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축산 극락암,
경봉 스님이 주석하셨던 극락암은 나의 불교이력으로는 고향같은 절이다.
고등학교 1학년이었던 1975년에 경봉 스님을 계사로 계를 받았던 장소이기 때문이다.
圓成,
경봉 스님께서 '둥글게 잘 이루어라'라고 하시며 법명을 원성이라 내리셨다.
모가 많은 천성이라 원성이라는 법명 그 자체가 삶의 화두인 것 같다.
정해놓고 찾는 것은 아니지만 양산 쪽으로 길이 잡히면 들르게 된다.
계를 받았던 그 암자의 분위기가 아니라 큰 절이 되어버린 것이 아쉽기는 하지만 찾을 때마다 마음이 푸근해진다.
극락암에서 변하지 않은 풍경은 영축산과 하늘 구름 뿐인가?
통도사 큰 절도 산내 암자도 전각이 늘어나고 온갖 석물로 치장을 해서 갈 때마다 낯선 풍경이 된다.
산 속에 있는 절은 규모를 키우지 않았으면 좋으련만 경쟁하듯이 너무 크고 화려하게 짓고 있다.
수행자는 배 고프고 등이 시려야 공부가 될 터인데 고대광실에 모시장삼을 입고 살면서 수행이 될까?
'극락에 길이 없는데 어떻게 왔는고?'
경봉 스님을 친견하러 온 이에게 내린 질문에 이렇게 대답을 했다고 한다.
'잘 닦여진 길로 오는데 불편함이 없었습니다'
절 문턱까지 승용차로 닿을 수 있으니 절을 찾는 이도 이미 절에 오는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승용차가 흔하지 않았던 시절에는 시외버스를 타고 신평 시외버스 터미널에서 큰절을 거쳐 극락암에 왔었다.
오두막같은 극락암이었지만 그 때는 정말 극락에 온듯이 좋았었는데 이제는 그 절이 그 절인 극락암이다.
여름이 막바지에 이른 극락암에 해바라기가 지고 있다.
자연은 그대로가 극락이지만 사람이 만든 흔적은 극락도 극락이 아니게 만들어 버린다.
마음에서 찾아야 하는 극락을 손으로 만드려고 하니 그나마 있는 극락가는 문을 닫아버린다.
극락처럼 보이려고 연꽃을 심었지만 연꽃이 핀다고 극락인 것은 아니다.
處染常淨
문자를 알면 무엇할까?
영축산 山精水를 이렇게 담아놓으니 좋아 보이는가?
대패질 하듯이 깎아 놓은 돌확이 크고 화려하게 지어놓은 절집과는 어울려 보인다.
그렇지만 산사에 맞는 그림은 아니니 역시 극락암이라는 마음에 담은 내 절의 정취는 아니다.
아이가 마시는 물은 영축산 산정수임에 틀림 없다.
멋대가리 없는 돌확에 담긴 산정수가 물맛을 떨어뜨리게 하지만 물은 그대로 그 물이다.
물을 마시는 이야 목 마를 때 목만 축이면 되겠지만 이름값에 어울리는 그릇도 제대로 만들어야 하지 않겠는가?
이 물은...
그나마 산정약수에 대한 사연을 새겨놓은 비석이라도 운치가 있으니 물맛도 그만하리라.
영축산 정기가 담긴 물 한 통 길어와서 우린 차 한 잔 맛에 이 잔 생각만 벗을 수 있다면 좋으련만.
역시 아직 원성이라는 법명을 닮지 못했으니...
둥글게 이루어야 하는데 모난 이 성정을 어이할꼬.
무 설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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