 

이제 영축산을 배경으로 한 지산리 단독주택의 설계가 마무리되려고 한다. 건축주는 심한재心閑齋라고 당호를 미리 지어서 화두처럼 나에게 던져 주었다. 나는 설계자로서 당호의 의미대로 이 집에 살면 마음이 편안해질 수 있을지 생각의 끈을 놓지 않으려고 애썼다.

 

건축주 부부는 이 집에 들어오면서 버릴 수 있는 것은 다 버릴 것이라고 한다. 무엇이든 가지는 그만큼 얽히고설켜서 속박되므로 버리고 사는 삶을 택하려고 한다는 것이다.

 

침실에서는 잠을 편히 잘 수 있도록 침대만 들일 것이며, 서재에서는 책을 읽고 차를 마시면 되니 서가도 없이 한 줄의 선반에 좋아하는 책 몇 권을 두면 그만이라고 한다. 주방에서도 한 끼의 식사에 감사할 수 있는 조리를 할 것이며 거실에 TV는 두되 암체어 두 개를 놓고 대화하는 시간을 많이 가질 것이라고 했다.

 

심한재心閑齋, 건축주가 화두처럼 던진 당호를 해석하면서 그려낸 스케치가 건축주와 만남을 거듭하며 다듬어져 그들이 바라는 집으로 구체화되어가고 있다. 설계자가 구상한 집의 얼개가 그들에게는 군두더기로 보이는 것이 많았다. 살아보면 필요할 것이라고 만들어낸 수납공간을 지워내면서 눈에 보이는 것을 비우면 비울수록 마음이 그만큼 풍요해 진다고 했다.

 

비우면 비운만큼 선명해지는/홀가분한 존재의 가벼움이라는 임영조 시인의 시구를 읊조려본다. 작은 집이기에 선명해지는 건축주의 삶이 또렷하게 다가온다. ‘크고 많은 것을 원하기 때문에 작은 것에서 오는 아름다움과 고마움을 잃어버렸다는 법정스님의 말씀처럼 이 집에서 사는 삶이 아름답고 고마움으로 채워질 것이라 확신한다.

 

 

무 설 자

 

 

-DAMDI E.MAGAZINE 연재중 (2020,07 )

다음 편은 '집터에서 읽어낸 心閑齋 터무니'로 이야기를 이어간다.

 

 

 

무설자(김정관)는 건축사로서 도반건축사사무소를 운영하고 있으며,

집은 만들어서 팔고 사는 대상이 아니라 정성을 다해 지어서 살아야 한다는 마음으로 건축설계를 하고 있습니다.

어쩌다 수필가로 등단을 하여 건축과 차생활에 대한 소소한 생각을 글로 풀어쓰면서 세상과 나눕니다.

차는 우리의 삶에서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이만한 매개체가 없다는 마음으로 다반사로 차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집을 지으려고 준비하는 분들이나 이 글에서 궁금한 점을 함께 이야기를 나눌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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