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을 앞에 두고 짓는 단독주택-心閑齊로 당호를 받아 설계를 다시 살피니
착공을 앞두고 완성된 설계도를 살펴보며 당호를 지으매 어찌 긴 세월의 회상이 없겠는가!
아직 그 집에 살아보지 못했으니 풍광이 어떨지 모르고, 당호를 정했다 하나 추후에 바뀔지도 모를 일이다.
복잡한 세상사에서 살짝 비켜나 있는 이곳에서 마음의 위안과 휴식이 늘 함께 하기를 기원해본다.
책장의 묵은 책들을 앞세우다가 찾은 시귀(詩句)에서 눈에 들어온 것이 있다.
당나라 이백의 산중문답(山中問答)과 백로사(白鷺詞), 그리고 조업(曹鄴)의 山居라는 시에서 “心閑”을 건져
“마음이 한가로운 집”, “마음의 짐을 내려놓아 한가로워지는 집”. 心閑齊(심한재)로 지어본다.
정기적으로 만나는 담당의가 말하길,
‘마음을 내려놓아야 그나마 그럭 저럭 살아가진다’고 하니 몸보다는 마음이 아닌가 한다.
山中問答(산중문답, 이백)
問余何事棲碧山(문여하사서벽산) 묻노니, 그대는 왜 푸른 산에 사는가.
笑而不答心自閑(소이부답심자한) 웃을 뿐, 답은 않고 마음이 한가롭네.
桃花流水杳然去(도화유수묘연거) 복사꽃 띄워 물은 아득히 흘러가나니,
別有天地非人間(별유천지비인간) 별천지 따로 있어 인간 세상 아니네.
白鷺詞(백로사, 이백)
白鷺下秋水(백로하추수) : 흰 해오라기 맑은 가을 물에 내려
孤飛如墜霜(고비여추상) : 서리 떨어지듯 외롭게 나는구나.
心閑且未去(심한차미거) : 마음이 편안하여 떠나려 하지 않고
獨立沙洲旁(독립사주방) : 모래섬 곁에서 홀서 서있구나
山居(산거, 曹鄴)
掃葉煎茶摘葉書(소엽전다적엽서) 쓸어 담은 잎으론 차끓이고 딴 잎은 글씨를 쓰며
心閑無夢夜窓虛(심한무몽야창허) 마음이 한가하니 밤창가에서 꿈도 꿔지지 않아
只應光武恩波晩(지응광무은파만) 다만 늦게 흘러오는 광무제의 은혜에 응하려 함이지
豈是嚴君戀約漁(기시엄군연약어) 어찌 엄자릉과 같은 고기 낚기를 사모함인가
이렇게 건축주께서 당호를 心閑齊로 짓고 이렇게 짓게 된 연유를 글로 보내왔다.
마음이 한가로워지는 집, 참 좋은 당호가 아닌가?
여생을 보내기 위해 돌아온 자리는 지나온 흔적을 지워내며 살아야 할 것이다.
그게 마음이 한가로워지는 자리, 心閑齊라.
心閑齊, 설계를 풀어내어 글로 써보니
배산임수의 터를 잡다
5년 치성 들여 양산 원동 서룡리에 우리집 지을 터를 잡았다오
이 터에 여생을 편안히 담아낼 우리집을 어떻게 지어야 하나?
집터가 원석이라면 우리집은 보석일 텐데 細工師는 어디에 있을까
터는 背山하여 土谷山 자락에서 지맥이 흘러내린다
지맥은 물을 건너지 못하니 낙동강을 앞두고 맺힌 자리
풍수를 운운하지 않더라도 우리집 터는 좌우로 산이 감싸 안았다
집터는 큰 길에서 물러나 높은 자리에서 내려다 보고 있네
땅은 동서로 긴 모양새라 남향 햇살이 터에 그득하게 담기고
바다로 가는 낙동강이 보고 싶은 날에는 느릿느릿 강가로 간다
터에 집을 앉히다
큰 길에서 따온 작은 길을 걸어 우리집 대문까지는 스무 쯤
대문에 다다르기 전에 보이는 일층과 이층으로 채나눔 되어 펼쳐진 집
앞채는 사랑공간, 뒤채는 침실공간이라 밤낮으로 영역이 나뉘어졌구나
대문을 열고 들어서면 거실과 현관, 그들 놓아 韓室로 들인 서재는 안채 끝에 들이다
거실에서 덱크를 지나면 햇살을 담아 푸른 잔디 깔린 마당으로 열리고
서재 문을 열면 보이는 호두나무 한 그루, 달빛이 담기는 작은 연못이 있어 달빛정원
터를 三分하여 가운데 집이 앉고 햇살마당과 뒷뜰을 앞뒤로 두었다네
큰마당은 포근하게 햇살을 담아내고, 정원에는 고요한 밤 시간에 서재 문을 열게 하네
뒤뜰은 주방의 쓰임새에 쓸모를 더하고 텃밭과 장독대에서 식재료가 준비되누나
앞채와 뒤채로 채나눔하다
큰 마당 가로질러 현관문을 열고 만나는 홀은 온 집이 소통되어 하나 되고
이층을 향해 솟구치는 계단, 거실은 중층에 있어 침실동의 아래위층을 이어주네
소통의 홀이 있어서 독립된 방은 식구들의 일상이 존중되니 비로소 ‘우리집’이 된다
사랑공간은 거실과 주방, 테이블이 어우러져 화목한 자리로 온 식구가 모여서 정다운 자리
벽난로가 공간의 온기를 더해준다지만 테이블에 마주앉아 나누는 情談이 더 따습다네
거실을 올려다보면 보이는 다락, 손에 잡히는 계단으로 깊숙하게 스며든다
안채 공간의 아래층, 집주인이 편히 쉴 수 있도록 고요한 공간으로 들이니
이보다 더 깊은 잠에 들 수 없는 침실에 여유로움이 더해지는 욕실이 곁들어 있다오
전통구들 온돌 들인 韓室이 ‘우리집’에 있으니 이만큼 큰 자랑거리가 있으랴
손님이 와야만 손주와 지낼 수 있으니
집의 품격으로 드러나는 한옥의 사랑채, 집주인의 세상살이를 읽어내는 척도였다네
손님이 들지 않는 집은 가세로 보고 우환이 있다고 여겼으니
아파트는 손님이 들지 않아 우리집은 기꺼이 손님이 들고 반기노라
손님 중의 손님은 출가한 자식, VVIP는 손주라고 하는데 이의가 있으랴
사위만 백년손님이 아니라 며느리까지 들어가니 부모가 자식을 모시는 세상이라네
이층의 객실은 발코니 달린 방 두 개에 가족실까지, 일층의 부모와 층으로 나뉘어 지낸다
사랑공간 거실채는 소통의 홀을 사이에 두고 침실채와 떨어져 있다네
부모를 찾아 모인 사위와 며느리가 밤을 새며 정을 나누니 세상 시름을 잊는다
자식이 자주 부모를 찾으니 할배할매는 손주가 자라는 만큼 정도 깊어지누나
이 시대의 韓屋, 心閑齋의 얼개를 살피노라
조상으로 물려받은 유전자는 우리를 자꾸 방바닥에 눕혀 뒹굴게 하구나
온돌 바닥은 따끈따끈해 등을 지져야 시원하다는 그맛이라네
입식 생활로 살아가지만 우리는 한국사람이니 서재는 韓室을 들였노라
누구의 방이라도 문을 열어두고 지내야 편안한 우리집이라 하네
방문을 늘 열려 있으니 소통의 홀에서 부르면 응답하라 응답하구나
식구들의 방은 사랑거실에서 멀리 떨어져 독립만세를 부르고 있다오
아파트와 다르게 지어야 하는 단독주택, 잔디 깔린 마당만 있으면 되는 것이오?
아파트는 아무리 넓어도 평면이라, 소통의 홀은 이층까지 온 집을 한 공간에 담아내네
높은 지붕이 만드는 거실의 깊은 속 담아 올려다 보이는 다락이 궁금하구나
사랑 거실 공간은 남으로 열린 덱크와 하나 되니 햇살과 바람을 맞이하고
한실에서 동으로 난 문을 열면 연못가 호두나무 한 그루, 달빛정원과 하나 되네
이층에 있는 방의 발코니, 햇살마당과 안뜰을 내려다보며 무슨 말로 속삭일까?
韓屋 방을 살펴보자니 바깥으로 나가는 문으로 바깥과 소통하고
우리집 방마다 문을 열고 나가 바깥과 소통하니 이 시대의 한옥,
한국 사람은 우리집, 한옥이라 전통 이어 짓는 집이라야 제 몸에 맞을 것이라
그 집을 心閑齋로 지어낸다오.
무설자(김정관)는 건축사로서 도반건축사사무소를 운영하고 있으며,
집은 만드는 것이 아니라 지어서 살아야 한다는 마음으로 건축설계를 업으로 삼고 있습니다.
어쩌다 수필가로 등단을 하여 건축과 차생활에 대한 소소한 생각을 글로 풀어쓰면서 세상과 나눕니다.
차는 우리의 삶에서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이만한 매개체가 없다는 마음으로 다반사로 차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집을 지으려고 준비하는 분들이나 이 글에서 궁금한 점을 함께 나눌 수 있습니다.
메일:kahn777@hanmail.net
전화:051-626-62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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