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이야기/행복한 삶을 담는 집 이야기

단독주택이 "우리집'이 되어야 함에 대하여-2017 부산건축제 개막강연 원고

무설자 2019. 8. 2. 1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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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독주택이 우리집이 되어야 함에 대하여

- 2017 부산국제건축문화제(주제-Living in the City) 개막강연 원고  

 

  김 정 관

 

우리는 누구나 집에 산다바깥에서 지내다가 집으로 가는 게 아니다집에서 지내다가 잠깐 밖으로 나간다바깥에서 잠시 볼 일을 보고 다시 집으로 돌아간다그래서 더 이상 갈 곳이 없어지는 곳그곳이 집이다.

                                                                                               -이갑수 산문집 '오십의 발견

 

‘더 이상 갈 곳이 없어지는 곳, 그곳이 집이다.’ 집에 대한 정의가 이보다 더 명쾌할 수 있을까? 집은 일상의 시작점이자 종점이다. 누구에게나 하루 일과를 마치면 돌아갈 곳은 ‘집’ 일 수밖에 없는데 그 ‘집’을 잃고 방황한다. 밤 열 시 경이면 식구들이 모두 집에 있어야 할 시간인데 아파트 단지를 돌아보면 불이 켜지지 않은 집이 많다. 불이 켜지지 않은 집에 사는 사람들은 ‘집’을 찾지 못해 방황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그게 아니면 ‘집’으로 돌아오는 길을 잃어버린 것일까? ‘집’을 찾지 못해 방황하는 그들은 어디에 가 있는 것일까?

더 이상 갈 곳이 없어지는 곳, 그곳이 집이다

 

돌아갈 곳을 잃고 매일 방황하는 사람들은 잠자는 시간이 되어서야 숙소宿所로 돌아온다. 수 있을까? 새로 분양하는 아파트는 새로운 평면으로 진화되었다고 하면서 이보다 더 좋은 집이 없다며 광고를 띄운다. 도대체 어떤 집이라야 좋은 집이라고 할 수 있을까? 사람이 집을 만들지만 나중에는 집이 사람을 만들어간다고 하는데 그동안 아파트는 어떤 삶으로 사람을 만들어 왔을까?

 

아파트는 우리네 가족 해체를 주도해 온 것은 아닐까? 삼대가 모여 살던 전통적인 대가족 구성이 아파트를 집으로 삼으면서 핵가족 구성으로 바뀌어 버렸다. 최근에 와서는 핵가족 구성마저 무너지고 혼자서 살아가는 일인 가구 비율이 급속도로 증가하고 있다. 혹자는 아파트가 일인 세대로 가는 것을 주도했다는 증거가 있느냐고 이의 제기를 할지도 모르겠다. 그 원인이 이것이라 답처럼 근거를 제시할 수는 없지만 얼마 가지 않아서 일인 세대 비율이 우위에 이를 것이라 예측되고 있다.

 

필자 설계 부산 부산진구 초읍동 이입재-우리집은 식구들이 돌아오기를 기다린다

 

과 집밥의 관계

 

혼자 사는 사람들이 가장 그리워하는 음식은 무엇일까? 아마도 ‘집밥’일 것이다. 식당의 메뉴로 등장하기 시작했고 집밥 전문점까지 생겨나고 있다. 국어사전에도 등재되어 있지 않았던 ‘집밥’이 가장 선호하는 음식 메뉴라니 아이러니하지 않을 수 없다. 집에서 먹는 밥이 집밥인데 왜 음식점의 메뉴에 오르고 전문점이 생기는 것일까?

 

집밥을 먹고 싶어 하는 사람들은 ‘집’에 살고 있지 않는지도 모르겠다. 혹은 ‘집’에 살고 있지만 집에서 밥을 먹지 못하기 때문일까? 그냥 배를 채우기 위해서 먹는 ‘밥’이 아니라 나를 생각해서 정성을 들여 차린 ‘밥’이라야 마음까지 채워진다. 배는 어떻게 먹든 채울 수 있지만 마음의 허기는 ‘집밥’이 아니면 달랠 수가 없다.

 

우리가 통칭해서 ‘집’이라 하는 건 ‘house’가 아니라 ‘home’ 일 것이다. 원룸 주거이거나 고급 아파트이든 상관없이 ‘집밥’을 먹을 수 없다면 그 집은 ‘home’ 일 수 없다는 얘기다. 우리가 그리는 ‘집’은 ‘house’가 아니라 ‘home’이다. 지어서 파는 집인 아파트는 그동안 ‘home’으로 살 수 있는 소프트웨어를 얼마나 내장해서 공급했을까?

 

기성품 주거와 맞춤 주거

 

요즘 단독주택이 붐이라고 할 만큼 급속도로 집 짓기가 이루어지고 있다. 아파트에서 살다가 단독주택으로 옮겨가는 이유는 한 가지만 든다면 좀 더 나은 삶을 원하기 때문이라 얘기하면 어떨까? 좀 더 나은 삶을 다르게 표현한다면 행복한 삶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 식구들의 삶을 기성품 주거인 ‘집 틀’에 찍어낸 듯이 공급된 아파트에다 맞추어야 하니 행복해지기 어려웠을지도 모른다. 처칠의 말처럼 사람이 집을 만들지만 나중에는 그 집이 사람을 만들어간다고 한다면 우리 가족만의 행복한 삶이 아파트에서 보장되기는 어려울 것이다. 아파트에는 우리 가족이 행복하게 살 수 있는 맞춤 소프트웨어가 들어있지 않기 때문이다.

‘아파트에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라고 생각해보니 몇 가지밖에 없는데 
단독주택에서는 무엇이든 다 할 수 있다

아파트, 아파트, 아파트... 우리는 아파트에 살면서 '우리집'이라고 생각할까?

 

단독주택을 지어서 살려고 하는 것은 우리 가족을 위한 맞춤 행복 소프트웨어를 집에 내장하려고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단지형으로 지어서 분양하는 기성품 단독주택을 구입해서 산다면 아파트와 무엇이 다를까? 우리집이라면 ‘행복’이라는 키워드를 항목별로 수도 없이 입력하여 구성한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는 집’이라는 소프트웨어가 효과적으로 구동되어야 한다. 

 

‘아파트에서 무엇을 할 수 있느냐?’에 몇 가지밖에 없었다면 ‘단독주택에서는 무엇이든 할 수 있다.’라는 상상 가능한 모든 일상을 담아낼 수 있어야 한다. ‘집’이라는 명제에 우리 식구들만의 개성 있는 생활을 담아낼 수 있을 때 맞춤집이라 할 수 있다. 맞춤옷을 지어 입을 때 옷을 짓는 중간에 가봉이라는 과정을 거쳐서 체형마다 다른 특징을 반영해서 옷과 몸이 하나 되도록 한다.

 

우리집은 우리와 의 화학적 결합

 

우리나라 사람들은 나와 관련된 단어에 ‘우리’라는 접두어를 꼭 붙인다. ‘우리집’, ‘우리 엄마’, ‘우리 친구’ 뿐 아니라 ‘우리 와이프’라고까지 쓴다. 우리는 곧 나의 주변 사람들을 나의 범주에 넣는 한국인의 인간관계 사고방식 때문일 것이다.

 

‘우리 집’과 ‘우리집’은 엄연히 다르다. ‘우리 집’은 우리의 집이기에 그 집에 같이 사는 사람들에게 한정되는 관계의 우리이다. 하지만 ‘우리집’은 나와 관련된 사람들이 찾아올 수 있는 집으로 집과 사람의 관계가 확대된다. 오래전에는 손님이 집에 찾아와서 묵어가는 것은 예삿일이었다. 가장의 지인이 묵어갈 때는 안방을 안주인이 비워주는 것이 상례였다. ‘우리’가 확대된 개념의 ‘우리집’을 단편적으로 보여주는 예이다.

‘우리 집’과 ‘우리집’은 엄연히 다르다

 

우리 식구만의 집이 아니라 가족의 지인知人들은 ‘우리집’을 자유롭게 드나들었고 끼니때가 되면 ‘우리 식구’가 되어 함께 밥을 먹었다. ‘우리’를 붙여 쓰는 사람들은 ‘우리집’을 공유하면서 살았던 것이다. ‘우리’의 범위가 확대될수록 ‘우리집’은 그만큼 찾아드는 사람들이 많아서 생기가 넘치게 될 것이다.

 

이 시대에 ‘우리집’의 개념이 접목된 집이 얼마나 있을까?

 

우리집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사는 집

 

유교 문화권의 동북아시아 삼국에서도 ‘우리집’은 일본집이나 중국집과는 다르다. 집을 쓰는 주거문화가 확연히 다르기 때문이다. 이 시대에 입식 생활이라는 주거 방식을 삼국이 함께 가지더라도 다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전통 주거에서 보면 중국은 입식 생활을 했고, 우리와 일본은 좌식 생활을 했다. 일본과 우리가 좌식 생활이라는 공통분모가 있었지만 바닥 난방의 유무에서 집을 쓰는 주거문화에서 큰 차이를 만들었다. 중국의 집은 미음자 배치로 중정에서 각 방으로 출입이 이루어지고, 일본의 집은 현관으로 출입을 하며 방들의 출입이 내부 복도에서 이루어진다.

유교 문화권의 동북아시아 삼국에서도 ‘우리집’은 일본집이나 중국집과는 다르다

경주 양동마을 관가정 사랑채와 사랑마당

 

‘우리집’은 마당에서 바로 방으로 출입이 이루어지기에 내외부의 공간 연계성이 매우 중요하다. ‘우리집’은 사랑채와 안채를 엄격하게 구분을 해서 내외 공간의 구분이 뚜렷해서 안팎의 독자적인 생활이 가능했다. 손님은 사랑채에서 자유롭게 머물렀고 안채는 외부인의 출입이 제한되므로 안정되게 생활할 수 있었다.

 

‘우리집’은 한옥韓屋이라는 전통을 이어서 이 시대의 단독주택으로 지어야만 우리나라 사람이 제대로 살 수 있을 것이다. 우리들의 몸에는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유전자(DNA)가 한옥의 얼개에 맞추도록 반응을 하기 때문이다. 이 시대에 짓는 단독주택인 ‘우리집’은 한옥으로부터 이어지는 집의 맥락을 적용해야 어떤 사람에게도 편안하게 생활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집’, 사랑채와 안채로 채 나눔 하여 손님을 부르는 집

 

이 시대의 주거문화는 아파트 생활로 굳어지면서 집에 손님이 들지 않게 되었다. 부부공간 위주로 얼개가 짜인 아파트는 아이들마저 객 신세가 되어 대학생이 되면 원룸을 구해 서둘러 독립해 버린다. 부부 이외의 식구들이 편치 않은 아파트는 고인 물이 생기를 잃듯이 정체된 삶을 살게 된다.

 

한옥韓屋의 전통을 이은 단독주택을 제안해서 집을 지어오고 있는데, 사랑채의 역할을 거실동이 맡아주고, 안채의 기능은 침실동이 수행하면서 일층은 한실이 포함된 부부공간이 된다. 이층에 있는 방은 아이들이 쓰다가 출가를 하면 손님들의 방이 된다. 거실동을 1미터 정도 바닥을 들어서 계단참과 연계하면 이층과 일층의 매개공간의 역할을 수행하게 된다.

이 시대 우리 주거문화에서 회복해야 할 한 가지를 든다면
손님이 찾아올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경남 양산 심한재 설계 초기 단계의 스케치, 사랑채 개념으로 거실동을 침실과 구분했다

 

아이들도 결혼을 하면 며느리나 사위와 함께 손님이 된다. 며느리와 사위가 묵고 가기에 불 편한 집이라면 손주들도 할아버지 할머니와 친해질 기회가 없어진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찾아드는 사람이 많아야 외롭지 않을 것이다.

 

사랑채와 안채로 채 나눔을 하고, 안채인 침실동은 주인과 객의 영역을 층으로 나누니 손님과 주인이 다 편한 집이 된다. 그러다 보면 손님의 방문이 잦아져서 은 집은 흐르는 물처럼 생기가 넘치는 집이 된다. 물론 제일 반가운 손님은 자식이요, 자식이 출가하면 손주가 된다.

 

우리집’, 유지관리에 얽매이지 않아야 되는 집

 

단독주택을 지어서 살아본 사람들이 머리를 흔들며 힘들어하는 것이 집의 유지관리이다. 비가 새지 않고 물이 잘 빠지는 건 집 짓기의 기본인데 이 부분도 만족시키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또 외장마감을 제대로 선택하지 못해 백화현상, 비에 의한 오염 등으로 손을 쓰지 못하게 되는 집이 많다.

 

비가 새고 외장재가 오염되면 그 유지관리의 몫은 건축주가 된다. 유지관리에 매달리다 보면 집을 쓰는 즐거움은 사라지고 짐덩이가 되고 만다. 유지관리에 신경을 덜 쓰는 만큼 편안한 집이 되고 생활이 즐거운 건 물론 부동산의 가치도 유지되게 된다.

유지관리에 신경을 덜 쓰이는 집에 살아야만 
생활이 즐거운 건 물론 부동산의 가치도 유지되게 된다

 

백 년을 살아도 되는 집을 지을 수 있는 팁은 의외로 간단하다. 한옥처럼 집의 사방으로 처마가 충분히 빠져나온 지붕을 두고, 외부공간은 잔디마당을 줄이고 내부 공간과 연계된 다양한 성격을 가진 영역을 많이 두면 된다. 1미터가량 처마가 나온 지붕이 있는 집은 외장재의 유지나 외벽에 발생되는 하자요인을 근본적으로 막아준다. 또한 남향 쪽의 처마는 여름 햇살을 긋고 겨울 햇볕은 실내로 충분히 들이는 집이 된다. 단독주택은 나 혼자 만족스러운 집이 아니라 식구들이 모두 좋아하는 ‘우리집’이라야만 일상의 즐거움과 함께 부동산으로서의 가치가 오래 유지된다.

 

필자 설계 경남 양산 심한재-건축주와 설계자뿐 아니라 손님들도 좋아하는 집이다

 

단독주택을 눈으로 보는 디자인이 우선한 집으로 지어서는 안 된다. 디자인 위주의 집은 설계자나 건축주 한 사람이 만족할 수는 있지만 식구가 다 좋아할 수 있는 ‘우리집’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건축은 소수의 의지가 실린 ‘창작’의 행위가 아니라 사용자 모두가 만족할 수 있는 ‘창조’의 작업이어야 한다.

 

건축이라는 영역은 ‘행복한 삶을 위한 제반요소’를 빠짐없이 담아내는 작업이며 디자인의 역할은 건축적 작업이라는 몸을 만든 이후에 옷을 입히는 것이다. ‘우리나라 사람의 삶’이라는 지역적, 역사적, 심성적인 주거행태가 담겨 있어야만 비로소 ‘우리집’이라 할 것이다.

 

우리에게 집은 ‘우리’가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할 수 있는 ‘우리집’에 살아야 하지 않겠는가?

 

 

 

무설자(김정관)는 건축사로서  도반건축사사무소를 운영하고 있다 .

메일:kahn777@hanmail.net

전화:051-626-626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