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이야기/세상 이야기

비겁한 주례사

무설자 2012. 1. 24. 0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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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남선녀가 찾아왔습니다.

결혼을 앞두고 잠깐 스승이었던 나를 찾아서 이렇게 서울에서 부산까지 인사를 왔으니 얼마나 고마운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찾아준 것까지는 너무 고마운데 찾아오면서 음료수만 들고 온 것이 아니라 부탁도 같이 가지고 왔더군요.

 

그 부탁이 참 난감한 내용이라 들어줄 수 없는데 너무 미안했습니다.

그런데 가만 생각하니 좀 괘씸한 생각이 듭니다.

만약 이 부탁을 하러 오지 않았다면 결혼 한다는 전화 한 통화로 때웠을까요?

 

그 부탁이라는 것이 다름 아닌 저를 두 사람의 결혼식에 주례로 모시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신랑은 제가 겸임교수로 대학에 출강할 때 제자이고 한 학기를 사무실에 근무를 했었지만 주례를 부탁할 줄은 몰랐습니다.

주례를 서 달라는 청을 받은 것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지만 아직 부부로 새로운 삶을 열어가는 이들을 축복해 줄 자격이 안 되기에 거절할 수밖에 없었답니다.

 

그래서 지난 번에도 그랬었던 것처럼 두 사람만을 위한 주례사를 해주었습니다.

28년 간 결혼 생활을 성공적으로 살아온 선배로서 그들에게 그 비결을 특별히 전했답니다.

30년 가까이 부부로서 잘 살아왔다는 것이 내가 다른 이에게  내세울 가장 큰 자랑꺼리기에 그들에게는 이 특별한 비결이 꼭 필요할 것입니다.

 

부부가 되어서 산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한 집에서 산다는 것, 한 방에서 한 이불을 덮고 하루를 같이 마무리하는 것을 행복한 일상으로 만드는 일이 결혼을 통해 부부로 살아가는 이상적인 것이다.

이 일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는 주변의 사람들을 돌아보면 금방 답은 나오는데 어떻게 살아야만 그 행복한 일상을 매일 둘이서 보낼 수 있을까? 

 

결혼을 하는 이유가 둘의 결합을 통해 자신에게 이익이 되는 삶을 기대하기 때문이라면 행복해지기 어렵지 않을까?

배우자가 가진 10가지 중의 한 가지 장점에 반해서 선택한 결혼이라면 살아가면서 점점 더 많은 장점을 발견하면서 행복을 보게될 것이다.

하지만 착각일 수 있는 배우자에 대한 지나친 기대는 불행해지는 가장 큰 이유가 될 수도 있다.

 

서로를 위해 해 줄 수 있는 일을 찾아서 나누는 것,

상대방의 허물은 하찮은 것이며 나의 부족함은 큰일로 생각해서 늘 조심해야 할 것이다.

내가 먼저 할 수 있는 일을 많이 만들면 부부 간의 다툼은 그만큼 줄어들 것이다.

 

부부가 되기 전에 연애를 하면서는 얼굴을 마주하는 것이 너무나 즐거운 일이었는데 부부가 되고나면 싸우기 위해서 마주보게 된다고 한다.

부부가 되면 인생의 길을 같은 방향으로 보고 살아가야 하는데 TV를 보기 위해서만 같은 방향을 본다는데...

마주보아야 하는 것은 같이 밥을 먹고 차를 마시면서 끊임없이 대화를 나누기 위해서 이며 그 대화의 결론으로 같은 방향을 향해 인생을 살아가야 할 것이다.

 

 

그들의 행복한 미래를 시작하는 자리의 증인이 되어달라는 그들의 청을 들어줄 수는 없었지만 두 사람이 서울에서 일부러 찾아왔으니 고맙고 기특한 일입니다.

결혼식에서 주례의 위치는 어떤 것일까요?

두 사람이 한 집에서 부부라는 이름으로 살게되는 것을 선언하는 자리의 증인 대표일 것인데 그 자리를 허락치 못한 이유가 무엇이었을까요?

 

부부로서 26년째 살아온 삶이 저로서는 만족하지만 아내나 딸에게는 부족한 것이 너무 많습니다.

결혼식의 주례자리에 서는 이의 자격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가정을 원만하게 꾸려왔어야 하는 것이라 생각하는데 그 점에서 저는 아직은 실격입니다.

여태껏 경제적인 독립을 이루지 못한 치명적인 결격사유를 제가 저를 용서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갑자기 주례를 서 달라는 청을 받고 거절의 핑계를 찾아 대면서 두서없이 주절거린 이야기가 두 사람에게 도움이 되었을까요?

아직 환갑까지는 5년이 넘어 남았으니 한 가지 부족한 주례의 결격사유(?)를 채울 수 있도록 노력해 보겠습니다.

환갑을 넘기고 누군가 저를 찾아와서 주례를 부탁하면 당당하게 허락을 할 수 있도록.... (2011, 12)

 

 

 

무 설 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