茶 이야기/에세이 차 이야기

소걸음으로 마셔야 하는 차, 보이차

무설자 2016. 2. 12.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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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설자의 에세이 차 이야기 1602

소걸음으로 마셔야 하는 차, 보이차




보이차, 차는 많은데 마실만한 게 없다고 합니다.

좋은 차라고 해서 구입을 했는데 소개했던 내용과는 달라서 실망스럽다고 합니다.

아무래도 가격이 높은 차가 맛있겠지하며 기대를 했는데 돈이 아깝다고 합니다.


이런저런 사정으로 보이차를 마시면서 만족한 차를 접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왜 보이차는 알쏭달쏭해서 이거야라는 딱 떨어지는 결론을 내기가 어려울까요?

녹차보다 덜 맛있고 청차류보다 덜 향기로운 이 차를 왜 마시는 건지요.


사실 보이차는 육대차류를 통털어서 비교했을 때 가장 향미가 덜한 차입니다

한마디로 맛이 별로 없는 차라는 것이죠.

그런데 왜 유독 보이차에 집착하게 되는 것일까요?


가장 대중적인 녹차나 청차류는 한두 가지를 가지고 마시는 경우가 대부분이죠.

녹차를 열 종류, 스무 종류를 달리해서 아침차, 저녁차를 골라 마시는 분은 드물겠죠?

철관음, 대홍포 등의 청차류도 마찬가지로 좋아하는 한두 종류를 가지고 마실 것입니다.


그런데 보이차는 수십 종류를 소장해서 오늘은 이 차, 내일은 저 차로 골라 마십니다.

심지어 일없는 휴일에는 열 종류 이상의 보이차를 바꿔가면서 하루종일 마실 때도 있습니다.

그 이유는 뚜렷한 향미가 없기에 차를 마시는 그 때마다 달라진 맛을 찾아 음미하려고 하기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보이차를 마시기 시작하면서 처음에는 생차보다 숙차를 즐겨 마시게 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물론 체질이나 입맛에 따라 처음부터 생차를 즐겨 마시는 분도 있습니다.

다른 차보다 보이차는 차를 마시는 양이 많아서 시간이 좀 지나야 애매했던 향미의 가닥이 잡히기 시작합니다.


숙차를 마시는 양이 점점 줄어들고 생차 쪽으로 기울게 되면 차의 종류에 따른 향미를 즐기는 단계에 들어갔다고 볼 수 있죠.

생차도 숫자로 표시되는 병배차보다 차산으로 이름지어진 고수차를 찾게되면 차를 즐기는 레벨이 올라갔다고 봅니다.

물론 차산이 표기되었다고 해서 맛이 비슷한 것은 아닙니다.


보이차의 특성이라 할 수 있는 묵힌 시간과 보관환경에 따라 향미가 달라지는 보이차만의 특성 때문입니다.

또 순료차인가 다른 산지의 찻잎을 병배했느냐에 따라 차산별로 가지는 독특한 향미를 온전하게 음미하기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

은근한 향과 애매한 맛을 가진 보이차를 제대로 즐기고 있다고 생각하는 이가 얼마나 될까요?


차탓을 하며 마실 차가 드물다고 할 수 없는 것이 보이차입니다.

맛이 별로라면서 한쪽에 미뤄두어 잊고 있었던 차가 어느날 깜짝 놀랄 맛을 보여줄 수도 있습니다.

보이차, 차의 상태만큼 차를 대하는 나의 상태에 따라 '별로 차'가 '별스런 차'로 변할 수 있는 묘미가 보이차에 집중하게 하는지도 모릅니다.


보이차, 토끼걸음으로는 알아가기가 쉽지 않고 거북이걸음이나 소걸음으로 다가가야 잡히는 게 있는 묘한 차입니다.

단점으로 보자면 외면할 수도 있지만 장점을 보고 다가가면 차의 종착점이라고도 합니다.

보이차는 다른 차와 비교될 수가 없어서 보이차만의 가치를 찾아내야만 제대로 즐길 수 있을 것입니다.




무 설 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