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설자의 산사순례기 1009
山寺의 넓은 마당에서
예천 소백산 용문사
용문사(龍門寺)는 870년(신라 경문왕 10) 두운(杜雲) 선사에 의해 창건된 것으로 전해옵니다.
고려 태조 왕건이 신라를 정벌하러 내려가다 이 사찰을 찾았으나 운무가 자욱하여 지척을 분간치 못했는데,
어디선가 청룡 두 마리가 나타나 길을 인도하였다 하여 용문사라 불렀다고 합니다.
고려 명종 때 '용문산 창기사(龍門山 昌期寺)'로 개명했으나 조선 세종대왕의 비 소헌왕후의 태실을 봉안하고 ‘성불산 용문사’로 다시 고쳤고, 정조때 문효세자의 태실을 이곳에 쓰고 ‘소백산 용문사’로 바꿔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임진왜란시 승병들의 지휘소로 이용되었던 자운루가 용문사에 아직도 남아있어
호국불교의 기풍을 후손들에게 전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남아있는 윤장대(보물 684호)를 비롯 성보문화재 10여점이 현존하며,
조선숙종때 조성된 목각탱화(보물989호)는 우리나라에서 제일 오래된 것으로 알려져있습니다.
특히, 팔만대장경판을 보관한 윤장대를 돌리면 번뇌가 소멸되고 공덕이 쌓여 소원이 성취된다고 하여
예로부터 참배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이어지고 있습니다.
-옮겨온 글-
단풍이 절정에 오른다하여 바쁜 맘에 부산에서 위로 잡은 길이 예천, 안동입니다
정말 온 산이 물들었다는 표현대로 아름다운 단풍이 세상 시름을 잊게 합니다
안동 지역에 들어서니 예천까지 가는 길에는 잘 익은 사과가 또 다른 눈요기감입니다
이렇게 풍요로운 결실이라면 우리네 삶도 그러해야 하는데 저 결실 앞에서도 행복하지 못합니다
욕심이 많아서 만족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욕심을 내는 그 자체가 욕심인 세상입니다
그나마 주어진 것에 만족할 수 있도록 이렇게 산을 찾아 산사를 기웃거리게 하나봅니다
용문사로 접어드는 길은 산사라고 하기에는 너무 잘 닦여진 길이라 운치가 좀 덜한 것 같습니다
그 넓은 길에 자리한 일주문은 소박하기 이를데가 없습니다
일주문이 이러하다면 절은 아주 조촐할 것 같습니다
아직 나뭇잎이 푸른 것도 많이 남았는데 길에 떨어진 낙엽은 겨울 산에 든 기분을 줍니다
낙엽과 단풍, 그리고 아직 푸른 끼를 가지고 있는 잎을 보니 불안정한 기상상태를 느끼게 합니다
더위가 너무 오래 간다싶더니 가을이 익기도 전에 한파가 몰아닥친 그 징후를 그대로 보여주네요
푸른 잎은 푸른대로 단풍이 든 잎은 또 그런대로 보고 싶은대로가 아니라 있는 그대로 있을 것입니다
단풍을 바라보며 행복하다면 단풍이 든 아름다운 정취를 살피면 행복해질 것입니다
산사로 드는 길이 너무 정갈하게 잘 닦여져 있어서
우리가 살아가는 길도 이렇게 순탄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일주문에서 느끼는 이미지가 절 마당에 들어서는 순간 화들짝 놀랠 정도로 깨져 버립니다
산사라는 이미지와는 걸맞지 않는 큰 스케일의 마당이 펼쳐지니 큰 불사를 이룬 새절입니다
일주문이 소박하다면 그 전에는 이처럼 큰 마당을 가진 절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한국 불교가 산중 불교라고 하더니 요즘 이처럼 산 속에 있는 절을 키우는 쪽으로 집중하고 있습니다
산 속에 있는 절에 이처럼 큰 마당이 왜 필요하며 새로 짓는 전각도 너무 많아 보입니다
이 큰 마당에 대중이 운집하는 큰 야단법석이 펼쳐지기에
그 필요에 의해 이렇게 큰 마당을 만든 것일까요?
높은 축대를 쌓고 아랫 단에는 새로 지은듯한 건물들이 가득합니다
큰 마당에 세운 새 건축물들이 곱게 보이질 않는 건
불법을 널리 펼치고자 하는 전도의 의지가 느껴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산 속에 있는 고찰들은 원형을 보전하고 고찰들의 포교당들을 많이 지어야 할 것인데
산 속만 요란하게 만듭니다
가을은 산 속을 야단스럽게 만듭니다
가을이라는 한 철만 그러하겠지만 이 단풍을 찾아 관광버스로 고찰순례단이 모여듭니다
고찰 순례라는 명목의 관광객에 불과한 불자들이 몰려오기 보다는
진정한 불자들이 더많이 오면 좋겠습니다
앞 산을 바라보니 보이는 건 울긋불긋 단풍에 물들어가는 자연 그대로입니다
이 산의 주인인듯한 이 산사는 산을 위해 어떤 노릇을 하고 있는 것일까요?
자연은 오랜 세월을 살아도 그 모습 그대로인데 사람이 사는 집은 욕심대로 모습을 바꿉니다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는 내가 되기 위해 절을 찾아 부처님을 뵈었으면 좋겠습니다
산사를 찾아다니는 제 모습도 그러한지 돌아봅니다
부처님께 삼배를 올리며 제 욕심대로 이뤄지도록 빌지 않고
제 원력만큼 열심히 살겠다는 마음을 담아봅니다
깨달은 이인 부처님께 예를 올리는 것인지 해결사인 부처님께 매달리는 것인지 돌아 보아야겠습니다
부처님은 삶의 고뇌를 해결하는 길을 가르쳤던 분이지 엎드리는 이의 욕망을 채워주는 분은 아니지요
그런데도 대부분의 불자들은 영험있는 불상이 있다면 먼 길을 마다하지 않고 찾아 듭니다
용문사에서 가장 오래된 건축물로 보이는 대장전은
조선 현종6년(1665)에 지어졌으니 약 350년이 된 집입니다
8만 대장경의 일부를 보관하기 위해 고려 명종 3년(1173)에 지었으나
복을 비는 윤장대만 이름을 드러냅니다
불법이 복을 빌고 화를 면하는 길이라 여겨지니 이 시대의 불교는 자꾸 제 역할을 잃어갑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담은 경을 보관하던 집이라 알고 불법을 공부하고
그 길을 닦는 원력을 세우는 곳이라 여기면 좋겠습니다
엎드리는 이는 많아도 마음을 다지는 이는 적으니 부처님이 앉아 계신다면 무엇이라 하실까요?
불법이 이 시대를 깨우는 가르침임을 확신한다면 산사에도 법을 전하는 이가 있으면 좋겠습니다
전 높은 계단을 올라가는 이들은 무엇을 찾아 가는 것일까요?
맑은 물이라 마시는 이는 차가운 물을 마시며 마음까지 적실 수 있을까요?
붉고 노란 물이 아름답게 잎새에 스며들듯 산사에 오면 부처님의 가르침에 흠뻑 적셔지길 빌어봅니다
이 청량수를 마셔서 육신의 갈증 뿐 아니라 마음의 갈증까지 해갈될 수 있는 절이길 바랍니다
규모를 키우는 산사보다는 옛 기운을 잘 간직해서
삶의 문제를 해결했던 분들의 향기를 느끼는 곳이 되었으면...
물 한 잔에 시름을 잠시 쉬고 차 한 잔 나눌 수 있는 그런 자리가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요?
크게 크게 자꾸만 덩치를 키우는 산사들이
관광객의 눈요기감이 되어간다는 염려는 나만이 가진 기우이길 바랍니다
옛 모습 그대로 고찰은 그렇게 있어야하고 이 시대에 맞는 절은 도시에서 제 역할을 해야합니다
기와집을 돈을 들여 자꾸만 키우는 것이 부처님의 가르침도
옛날 이야기로만 여기게 만드는 것이 아닐까요?
흰 화강석을 깎아 바닥을 만들고 우리 기후에 맞는지 알 수 없는 수입재목으로 화려하고 큰 기와집,
이제 더 이상 산 속에 짓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이 시대의 종교로서 설 자리를 자꾸만 잃어가는 도시에 불법을 전할 새 도량이 세워지길 바랍니다
불법은 이 시대에도. 앞으로도 영원히 필요한 가르침입니다
우리 스스로 옛 이야기로 만드는 우를 범하지 않는 길이
관광지 사찰을 만들지 않아야 함도 포함되어 있을 것입니다
길은 돌아갈수록 좋고 말은 곧아야 좋지 않는가 하는 엉뚱한 생각을 해보는 순롓길입니다
무 설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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