茶 이야기/에세이 차 이야기

보이차, 고해를 건너며 온갖 시름을 달래는 묘약

무설자 2018. 10. 29. 1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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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설자의 에세이 차 이야기 1810

보이차, 고해를 건너며 온갖 시름을 달래는 묘약





이 세상을 苦海라고 한다.

어떻게 살아도 한두 가지 큰 시름이 없이 사는 사람이 있을까?

천석꾼은 천 가지, 만석꾼은 만 가지 걱정이 있다하니 재물은 재앙을 부르는 원흉일까?

이 세상에 재물을 쫓지 않는 사람은 없겠지만 큰 욕심 없이 살기도 쉽지 않다.


2006년은 내가 하는 일인 건축설계가 1997년 외환위기 때보다 더한 불경기에 들어갔던 해였다.

부동산을 원수보듯이 한 정부의 정책으로 일감이 거의 없어져 버렸다.

그런 경기를 겪어 보지 못한 초보 경영자였기에 직원을 정리하지 않고 버티며 한달 한달 보내기가 너무 힘겨웠다.

급여가 체불될 조짐이 보이니 직원들도 사표를 쓰는데 잡을 명분이 없었다.


참 일 할 나이에 그냥 지나가는 하루는 피가 빠져나가는 듯이 힘들었다.

책을 보아도 눈에 글자가 들어올리 없고 음악을 들어도 소음과 다름없었다.

이즈음 보이차를 인터넷으로  만나게 되었다.

녹차는 오래전부터 마셔왔지만 출근하면 한 잔으로 그만이었다.


보이차를 알게 되고 카페 활동을 하며 보이차에 관련한 정보 검색으로 하루를 보냈다.

다연회도 그해 시월에 모임을 시작하며 실전 보이차 공부에 집중하게 되었다.

출근하면서 끓이는 찻물은 퇴근 시간까지 끊이지 않고 마시고 또 차를 마셨다.

그야말로 '일없는 일'로 텅빈 머리 속을 오로지 보이차로 채워가던 시절이었다.


강가에서 곧은 바늘로 낛싯대를 드리우며 때를 기다렸던 강태공의 심정이 그랬을까?

보이차를 알아가고 다우들과 교분을 가지면서 흘러가는 세월의 강가에서 때를 기다렸다.

그렇게  보냈던 세월이 십년이 지나고 13년이 흘러 지금에 이르렀다.

여전히 재물은 인연이 닿지 않아 천석꾼의 걱정은 아니라 해도 시름이 없을까?


재물을 쫓는 사람들이 차 마시는 나를 보며 그 정도의 걱정은 걱정도 아니라 한다.

그들에게는 작은 시름에 불과해 보일지 모르지만 내게는 어찌 작다 하겠는가?

세상이 아프니 나도 아프다는 유마거사의 병에 비유하면서 고해를 건너가고 있다.

차 한 잔에 시름을 담아 마시고, 또 한 잔에 사람들과 나누는 정을 담아 마신다.


이 세상이 고해라면 걱정과 애환이 없는 사람이 있을까?

세상사에 희노애락이라면 기쁨 조금, 분노 약간, 슬픔 살짝, 즐거움 설핏 균형을 잡아야 한다.

보이차의 단맛은 喜, 신맛은 怒, 哀는 떫은맛일까?

쓴맛은 차맛에서 樂, 즐거움이라 표현해야 하는데 차의 바탕이라 이를 잘 분별해야 하기 때문이다.


단맛보다 쓴맛이 차맛을 따지는데 중요한 것처럼 삶의 의미도 고진감래라고 하지 않던가?

차를 마시면서 살아가는 세상은 재물보다 더 소중한 가치를 찾는 길을 가는 것이리라.

어차피 이 세상이 고해라면 힘들다고 푸념하기보다 안고 살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쓴맛을 달다하고 단맛을 밋밋하다고 하는 다우들의 일상은 늘 비워서 채우는 삶일 것이다.


한승원 시인의 시로 글을 맺을까 한다.


녹차 한잔 2

 

영원히 살 것 같은 때 마시고

내일 죽을 수도 있음을 깨닫고

 

절망적일 때 마시고

세상은 제법 살만한 세상임을 생각하고

영원히 살 수도 있음을 깨닫고



무 설 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