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이야기/행복한 삶을 담는 집 이야기

외로움이라는 병, 그리움이라는 약

무설자 2019. 8. 1. 1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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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움이라는 병, 그리움이라는 약

                                                                                                                                      김 정 관 

올 겨울이 춥다고 하더니만 세밑 추위가 장난이 아니다. 오늘처럼 꽁꽁 얼어붙은 날엔 아랫목에 엉덩이를 붙이고 만화책을 보던 어린 시절이 그리워진다. 추우면 추운대로 더우면 더운 대로 계절이 그러니 하면 마음의 갈등은 없는데 덥다니 춥다니 하면서 투덜대는 게 사람이다.

 

이런 날에는 따스한 차 한 잔 하기에 딱 좋고 차향에 빠져들다 보면 누군가 그리워진다. 이 그리움의 대상은 누구일까? 추운 날에는 향이 짙은 홍차나 암차를 마시는 게 제격이다. 잔으로 전해오는 온기도 좋지만 오롯이 느껴지는 차향에 유난히 차맛이 좋게 다가온다. 더운 날에는 만사가 귀찮지만 추우면 무엇을 해도 집중할 수 있어서 좋다. 물론 방 안에서 할 수 있는 일에 한정되지만.

 

차향에 묻어서 문득 다가오는 그리움이 오랜 차 생활에 인연을 맺었던 두 분께 닿았다. 두 분이 다 유명을 달리하셔서 지금은 이 세상에 없다. 한 분은 나에게 보이차를 가르쳐 주셨던 고등학교 선배님이시고, 또 한 분은 내가 써서 올리는 차에 대한 글을 좋아라 하셨던 분이다. 오래오래 가까이 모시면서 차와 더불어 같이 살고 싶었는데 두 분이 다 너무 빨리 이 세상 소풍을 끝내시고 돌아가셨다. 살다 보면 문득 외로움이 일 때가 있어 이 세상에 계시지 않는 두 분을 그리워하며 차를 마시면 마음이 푸근해진다.

살다 보면 문득 외로움이 일 때가 있어
이 세상에 계시지 않는 두 분을 그리워하며 차를 마신다

 

차를 마시면서 누군가 그리워지는 건 차가 주는 정취일까? 그리움이란 정서는 이성적인 생각으로 일어날 수는 없을 것이다. 불현듯 마음에서 일어나 어찌할 수 없는 감정이 그리움이다. 그리움은 꼭 사람을 대상으로만 일어나는 건 아닐 터이다.

 

고향에 대한 그리움, 집에 대한 그리움은 어떨까? 도시에서 태어나 아파트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고향과 집, 고향집, 우리집’을 그리워할 감정이 남아있을까? 워낙 이사가 잦으니 ‘우리 동네’라는 관념도 생기기 어렵고 아파트에 살다 보면 ‘우리집’이라는 정서도 희박할 수밖에 없다.

 

내가 태어나고 자란 동네의 풍경, 우리집의 모습이 기억에 남아 고향과 우리집의 그리움이 이는 건 아닐 터이다. 내 어린 시절 자란 동네의 논밭은 메워져서 공단으로 조성이 되어 버렸고 집이 있던 자리는 뒷산을 깎아 아파트 단지로 변해 버렸다. 초등학교 동창모임에 참석하느라 그 동네에 가노라면 머릿속에는 유년 시절의 기억으로 아득해져 온다.

 

오리五里 길은 되었던 통학 길이며, 불 때던 아궁이에 쓸 나무를 하러 올랐던 뒷산이며, 추수가 가까워져 오면 논을 누비며 잡았던 간식거리 메뚜기도 고향이 그리워지는 기억이다. 해가 뉘엿뉘엿 석양이 지기 시작하면 저녁밥을 하는 연기가 굴뚝으로 피어오르면 엄마가 부르는 소리에 집으로 내닫던 기억이 우리집에 대한 아련한 그리움이다. 삼강오륜을 따지던 엄한 아버지와 잔정이 없던 엄마가 따뜻한 가정의 분위기를 만들 수 없었던 우리집이었다. 그런데도 논산훈련소에서 힘든 야외교육을 받고 귀대를 하며 마을의 굴뚝에서 피어오르던 저녁 풍경을 보면서 집이 그리워 눈물을 흘렸다.

훈련소 시절에 힘든 야외 교장에서 교육을 받고 귀대하던 길,
건너 마을 집에 굴뚝에서 피어오르던 연기를 보면 얼마나 집이 그리웠던지

 

고향과 우리집에 대한 그리움은 성년이 되어 성장기를 돌아보며 가지게 되는 추억이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아이들이 자라서 그리워할 고향과 집에 대한 추억은 어떤 게 있을까? 아파트 단지에도 잘 가꾼 공원과 어린이 놀이터가 있지만 그곳에서 가꾼 고향 마을의 추억거리를 만들 수 있었으면 좋겠다. 스마트폰 벨이 울려 엄마가 기다리는 집에서 저녁을 지어 어서 오라는 재촉을 받을 수 있어야 할 텐데. 초등학교 때부터 학원으로 내몰리고 맞벌이하는 엄마는 저녁밥을 지을 시간이 없는 집이 많다고 한다.

 

우리가 사는 동네, 우리 식구가 함께 지내는 집이 훗날 그리움의 산실이 될 수 있을까? 누구에게나 그리움은 힘든 현실을 버텨낼 마음의 위안거리가 된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외로움은 치유가 힘든 난치병처럼 죽음까지 가져간다고 한다. 그 지독한 외로움을 견뎌낼 수 있었던 진통제가 그리움일 수 있다. 한국 전쟁으로 고향과 가족을 두고 피란길을 나서서 돌아가지 못한 이북 사람들이 평생을 그리움으로 버텨내지 않았을까? 고향과 가족을 그리면서 꼭 돌아갈 수 있다는 희망 하나로 힘든 삶을 이겨내면서 살았을 것이다.

 

고향과 우리집, 그리고 보고픈 사람들에 대한 그리움이 힘든 삶을 이겨내는 묘약이 된다. 고향에 대한 기억도, 우리집에서 살았던 추억도 없는 이 시대의 사람들은 그리움이라는 희망도 없다면 어떡해야 할까? 잊을만하면 뉴스로 보도되는 자살은 외로움이라는 병이 깊어져서 이르게 된다니 그리움이 얼마나 소중한 묘약인가.

고향과 우리집, 그리고 보고픈 사람들에 대한 그리움이
힘든 삶을 이겨내는 묘약이 된다

 

아파트 단지명에 붙은 시공회사의 상호가 동네 이름이 되고, 몇 동 몇 호라는 숫자가 우리집이다. 우리 동네, 우리집의 정체성을 잃어버린 이 시대의 주거 문화는 다시 돌아갈 고향과 되돌아볼 우리집에 대한 추억도 없애 버렸다. 외로움이라는 고질병을 치유할 유일한 처방은 그리움이라 할지니. 고향과 우리집의 추억이 없는 이 시대의 사람들이 안고 사는 외로움은 이제 불치병이 되어 버렸으니 이를 어찌할거나 어찌할거나.  

 

 

우리가 사는 도시는 아파트 단지가 아니면 소규모 공동주택으로 빼곡하게 채워지고 있다.  도시의 어느 한쪽에 공원이 있기는 하지만 집 주변은 사람이 걸어 다닐 길마저 불법 주차된 차량이 차지하고 있다. 도시에서 우리 동네란 아파트 단지, 우리집은 없고 잠자는 숙소만 있으니 도시인의 외로움은 깊어가는데 그리워 할 고향은 어디로 갔을까? 

                                                                                                                                    (2019, 7, 31)

 

-DAMDI E.MAGAZINE 연재중 

                           

 

 

 

무설자(김정관)는 건축사로서  도반건축사사무소를 운영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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