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설자의 에세이 차 이야기 1907
인연, 무형문화재 낙죽장 김기찬님과의 茶緣
因緣이라는 말은 사람 간의 모든 만남이 기억을 하지 못하지만 宿業이라는 관계가 있다는 말이다. 연인이 되어 부부가 되고 자식이 생기는 지중한 인연은 말 할 것도 없겠지만 옷깃만 스쳐도 수많은 전생에서 만났던 결과라고 하지 않는가? 그래서 내가 만나는 어떤 사람도 허투루 대하면 안 된다고 한다.
요즘 인간관계는 집이나 일로 직접 만나는 사람보다 스마트폰으로 연결되는 사람들이 훨씬 많다. 톡질이리고 하는 SNS로 눈 뜨자말자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며 수많은 사람들과 손가락 대화를 나눈다. 오직하면 카페에 앉은 두 사람이 서로 얼굴을 맞대지 않고 다른 사람과 톡질을 하고 있을까? 참 희한한 세상을 살고 있는데 요즘 사람들은 그게 당연한 모양이다.
내 나이가 환갑을 바라보니 또래 사람들은 이러한 분위기의 경계선에서 저쪽으로 밀려나고 있다. 그나마 글쓰기를 즐기다보니 아직 돋보기를 끼지 않아도 볼 수 있는 눈이라 스마트폰 세대의 경계선 안에서 버티고 있다. 우리 세대에 익숙한 온라인 놀이터는 블로그나 카페이다. 블로그에 글을 써서 올리고 사람들과의 온라인 교류는 카페를 통해 주고 받은 지 스무 해가 다 되어가나 보다.
온라인 글쓰기는 건 보이차를 마시기 시작하게 되었다. 보이차에 관한 정보도 얻고 차구매에서 사람들과의 교유도 카페활동을 통해 이루어졌다. 그동안 카페활동을 통해 전화번호를 알게 된 사람이 보이차 동호인이 이백 명 가까이 된다. 오늘도 틈 날 때마다 카페에 접속해서 기웃거리고 있으니 오프라인 관계보다 더 중요할 지도 모를 일이다.
무형문화재에 烙竹匠이라는 분야가 있는 지 아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나도 낙죽이라는 분야는 금시초문이었으나 손인두로 대나무 표면에 그림을 그리는 공예이며 그 분야의 일가견을 이룬 사람을 낙죽장이라고 하는 것을 알게 되었다. 또 국가무형문화재로 전승하고 있는 귀한 일을 하는 낙죽장 분을 다우로 두게 되었으니 그 인연이 묘하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국가 무형문화재 31호 계심헌인 김기찬 낙죽장께서 그 주인공이시다. 이제는 사진을 통해 얼굴도 알고 통화를 하면서 목소리도 듣지만 아직 직접 만나지는 못했다. 이 분은 창작을 위한 영감이 떠올라야만 작업에 들어갈 수 있다고 한다. 낙죽에서 대나무에 그림이나 글을 새기는 작업을 글쓰기에서 산문이라고 한다면 김기찬 낙죽장께서 하는 작업은 시에 가깝다고 하겠다.
보이차 카페에 홀연히 나타나서 낙죽을 소개하는 글을 읽으면서 댓글 대화로 연을 맺게 되었다. 낙죽장께서 송광사에서 지낸 이력이 있어서 불가의 가르침이 그 분 작업의 바탕이 되고 있었다. 선문답 같은 대화를 주거니 받거니 하다 보니 다른 사람들보다 많은 댓글이 이어졌다.
낙죽장님의 올해 작업 주제는 명문銘文이었다. 대나무로 차칙, 찻통, 다기손잡이 등에 글을 새기는 작업이다. 낙죽장께서 카페를 통해 보이차와 인연을 맺으면서 교유를 하게 된 카페 다우들의 이름이 찻통, 목빗에 주제가 되었다. 차를 담아서 보관하는 차통을 왕대로 만드는데 이름을 낙죽으로 표현하는 작업에 내 아호가 주제로 들어가게 되었다.
낙죽장께서는 영감이 떠오르지 않으면 작업을 할 수 없는데 나와 댓글 대화를 주고받으며 무설자無說子에서 주제가 하나 나왔다고 했다. 이름에서 얻으셨는지, 댓글 대화를 통해 떠오른 것인지 알 수는 없지만 작품집 맨 앞에 無說之室이라는 명문찻통이 실려 있었다.
그 작품이 전시회를 마치고 작품집과 함께 내게 왔다. 곧 지어질 낙죽장님의 공예미술관에 전시를 하려고 하다가 보내기로 마음을 잡으셨다고 한다. 작품을 받고 너무 놀라서 전화를 드리니 마음이 닿아서 작업을 했고 마음을 담아서 보낸다는 말씀이었다.
인연은 댓글을 통해 맺어져서 대화가 공덕이 되니 귀한 분의 작품을 소장하는 복을 누리게 되었나 보다. 무주상보시無住相布施, 마음에 걸림이 없는 나눔이 어떤 것인지 알게 하는 이 분의 행行을 보게 되었다. 이 찻통에 담은 차를 계심헌인 무주상차無住相茶라고 부르면서 소중한 이 인연은 오래 오래 다담으로 이어지리라.
무 설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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