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설자의 에세이 차 이야기 1907
보이차의 향미, 그 무엇이라고 말 할 수 없는 것에 대하여
보이차를 마시면서 무엇을 느끼는가? 보이차를 십년을 마셔도 집중하지 않으면 제맛을 알 수 없다고 합니다. 보이차를 처음 접하면서 사부님이 해 주신 얘기입니다. 보이차는 다른 육대차류의 차에 비해서 무미 무향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보이차를 마시기 시작할 때는 제대로 향미를 음미하기 어려운 차이기에 마셔가면서 알게 됩니다. 그렇지만 보이차는 집중해서 마셔야만 마신 그만큼 조금씩 향미를 음미하는 폭을 넓힐 수 있습니다
녹차나 청차류는 그 맛과 향이 마시는 그 즉시 얼마나 좋은 지 가늠이 되지요. 찻자리에서 여러 사람이 차를 음미해보면 향미가 좋고 나쁨을 함께 동의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보이차는 마시는 사람마다 호불호가 엇갈리기 마련이라 향미의 기준이 애매하지요. 차를 우려 주는 팽주는 맛있는 차라며 혀를 내두르는 데 막상 팽객은 덤덤할 수 있는 게 보이차랍니다.
그래서 보이차는 무한하다고 할 만큼 다양한 넓이를 바탕으로 합니다. 넓이에서 조금씩 깊이를 알게 되는 차라서 꾸준하게 마셔야 하고 집중해서 음미해야 합니다. 보이차라는 이름의 수많은 차는 집중해서 마시는 심도만큼 그 미묘한 차이를 조금씩 알아가게 됩니다. 쓴맛에서 단맛까지 이루 말 할 수 없이 넓은 향미의 호감 스펙트럼은 사람마다 보이차의 선택이 갈리게 합니다.
보이차에서 이 차는 이런 맛, 저차는 그런 향이라고 딱 떨어지는 얘기는 있을 수 없습니다. 보이차로 깊이를 느끼고 싶으면 보이차 한편을 선택해서 집중해서 마셔보면 됩니다. 맹해차구 보이차를 한 편만 꾸준하게 마시고 나서 임창차구 차를 마셔보노라면 알게 되는 향미의 차이, 보이차에 입문해서 한 단계를 넘어갈 첫 관문을 통과할 수 있을지 모릅니다.
생차와 숙차의 차이는 어떨까요? '생차가 좋아? 숙차가 좋아?'라는 질문은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와 같을 수도 있습니다. 처음에는 숙차가 편하다가 나중에는 생차에 매료될 수도 있습니다. 숙미숙향이 싫어서 처음부터 생차가 좋을 뿐 숙차를 아예 외면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발효기법이 좋아져서 요즘 숙차는 거북한 향미는 거의 없이 생산됩니다. 숙차에 대한 좋지 않은 이미지는 선입견일 수도 있습니다.
고수차와 노차의 선택은 보이차를 마시는 사람들이 고민에 빠지게 합니다. 한 편에 몇 만 원하는 차도 있는가 하면 수백 만 원을 호가하는 차도 있기 때문입니다. 포장지에는 같은 산지의 이름이 표기되어 있는데 적게는 몇 배에서 많게는 백배가 차이나는 가격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는 것이지요. 몇 십 년짜리 차인지도 모르는 노차가 상상할 수 없는 금액으로 호가되는데 마셔보면 그 가치를 어떻게 알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보이차를 오래 마셨다는 사람 중에는 무협지에서 나오는 武林이나 江湖의 고수같은 분도 많습니다. 비슷해 보이는 포장지만 봐도 진품가품을 알아 맞추는 건 물론이고 차의 병면餠面만 보고도 산지産地를 분간해 낼 수 있다고 합니다. 혼자만 알 수 있다며 보이차에 대한 지식을 설파하며 다른 사람의 이야기는 듣지도 말라고 합니다. 그리고 나면 세상에 없는 귀한 차라며 높은 가격으로 차를 팝니다.
보이차를 마시면서 알게 되는 건 나만 알 수 있는 '그 무엇'이 있으며 누구나 다 동의할 수 있는 '분명한 정보'가 있습니다. 나만 알 수 있는 '그 무엇'은 보이차에 대한 나의 기호이며 누구나 동의할 수 있는 '분명한 정보'는 그 누구의 노하우일 수 없습니다. 보이차에 대한 나만의 기호는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고 정확한 정보는 누구나 동의할 수 있는 열린 지식입니다.
보이차를 마시기 시작했나요? 내가 좋아하는 보이차에 대한 기호는 강요하거나 부정할 수 없습니다. 보이차에 대한 객관적인 정보는 관심만 가지면 곧 알 수 있으니 이 또한 누구의 전유물이 아닙니다. 지금 마시고 있는 보이차가 맛있으면 내 기호에 맞는 것입니다. 다른 차에 대한 호기심이 생긴다면 열린 정보망을 통해 알게 된 그만큼 선택의 폭을 가지기 바랍니다.
제게 보이차를 가르쳐주신 차사부님은 제게 보이차에 대해 아무런 얘기를 해주시지 않았습니다. 다만 당신은 제가 마실 차를 정해 주셨고 어떠냐고 물었고 저는 제가 마셔서 느낀 향미에 대해 말씀을 드렸습니다. 당신은 고개만 끄덕이고는 다음에 마실 차를 정해 주셨지요. 그리고 다음에는 또 질문을 했고 저는 차맛을 말씀드렸지요. 다만 그랬을 뿐인데 저는 그분께 보이차에 대한 핵심을 전해 받았습니다.
보이차를 즐기면서 음미하는 향미는 모두에게 맞거나 틀리다고 할 것이 없습니다. 내 입맛으로 느껴지는 보이차의 맛과 향, 그것을 누가 대신 말할 수 있을까요? 보이차, 말로는 별로 배우고 전해 받을 것이 없는 차입니다.
보이차 한 잔 드셨습니까? 이제 한 말씀 해 보시지요.
무 설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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