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이야기/세상 이야기

원도심의 골목길

무설자 2015. 8. 7. 1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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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도심의 골목길

  

 

 

                                                                                                                                                                                            김 정 관

나는 원도심인 중구 보수동에 산다.

부산포라는 한적한 어촌 마을에서 부산이라는 세계적인 메트로시티로 변모한 도시의 뿌리 지역이라는 자부심으로 살고 있다.

중구권은 부산을 대표하는 도심이었지만 부산시청이 연산동으로 이전하면서 변방으로 전락해 버렸다.

한동안 부산의 성장 동력권에서 멀어져 있다가 도시 문화를 찾는 이들의 발걸음이 잦아지면서 다시 활력이 넘치고 있다.

 

작년까지는 임시수도기념거리에 있는 사무실로 대청로를 따라 걸어서 출근을 했었다.

느긋하게 걸어도 10분이면 충분한 출근길이라 여덟시 반 정도에 집을 나서면 되었다.

중앙로와 함께 부산에서는 오래 된 큰 길인 대청로의 보수동과 부민동 구간에는 길을 따라 나이 먹은 은행나무가 심어져 있어 늘어선 가로수를 따라 걸으면 여름에도 상쾌한 출근길을 즐길 수 있다.

 

원도심에 집과 직장이 있어서 누리는 특별한 즐거움은 누려보지 않으면 알 수 없으리라.

길을 바삐 걷는 사람은 출발지과 도착지만 있을 뿐이지만 천천히 걸어도 되는 이는 길과 닿아있는 주변을 살피면서 걷는 즐거움을 누릴 수 있다.

원도심에서도 중구와 서구의 길은 차를 타기보다는 걸어 다녀야 제대로 된 도시의 맛을 음미할 수 있다.

 

원도심인 중구, 동구, 서구, 영도구는 부산이 오래된 도시임을 알 수 있는 역사적 산물을 많이 지니고 있다.

오래된 건축물과 좁은 길에는 근대의 뼈아픈 상흔을 담겨 있는데 이런 사연들이 원도심의 성장을 막는 한계가 되어 왔다.

일제 치하와 한국전쟁의 산물인 산복도로 아래 위에 지어져 있는 노후화된 주택은 경사지의 지어져 있어 아파트 단지를 조성할 수 없었고, 변방이 되어 버려 찾는 이들이 줄어들어 골목길 위주의 도심은 상권이 위축되어 활기를 잃어 버렸었다.

 

그렇지만 나는 이대로의 원도심 분위기를 아낀다.

아파트 대단지가 없으니 작은 집들이 길을 따라 이어져 있어 주민들은 원도심이라는 큰 한 동네 주민들인 셈이다.

차를 타기보다 걸어 다니면서 눈인사를 나누며 알아지는 이웃들이 늘어나면서 우리 동네사람이라는 연대의식이 삶을 훈훈하게 한다.

단지 아파트의 고밀도 주거에서는 얻을 수 없는 생활의 귀한 소득이라 할 수 있다.

 

원도심의 길은 신도시의 반짝거리는 분위기와 다른 무엇이 있다.

원도심의 길에는 부산의 역사가 묻혀 있기 때문이다.

길가를 따라 남아있는 오래된 건축물이 얘기해주는 우리 근대사를 피부로 체감할 수 있다.

안타깝게도 일제치하에 세워졌던 근대건축물을 한 때 많이 헐어내고 말았는데 부끄러운 과거라 그 시절을 잊기 위해서 그랬던 것일까? 그 시절이 뼈아픈 역사이긴 하지만 부산이라는 도시의 뿌리이자 잊어서는 안 될 민족사의 산교육장으로 활용했어야 했다.

길가에 세워둔 표지판으로 땅 밑에 묻혀버린 역사를 설명하려고 하지만 백문이 불여일견이라 했으니 남아있는 건축물만 할까?

 

내가 자주 걷는 길은 출근길인 대청로와 사무실 주변의 임시수도기념로는 부산의 근대사를 알 수 있는 근대건축물이 남아 있어서 그나마 다행스럽다.

일제 침탈기지였던 옛동양척식주식회사 부산지점이 미문화원으로 쓰다가 지금은 부산근대역사관이 되어 부산의 역사를 담아두고 있다.

독립군의 군자금을 지원했던 백산 안희제 선생의 유물을 전시하는 백산 기념관, 일제식민지 시절과 한국전쟁을 지나 지금도 재래시장의 순기능과 정취를 잘 살리고 있는 국제시장과 부평깡통 시장, 보수동 책방거리 따위가 부산의 역사를 담은 길답게 만들고 있다.

임시수도기념로는 동아대학교 부민캠퍼스로 바뀐 옛 경남도청사와 임시수도청사였던 동아대학교박물관과 임시수도기념관이 있어서 곧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를 추진할 수 있게 되는 모양이다.

 

사무실을 옮긴 올해부터 부민동에서 양정동으로 출근길이 바뀌면서 코스가 변동되었다.

원래 길의 반대방향인 대청로의 중앙동 방향으로 걸어서 지하철을 타면서 중앙동의 골목길을 탐색하는 즐거움을 만끽하게 되었다.

좁은 길의 포장을 반짝거리게 새로 하면서 묵은 여운을 없애버린 건 아쉽다.

퇴근길에 가끔 둘이 어깨를 맞대고 걷기 어려운 깊은 골목길에 숨어 있는 오래된 식당과 선술집을 보물찾기 하듯이 돌아다닌다.

 

오래된 도시 부산, 한국 근대사를 애틋하게 품고 있는 깊고 푸근한 골목길을 걷는 낭만을 나만 누리고 사는지 모르겠다.

부산의 멋과 맛, 원도심에서 한번 찾아 보이소. (2015, 7, 14)

 

부산일보 2015, 7, 19자 '아침향기' 게재

기사찾기 : http://news20.busan.com/controller/newsController.jsp?newsId=20150720000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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