茶 이야기/에세이 차 이야기

차맛의 깊이와 높이, 혹은 넓이와 폭

무설자 2017. 11. 6. 1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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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설자의 에세이 차 이야기 1711
차맛의 깊이와 높이, 혹은 넓이와 폭

통도사 극락암에 주석하셨던 경봉 스님의 글씨



사무실의 내 공간, 집의 서재에는 차상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골라 마시는 차의 종류만 해도 백여 종에 이른다.
생차, 숙차, 고수차로 구분되어 매일 내게 선택을 받는다.



다반사, 밥 먹듯이 차를 마시는 게 아니라 차를 마시다 밥을 먹는다.
밥은 건너 뛰어도 차를 마시지 않는다는 건 상상할 수 없다.
이런 다반사의 일상생활이 꾸려진 건 오로지 보이차를 마시게 되면서 시작 되었다.

백여 종의 차를 골라 마시는 즐거움은 차 중에서 오로지 보이차만 가능하다.
그것도 넓이와 폭으로 차를 대해야만 가능하다.
깊이와 높이로 차를 마신다면 선택의 폭은 한정될 수밖에 없다.



어떤 교수는 보이차를 선물 받아서 마시게 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그 한편을 마신 이후 다른 보이차를 마실 수 없게 되어 버렸다고 했다.
너무 좋은 차로 첫차를 삼아 입맛에 담아 버렸으니 그럴 수밖에.

만약 홍인에 입맛이 익숙해진 사람이 있다면 숙차를 마실 수 있을까?
수백년 수령의 빙도차나 노반장의 순료차를 한편 마시고 난 사람이 다른 고수차를 받아 들일 수 있을까?
높은 차는 노차, 깊이가 있는 차는 단주고수차를 이른다.



넓이와 폭으로 마시는 보이차는 쉽게 접할 수 있는 고수차나 숙차로 본다.
고수차라면 그 산지가 얼마나 다양한가?
숙차라면 그 종류가 한이 없다.

진기 20년 내외의 차라면 얼마든지 구해서 마실 수도 있고 다우들과 나눌 수도 있다.
대익숙차도 좋지만 고수차로 만든 특별한 숙차는 그 맛이 차별된다.
이렇게 넓이와 폭으로 보이차를 마시면 끝이 없는 즐거움이 함께 한다.

높이와 깊이로 보이차를 마시는 이는 자신의 세계에 침잠하는 분일 테다.
넓이와 폭으로 보이차를 즐기는 이는 두루 삶을 나누며 살고 있을 것이다.
나에게 보이차는 넓이와 폭으로 평생 함께 할 것이다.


무 설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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