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이야기/행복한 삶을 담는 집 이야기

창으로 닫혀 있는 집 아파트, 문으로 열려 자연과 소통하는 단독주택

무설자 2019. 2. 14. 1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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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설자의 행복한 삶을 위한 집 이야기 16

  창으로 닫혀 있는 집 아파트, 문으로 열려 자연과 소통되는 단독주택 

  -'창문'으로 세상과 不通되는 집 아파트와 '문'으로 열려 내외부가 하나 되는 단독주택 우리집

 

   주인에게는 가랑비, 손님은 이슬비

 

주인의 입장에서는 마뜩잖은 손님이 영 돌아갈 기색을 보이지 않는데 때마침 보슬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주인은 얼씨구나 손이 어서 가주길 바라는 마음을 실어 가랑비가 내린다고 했겠다. 왠 걸 손님은 그 뜻을 알아차리고는 이슬비가 내린다며 더 있고 싶은 의중을 전했다나 어쨌다나. 손님의 왕래가 잦았던 시절의 우스개 얘기라 요즘  아파트 살이에서는 실감이 나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예로부터 집은 손님이 자주 들어야 흥하는 기운이 돌고, 객의 발걸음이 끊어지면 기운이 쇠한다고 여겼다. 한옥의 대문을 보자면 집 안으로 향해 여닫게 되어 있다. 집에 들이기는 하되 내보내지는 않겠다는 의중이 담겨 있는 것이렸다. 여닫는 방향이 집 안으로 향하는 옛집의 대문과 집 밖으로 향하는 아파트 현관문을 비교해 본다. 안으로 여닫는 옛집은 어쩐지 그 집에 들고 싶다. 하지만 밖으로 향해 여닫는 요즘 집은 사람을 밖으로 내모는 듯하다

 

기본 삼대가 살았던 옛날에는 누구라도 집을 지키는 사람이 있었다. 그 시절의 집은 나갔다가 일이 마쳐지는대로 돌아오는 곳이어서 집이 사람을 기다리는 정서가 있었다. 가족 구성원 모두 밖에서 지내다시피 하는 요즘 아파트는 사람을 반기는 정서가 담길 수가 없다. 그래서일까 아파트 현관문은 주인도 알아보지 않고 무조건 사람을 뱉어내는 것 같다.

 

자식도 손님이 되어버린 요즘 아파트에서는 노후를 행복하게 보내기가 쉽지 않다. 조손祖孫의 인연을 지을 수 있어야 다복多福하다 할 수 있으니 손님이 머물 수 있는 집을 생각해 본다. 가장 귀한 손님인 며느리와 사위가 편히 머물 수 있는 집은 어떻게 지어야 할까?

 

 

   관가정觀稼亭으로 우리집의 원형原形을 본다

 

 

 

  경주 양동마을의 대표적인 반가班家인 관가정觀稼亭은 규모는 크지 않지만 조선시대의 사대부가의 전형을 보여준다. 급한 경사지에 입지하기에 담장이 없이 사랑마당과 사랑채를 두었다. 어차피 담장과 대문은 바깥과의 경계를 삼기 위함인데 급경사의 언덕에 터를 잡았으니 따로 담을 칠 필요가 없음이라.

 

관가정의 사랑채는 당호대로 누각 형태로 멀리 벌판을 바라볼 수 있도록 앉혔다. 사랑채에 오르면 기둥만 있는 마루든, 문을 열고 보는 방이든 이 공간은 정자처럼 세상을 향해 열려 있다. 경계 없는 공간이므로 손님이 언제든지 찾아올 수 있었고 며칠씩 묵어갈 수도 있었다고 한다.

 

안채는 중문으로 출입구를 삼아 바깥과 구분되는데 중정中庭을 끼고 미음자로 배치되어 있다. 하늘로 열린 중정을 가운데 두고 대청마루와 안방과 건넌방이 접하고 있다. 중정에 면한 안채의 내부공간은 창이 없이 모두 문을 통해 두 개의 방에서 대청마루로 출입하며, 안방에서는 마루방으로 전체벽면이 문으로 이루어져 문을 열면 하나의 공간이 된다.

 

관가정의 사랑채는 당호처럼 멀리 안강벌을 향해 열려 있다. 사랑채의 방은 창이 없이 문으로 누마루와 사랑마당으로 이어진다. 안채도 중정을 향한 벽은 문을 통해 하나의 영역으로 공간체계가 이루어져 있다. 문살과 창호지로 된 한옥의 문은 닫혀 있어도 소통이 이루어지는 벽이었다. 들어열개문은 공간의 확장성을 보여주는 열린벽의 성격을 지니고 있다.

 

한옥의 문은 궁극적으로 불통不通의 장벽이 아니라 소통疏通의 통로였던 것이다. 사랑채는 바깥세상과 열리는 공간이며, 안방은 식구들의 삶을 하나로 엮을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었다. 한옥의 문은 벽의 기능을 수행하면서 필요하면 항상 열릴 뿐 아니라 들어 올려져가면서 까지 공간을 확장할 수 있었다. 한옥의 문은 벽이 되기도 하고 어느 순간에는 천정에 올라가 없어지기도 하면서 필요한 공간이 만들어지는 소통의 매개체였던 것이다.

 

관가 정 전경, 담장과 대문은 최근에 설치했다.

 

관가정 사랑채와 사랑마당

 

  문이 없는 아파트, 창으로 막히다

 

은 벽의 연장으로 본다. 그러므로 창의 역할은 안팎을 구획하는 경계로서 철저하게 불통不通의 역할에 충실해야 한다, 시선은 이어주되 한기寒氣와 열기熱氣의 이동은 물론 동선의 출입도 막아야 하니 구동驅動이 가능한 벽이라 하겠다.

 

은 벽을 여는 통로이다. 벽의 일부를 터서 내부와 외부, 실과 실의 공간을 잇는 통로이다. 그러므로 문은 고정된 벽과는 반하는 역할을 한다. 때로는 공간을 구획하는 벽이 되기도 하지만 필요에 따라서 벽안에 매몰되거나 공중에 매달려 존재가 없어지기도 한다. 문이란 일시적으로 막기도 하지만 그 본질은 열어서 소통하는데 있다.

 

벽과 창으로만 이루어진 집이라면 그 공간의 성격은 미루어 짐작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불통의 공간, 내외부 공간은 물론이고 방과 방의 관계도 단절되어 있을 것이다. 발코니 확장이 적법하게 되어 거실 앞이 창으로 된 요즘 아파트가 바로 불통의 공간이 되고 말았다.

 

오래된 투베이 아파트는 앞뒤 발코니가 넉넉하게 살아있었다. 발코니 폭이 2미터까지 허용되었던 시절의 아파트 거실 분위기는 누마루 정자 같다. 뒷발코니로 문이 열리던 아파트는 앞뒤로 공간이 툭 트여 한 공간으로 이어지는 열린 개념의 집이었다. 공동주택에서 확보할 수 있는 최소한의 외부공간인 발코니에 나무를 심고 꽃을 가꿀 수 있는 여지가 있었다.

 

발코니는 바깥과 이어지는 매개영역이어서 거실의 큰 문을 통해 외부환경과 소통하는 공간이다. 이렇게 바깥세상으로 열리는 발코니를 없애 스스로 벽으로 가부족한 불편하게 살고 있는 것일까?.

 

겨울 햇살이 거실을 가득 채우는 이 광경은 발코니가 살아 있는 집이라야 볼 수 있고 누릴 수 있다. 발코니는 작은 정원이 되어 공중에 떠 있는 집의 최소한의 외부공간이 된다.

 

 

  문으로 소통하는 우리집

 

단독주택을 지어서 살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왜 편리하고 안전한 아파트를 떠나 살기에 불편한 단독주택에서의 삶을 로망처럼 여기는 것일까? 이런 분위기를 반증하듯 매달 온갖 매체에 잔디가 깔린 마당에 눈길을 끄는 디자인으로 반짝이는 단독주택이 근사한 사진으로 소개되고 있다.

 

만약 단독주택을 지어서 살고 싶다면 왜 나는 단독주택에 살고 싶어 하는 것일까?’라는 질문을 자신에게 던져 보아야 한다. 답이 바로 나오기 어려울지 몰라도 아파트에서는 살기 싫다는 한 가지 이유는 뚜렷할 것이다. 아파트는 벽과 창으로 이루어진 폐쇄된 공간에서 탈출해야 한다는 잠재된 위기의식 때문이지 않을까? 우리 식구들만의 집이라는 바람에 대한 요구치가 아파트에서 해결되지 않는다는 점이 큰 이유일 것이다.

 

집을 지으려고 하는 사람이 누가 되었던" 우리집’은 어떠해야 할까?"라는 화두의 답은 "단독주택은 아파트와는 달라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창이나 벽으로 막힌 집이 아닌, 가능한 문으로 열리는 개념이 적용된 얼개의 집이라야 한다. 한옥의 얼개는 열린 집, 받아들이는 집이라 할 수 있으니 해결책의 팁은 한옥에서 찾아볼 수 있다.

 

외부공간과 내부공간이 교감하는 집의 얼개를 가진 우리 한옥은 소통의 집이라 할 수 있다. 결국 우리집은 담장으로 에워싼 영역 전체를 벽과 창을 줄이고 내외부 공간을 문으로 소통시키면 된다. 거실은 큰 마당과 이어지고 서재는 조용한 안뜰과 하나가 되며, 주방은 다목적공간과 이어지고 식당은 햇살이 잘 드는 테라스와 한 공간이 되면 좋겠다.

 

단독주택을 단지 잔디 깔린 넓은 마당만 있는 집으로 인식하면 곤란하다. 일층의 모든 내부공간이 문을 통해 외부공간과 적절한 관계 맺기를 해야 아파트와 다른 우리집이 된다. 이층도 방이 베란다와 발코니를 통해 외부공간과 하나 되면 창이 아닌 문으로 열리는 공간이 된다.

아파트는 벽과 창으로 닫힌 누구의 집도 아닌 옆집이나 다름없다. 단독주택은 '문'을 통해 내외부 공간이 하나로 되면서 비로소 세상과 이어지는 우리집이 된다.

 

어떤 손님이라도 며칠 머물고 싶은 집, 가장 중요한 손님인 며느리와 사위가 기꺼이 찾고 싶은 집이라야 한다. 가족이 자주 모일 수 있는 여건을 집이 만들어져야 할배할매는 손주도 자주 볼 수 있다. 손님을 배려한 집이라야 단독주택이며 손주와 함께 노후를 행복하게 보낼 수 있게 되지 않겠는가?

 

필자가 설계한 양산 심한재, 일층의 모든 실에서 외부공간으로 드나들 수 있게 설계되었다. 거실에서는 데크를 통해 마당으로, 주방은 다용도실을 거쳐 뒷마당으로, 서재는 툇마루에서 달빛정원으로, 안방에서는 뒷뜰로, 중앙계단홀은 데크를 밟고 뒷마당으로 연결되면서 내외부공간이 하나되는 열린 집인 한옥의 공간개념을 적용했다.

 

광흥건설 사보 '광흥생각' 2017 가을호 기고

 

무 설 자

 

무설자는 건축사로서 도반건축사사무소를 운영하고 있으며,

집은 만드는 것이 아니라 지어서 살아야 한다는 마음으로 건축설계를 업으로 삼고 있습니다.

어쩌다 수필가로 등단을 하여 건축과 차생활에 대한 소소한 생각을 글로 풀어쓰면서 세상과 나눕니다.

차는 우리의 삶에서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이만한 매개체가 없다는 마음으로 다반사로 차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집을 지으려고 준비하는 분들이나 이 글에서 궁금한 점을 함께 나눌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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