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즈하라에서
-사진 빼고 부산일보(2015.8.17일자) '아침향기' 게재
지난 달 일본의 조그만 항구도시에서 나흘을 머물렀었다.
하룻밤을 자는 일정으로 나섰던 여행길이었는데 예정보다 빨리 올라온 태풍이 발목을 잡아 두 밤을 더 자야했었다.
손바닥에 들어오는 작은 도시에서 억지로 나흘을 머물러야 한다는 결론이 났을 때 그 옛날 고도孤島에 유배당한 사람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는 듯 했었다.
그덕분에 스쳐 지나듯이 들르는 일박 여행자들이 눈대중으로 스치듯 지나치고 마는 관광버스 여행에서는 보지 못하고 느낄 수 없는 도시의 일상을 골목골목 누비고 다니면서 작아도 깊은 속내를 들여다 볼 수 있었다
그 도시에 사는 사람은 18,000명 정도지만 유서 깊은 곳이라서 옛 건축물도 많이 남아 있고 근현대 건축물과 조화롭게 어우러져 차분한 도시 풍경을 보여주고 있었다.지난 시간이 겹쳐진 건축물과 길이 마을의 깊이를 만들고 있는 도시 분위기는 수묵화처럼 담백했다.
좁은 길과 돌담이 집과 집 사이를 나누지 않아 도시 전체를 한 동네처럼 이어주고 있었다.
삼나무가 빽빽한 산자락을 따라 옛 관청과 신사神社, 절 등의 고건축물이 오래된 숲과 어우러져 오래된 도시임을 알 수 있게 했다.
제주도의 절반 크기인 작지 않은 섬이지만 산지가 대부분이어서 그나마 너른 평지가 있는 그 곳이 옛날부터 이 섬의 중심지가 되었다.
섬을 다스렸던 성城의 주변에 시청과 상가 등의 규모가 큰 건축물이 있고 하천변의 호텔 이외에는 지붕이 있는 저층 건물로 도시 풍경이 펼쳐져 있다.
고건축이나 근 현대 건축물이 섞여 있는데도 어색하지 않아 시기에 따른 차이가 크게 느껴지지 않았다.
그 도시를 가로질러 바다로 맑은 물이 흐르는 하천이 있는데 물길을 따라 물고기가 무리지어 헤엄쳐 다니고 있었다.
물고기를 자세히 보니 졸복이었는데 바로 눈앞에서 바다고기를 볼 수 있다니. 하천을 끼고 양쪽으로 난 길을 따라 작은 호텔과 일본 음식을 파는 식당들이 모여 있다.
호텔도 식당도 작은 하천만큼 자그마한 규모로 늘어서 있어서 물이 흐르는 도시 풍경이 그림 같았다. 이 하천을 보면서 복개해버려 눈에서 사라져 버린 부산 원도심의 보수천을 떠 올렸다.
저녁을 먹기 위해 도시를 가로 지르는 하천변을 따라 모여 있는 식당을 순례해야 했다.
식당의 규모는 대부분 다 고만고만해서 테이블이 많아야 너덧 개 정도였기에 우리 일행이 차지해야 할 두 테이블을 확보하기도 쉽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테이블이 비기를 기다린다고 해도 식재료가 다 떨어져 버려 주문을 받을 수가 없다는 식당이 대부분이었다.
태풍에 잡혀 그 도시에 머무르고 있는 사람이 거의 천명이나 되는데 우리들을 손님으로 받을 준비를 하지 않는다는 게 이해되지 않았다.
태풍에 발이 묶인 사람들이 다 그들의 수입원이 될 수 있는데 왜 그들은 돈 벌기를 포기하는 것일까?
가이드의 말에 따르면 그들은 하루에 팔 수 있는 양을 정해 식재료를 준비해서 그만큼 팔고 나면 문을 닫는다고 했다.
일정 인원수가 넘는 손님은 하루 전에 예약을 하지 않으면 음식을 팔지 않는다고 했다.
그러고 보니 그 동네에는 어둠을 밝히는 화려한 네온사인도 없었으며 우리나라에는 흔해 빠진 노래방도 하나 보이지 않았다.
배가 닿으면 하루에 오백에서 천 명씩 쏟아져 들어오는 관광객이 밤 시간을 보낼 유흥업소가 없다니 이 도시의 사람들은 적지 않게 오는 관광객의 주머니를 왜 넘보지 않을까?
그들은 일상의 리듬을 깨뜨리는 무리한 일을 하지 않는 모양이었다.
낮이나 밤이나 이 동네는 적막하다는 표현이 어울릴 고요함이 늘 유지되고 있었다.
이런 이야기를 떠올려 본다.
‘한적한 어촌 마을에 큰 도시에서 사업을 하는 사람이 휴양차 며칠 머무르게 되었다. 그가 민박을 하는 집의 어부는 가끔 바다에 다가서 물고기를 잡아오는데 출어를 할 때마다 만선으로 돌아왔다. 사업가는 어부에게 매일 출어를 하지 않는 이유를 물었다. 어부는 왜 그렇게 해야 하느냐고 되물었는데 사업가는 돈을 많이 벌 수 있지 않느냐며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다. 어부는 돈을 왜 많이 벌어야 하느냐며 의아한 표정을 짓자 사업가는 그 돈으로 편안하게 살 수 있지 않느냐고 답답해했다. 그러자 어부는 이렇게 사는 것에서 더 바랄 게 없으니 더 많은 돈이 필요하지 않다고 대답했다. 어부의 마지막 이야기를 듣고 난 사업가는 만족할 줄 모르고 돈만 벌기 위해 살아온 자신의 모습이 부끄러웠다.’
이 도시가 있는 섬은 평지가 거의 없는 경사가 급한 산지라 조상 대대로 힘들게 살 수 밖에 없어서 일찍이 소욕지족少欲知足의 이치를 생활에서 체득했을지도 모르겠다.
돈을 많이 벌어야 행복해질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작은 것에 만족하고 살 수 있다면 그 순간부터 행복하다는 것을 그들은 알고 있는 것이 아닐까.
자갈치 앞바다로 이어져 흐르는 맑은 물에 물고기가 오가는 보수천의 풍경을 그 섬의 하천과 겹쳐서 떠올려 본다.
내가 살고 있는 원도심의 가난한 산복도로 마을도 관광지 위주의 개발논리보다 지금의 분위기가 유지되는 도시재생사업을 통해 주민들이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진행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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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정 관 / 건축사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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