茶 이야기/에세이 차 이야기

춘래불사춘-대책없는 봄날

무설자 2020. 2. 27. 11:50
728x90

무설자의 에세이 차 이야기 2002

春來不似春, 대책없는 봄날


절기로 보나 날씨를 보나 분명히 봄이 온 게 틀림없다.

겨울같지 않게 따뜻했던 기온 탓에 봄이 서둘러 온 듯 매화가 빨리 피었다.

겨울이 추워야 계절 경기가 사는데 등 돌린 날씨에다 이상한 바이러스마저 엎친데 덮쳤다.



뒷산 약수터가 있는 정각사 주차장에는 매화가 눈부시게 만개했다.

찻물을 받으러 가는 길에 매화 꽃봉오리를 몇 알 따와서 뜨거운 물에 우렸다.

겨울을 보내고 봄을 맞이하는 의식을 치르듯 가만히 매화향을 음미해본다.



대책없는 봄날

                                                임영조


얼마 전,
섬진강에서
가장 이쁜 매화년을 몰래 꼬드겨서
둘이 야반도주를 하였는데요

그 소문이
매화골 일대에
쫘아악 퍼졌는지 어쨌는지는 몰라도
도심의 공원에 산책을 나갔는데



거기에 있던 꽃들이 나를 보더니만
와르르-웃어 젖히는데
어찌나 민망하던지요
거기다 본처 같은 목년이
잔뜩 부은 얼굴로 달려와
기세등등하게 넓다란 꽃잎을
귀싸대기 때리듯 날려대지요

옆에 있는 산수유년은
말리지도 않고 재잘대기만 하는 폼이
꼭 시어머니 편 드는
시누이년 같아서 얄밉기도 하고요
개나리도 무슨일이 있나 싶어
꼼지락거리며
호기심어린 싹눈을 내미는데요


아이고,
수다스런 고 년들의 입심이 이제
꽃가루에 사방 천지에 삐라처럼 날리는데요
이 대책없는 봄을 어찌 해야겠습니까요




코로나19라는 바이러스가 창궐해서 봄 날씨도, 만개한 매화도 눈 밖에 난 시절이다.

꽃은 저만치서 피어 있다지만 움추린 몸만큼 마음도 봄날을 맞을 여유를 가질 수 없다.

고 년들이 수다를 떨던 말던 대책없는 코로나19 사태에 어려운 불경기를 어떻게 피해갈 수 있을지...


시인이 얘기하는 봄날 꽃들의 수다에 대책없지만 이 봄이 가기 전에 무슨 대책이 섰으면 좋겠다.

기대에 부풀어 맞이한 耳順에 드는 경자년이 시작되자말자 이 무슨 날벼락이란 말인가?

봄꽃의 자태에 눈길을 줄 여유 없는 내 모습이 서글픈데 이 또한 지나갈 거라 위로하듯 봄꽃이 피어나고 있다.



무 설 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