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이야기/풀어 쓰는 건축이야기

집도 나이를 잘 먹어야 대접을 받는데

무설자 2015. 4. 29. 1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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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설자의 에세이 건축 이야기

집도 나이를 잘 먹어야 대접을 받는데

 

 

목조로 지은 한옥이나 사찰, 궁궐은 수백 년의 세월을 지나면서 이 시대의 모습으로 쓰이고 있다. 경주 양동 마을의 한옥은 500여 년 전에 지어졌지만 주택의 용도로 후손들이 살고 있으며, 부석사 무량수전은 고려시대(1376년)에 지어졌으니 무려 639 년이 지났는데도 사찰의 주 전각으로 매일 예불을 올리는 공간이 되고 있다. 건축구조체 중에서 가장 약한 재료인 나무를 써서 짓는데도 화재만 피한다면 우리나라의 집 중에서 장수하고 있는 것이 목조건축이다.

 

물과 불에 가장 취약하고 충해나 충격에도 늘 관리가 필요한 집이 목조건축이니 늘 눈길과 손길이 필요하다 하겠다. 구조체와 외벽을 습기로 부터 보호하기 위해 바닥에서 들어올려 주추를 놓아 가둥을 박았으며 비바람에 외벽과 창호에 물이 닿지 않도록 긴 처마를 뽑아 내어 짓게 된다. 유지관리에 약한 나무 구조재료와 흙벽에다 회칠한 외벽, 나무 창호를 건조한 상태로 유지해 주지 않으면 백년이 아니라 몇십년도 버티기 어려울 것이다. 

 

경주 양동마을의 대표 한옥인 관가정
나무구조체와 외벽을 유지 보호하기 위해 길게 처마가 나와 있으며 박공 지붕의 측벽을 비바람으로 피하기 위해 풍판을 달았다.

 

반면에 구조체를 철근콘크리트조로 하는 요즘 집은 처마가 없이 골조와 외벽, 창호가 외기에 그대로 노출되어진 채 지어진다. 땅값이 비싼 탓에 가능한 땅의 크기에 꽉 채워 지어야 하는 탓도 있지만 철근콘크리트라는 강한 구조체를 믿기 때문이다. 그 중에서 철근콘크리트 골조를 그대로 외피로 삼는 노출콘크리트 마감 방식은 구조체가 비바람에 직접 노출되어 견뎌야 한다.

 

외피가 처마 없이 비바람, 햇볕에 견뎌야 하므로 골조를 보호하고 외부를 치장하기 위해 외장재료를 선택해서 디자인하게 된다. 사람에 비유하자면 맨 몸을 비바람, 추위와 더위로 부터 보호하고 멋을 내기 위해 옷을 입는 것과 같다고 할 것이다. 비가 오면 옷으로 가리기에 한계가 있으므로 우산을 쓰고 햇볕을 피하기 위해 양산이나 모자를 쓰는 것도 결국 피부를 보호하는 역할이 된다.

 

집에 있어 골조는 사람에게는 맨몸으로 볼 수 있는데 골조의 아름다움을 외관으로 바로 나타내고자 하는 것이 여름이 되면 가능한 옷으로 적게 가리고 몸을 드러내고자 하는 것과 비교해 볼 수 있을 것이다. 골조가 바로 외관이 되는 집의 경우는 목조 건축이 대표적이고 철골이 골조가 되는 교량, 상징탑은 대규모로 지어지 다이아몬드 브릿지라는 별칭을 붙인 부산의 광안대교나 파리의 에펠탑은 도시를 대표하는 상징이 되고 있다. 철근콘크리트 구조체도 다른 마감없이 외피를 삼은 노출콘크리트 건축물을 설계하는 세계 최고의 건축가로 안도타다오를 들 수 있으니 골조를 외피로 드러내는 집은 그 상징성에서 세간의 이목을 끌 수 있음이 틀림없다.

 

목조는 재질이나 부재의 크기에 있어 한계가 있으므로 구조적인 문제의 해결이 곧 외장의 마감으로 결정된다. 그렇기에 오랜 세월 동안 쌓인 노하우가 전승되면서 목조 그 자체로 아름다운 집이 되지만 외관의 표현은 디자인의 다양성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철골 또한 정해진 규격의 선형 자재를 조합해서 골조를 삼기 때문에 구조체를 외장 디자인으로 승화시키면 상징성이 뛰어난 작품이 나올 수 있다. 철골은 부식만 방지하면 어떤 형태의 외관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점이 목조와는 다르다 하겠다. 반면에 철근콘크리트는 건축물 전체의 덩어리로 표현이 되기 때문에 노출콘크리트로 외관을 구성하려면 뛰어난 디자인적인 감각이 필요하다.

 

여기서 건축가들은 철근콘크리트조가 가지는 한계를 간과하는 오류를 종종 범하게 된다. 철근콘크리트조는 시멘트 모래 자갈과 물이 만나서 만들어진 콘크리트가 다시 물을 받아들이게 되면 백화라는 이물질을 생성하게 되고 중성화를 앞당겨서 철근이 부식된다는 것을 잊고 있는 경우가 많다. 철근콘크리트조 건축물의 백화 현상에 의한 오염과 철근 부식에 의한 외피 갈라짐 현상은 집의 유지관리에 의한 수명 연장에 가장 큰 문제가 된다.

 

노출 콘크리트나 습식 마감재료로 된 집의 외피나 바닥으로 빗물 등의 물이 배여들게 되어 백화현상이 진행되면 보수는 거의 불가능한 경우가 많다. 사람으로 치자면 맨 몸에 종기나 상처에 의해 흉터가 몸 전체에 번지는 상태라고 보면 되기에 성형 등의 수단이 아니면 드러내고 다니기 어려운 경우라고 보면 될 것이다. 반백년도 안 되어 철거되는 철근콘크리트조 건축물과 몇백 년이 지나도 아름다움을 유지하며 사람이 살고 있는 목조 건축물의 차이는 어디에 있을까?

 

이 큰 차이가 비를 가리는 처마의 유무에 있다고 본다면 과언일까? 비가 들이치는 집, 풍우에 노출된 외벽, 강한 골조를 부식시키는 콘크리트의 중성화와 점점 낡은 집으로 만드는 백화의 원인이 바로 처마가 없다는 원인에 의한다면 결코 무리가 아닌 이야기가 될 것이다. 처마는 외벽의 손상만 방지하는 것이 아니라 남향집의 여름에 실내로 들어오는 강한 햇볕을 막아주고 겨울에는 따뜻한 햇살을 들이는 역할도 수행한다.

 

물론 도심지의 지가地價를 생각한다면 처마를 뽑아낸 높은 건축물을 짓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렇다면 외피 디자인에 유지관리 개념을 꼼꼼하게 적용해야 한다. 창문 상부에 눈썹개념의 수평으로 돌출된 띠만 돌려도 외피 오염 방지에 큰 도움을 받을 수 있다.

 

건축물의 외장 디자인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한 건축가의 지나친 외피 위주의 작품 의지가 담긴 집은 외장 손상에 의해 건축물의 수명을 떨어뜨리는 직간접적인 원인이 될 것이다. 집은 도판 위의 그림이나 준공 직후의 사진으로 남는 작품이 아니라 허물어질 때까지 사람이 살기 위해 짓는다는 것을 유념해야 할 것이다. 집도 나이를 잘 먹어야만 대접을 받는데 그 대접은 부동산적인 가치, 즉 매매가치를 유지할 수 있다는 얘기가 된다.

 

내가 설계한 집들은 나이값을 하면서 대접을 잘 받고 있는지 궁금하다. 20년 전에 설계했던 첫 주택을 새집이나 다름없는 가격에 팔고 새로 주택을 설계 해서 입주를 했는데 건축주는 그 집에서 18년을 살았었다. 아직도 꽤 많은 건축주들과는 오랜 교분을 유지하고 있으니 작품적인 가치는 놔두고라도 그런대로 유지관리는 잘 되고 있는 편이지 싶다.  (2015, 4, 28)

 

 

작품성을 강조한 저명한 건축가가 설계한 위쪽  건축물과 처마를 적용한 외피 디자인을 적용한 아래 사진 건축물을 비교해 보았다. 빗물 유입에 의해 발생된 백화 발생과 오염된 외장은 설계 단계에서 예측할 수 있었을 것이다. 반면에 처마개념이 적용된 오른쪽 사진의 건축물은 오염을 원천적으로 차단되는 설계임을 알 수 있다.

 

무 설 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