茶 이야기/에세이 차 이야기

부처님오신날 차공양

무설자 2012. 5. 28. 2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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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설자의 에세이 차 이야기

부처님오신날 차공양

 

 

해마다 찾아오는 부처님오신날입니다

제가 다니는 사찰의 남자신도 모임에서는 신도들을 위해 차공양을 올립니다

평소에 절을 잘 찾지 않는 남자들은 부처님오신날 절에 와서도 머무를 곳을 찾지 못합니다

 

하긴 신도들을 위한 공간이 없다시피한 절은 평소에도 불전에 예배를 드리고 나면 갈 곳이 없습니다

경쟁관계로 타 종교의 공간을 살펴보면 신자들을 위한 넉넉한 공간이 부러울 뿐입니다

그래서 해마다 절을 찾는 분들을 위해 천막을 치고 잠시 쉬면서 차 한 잔 마실 수 있는 봉사활동을 합니다

 

 

절은 대웅전, 관음전, 지장전 등의 전각을 제외하면 식당의 역할을 하는 공양간이 신도를 위한 공간의 전부입니다

그 공간마저 개방하지 않는 절도 있으니 전각에 가서 예배를 올리고 나면 마당을 배회하다 나무그늘에서 쉴 수 있을 뿐입니다

불교의 사회적 위상이 점점 떨어지는 것은 아직도 신도들을 수직관계에서 하위개념으로 두기 때문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낡은 천막을 치고 쓰지 않는 테이블 세개를 놓고 신도들을 맞을 공간을 만들었습니다

마침 날씨가 맑아서 그늘만 만들면 나무 밑은 아주 훌륭한 휴식공간이 됩니다

떡과 빵, 과자와 과일을 준비해서 차를 끓여내면 이만한 자리도 없습니다

 

그렇지만 만약 비가 온다면 이런 자리도 소용이 없습니다

불교 행사는 주로 야단법석野壇法席으로 진행이 되는데 큰 건물에 다양한 목적공간을 가지고 있는 타종교가 부럽습니다

이 시대에 맞는 현대식 사찰이 가끔 있지만 아직 조선시대에 머물러 있는 불교의 공간에 대한 의식이 안타깝습니다

 

 

물 끓이는 전기포트를 준비하고 표일배에 차와 믹스커피, 종이컵으로 찻자리를 만들었습니다

이 정도의 조촐한 자리로 수백 잔의 차를 공양했습니다

보이차를 아주 맛있게 마시는 신도 분들을 보면서 차가 보급되지 못한 아쉬움을 느낍니다

 

 

화단 한켠에 버린 엽저가 한 가득입니다

차를 마시는 분들과 차 이야기, 삶의 이야기...종교 이야기를 많이 나누었습니다

차가 있으면 사람은 모이고 차를 나누면서 이야기를 나누면 금방 편한 사이가 됩니다

 

집에도, 절에도...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눌 공간이 넉넉하게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아니 좁더라도 차판 하나 펴면 어디든 넉넉하게 되는 것이 찻자리입니다

 

 

 

무 설 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