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이야기/나는 부처다

나는 꽃이다-나누는 삶, 함께하는 행복/틱낫한 스님 부산 강연 정리

무설자 2011. 4. 8. 1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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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꽃이다

   

 - 나누는 삶, 함께 하는 행복

  글은 2003년 3월 25일 부산 KBS홀에서 있었던 베스트셀러 '화'의 저자 틱낫한 스님의 강연 내용을 정리한 것입니다.

녹취하여 정리한 것이 아니라 강연을 들으면서 메모한 내용을 정리한 것이므로 빠지거나 첨가한 부분이 있을 수 있습니다.

 

 

내가 살고 있는 프랑스의 플럼빌리지에는 남녀 수행자들이 모여서 공부하고 있습니다. 여자 수행자인 비구니들의 처소와 남자 수행자인 비구들의 처소가 있습니다. 가끔 언론매체에서 우리들의 특별한 생활에 관심을 갖고 취재를 하려고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프랑스에서 발간되는 잡지에서 우리 플럼빌리지의 비구니의 수행에 관심을 갖고 취재를 요청한 적이 있었습니다.

 

비구니 수행자들은 이러한 취재요청을 허락하면서 한 가지 조건을 붙였습니다. 만약 우리의 생활을 취재하고 싶다면 우리와 일주일을 꼭 같이 생활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잡지사의 기자는 우리가 제시한 그 조건대로 우리와 일주일을 같이 지내면서 취재를 진행했습니다.

 

담당기자가 취재를 끝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니 남편은 퇴근하여 TV를 보고 있었답니다. 기자는 남편에게 특별한 요청을 했습니다. TV를 끄고 대화를 하지는 것이었지요. 어떻든 남편은 부인의 요청을 받아들여 TV를 끄고 서로 얼굴을 마주했습니다. 남편이 TV를 보는 이유가 무엇이었겠습니까? 일상 속에서 생긴 마음에 가득 찬 분노, 고뇌를 퇴근 후에 보는 TV에다 집중하여 쏟으려 한 것이었겠지요.

 

쎙 떽쥐베리는 어린 왕자에서 이렇게 말했지요.

사랑이란 마주 보는 것이 아니라 같은 방향을 보는 것이다

남녀가 사랑에 빠지게 되면 처음에는 서로 마주 보기를 원합니다. 마주 보면 행복해지기 때문이지요.

 

서로 사랑하는 사람이 처음에는 계속 얼굴을 바라보겠지만 언제부터인가는 고뇌가 그 두 사람을 따르게 될 것이라고 부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처음에는 어떤 남녀간이든 바라보는 그 자체만으로도 좋겠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괴로워하게 되며 마침내 분노에 찬 생활을 하게 된다는 것이지요.

 

그렇기 때문에 부부가 TV쪽으로 같은 방향을 보게 된다는 것입니다. 삶에 대한 이념으로 같은 방향을 보아야 하는데 말입니다. TV를 보는 방향으로 시선을 같이 하는 것은 자신마저 잊고자하는 소극적인 마음이지요.세상의 많은 부부들이 서로 얼굴을 보면 괴롭기에 TV를 향하면서 서로를 향하는 시선을 피하고자 합니다. 마찬가지로 아버지와 아들, 엄마와 딸, 시어머니와 며느리도 그러합니다.

 

지금 우리의 가정은 대화부재가 만연되어 있습니다. 아이들은 부모에게 침묵으로 저항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사실을 우리는 마음을 비우고 받아들여야 합니다.

 

기자는 남편에게 이러한 의미를 알았기에 TV를 끄고 대화하기를 요청했던 것입니다. TV를 끄고 고개를 돌린 남편의 눈에는 부인과 싸울 준비를 갖추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기자는 남편에게 서로 싸우지 말고 이제부터 참선을 시작하자고 얘기했습니다.

 

나를 보지 마시고 숨을 바라보십시오

그리고 미소를 지으십시오.

한 송이 꽃처럼 맑고 신선해져야 합니다.

그래야만 참선의 의미를 느낄 수 있습니다.

 

숨을 들이쉬며 / 나는 꽃이다

숨을 내쉬며 / 그래서 나는 맑고 향기롭다

하고 게송을 읊으십시오

 

당신은 행복한가하고 물어 보십시오. 만약 행복하지 않다고 얘기한다면 그 원인을 함께 알아보자고 얘기해 보십시오. 서로의 고통을 확인하는 것은 고성제苦聖諦이며 그 원인을 아는 것은 집성제集聖諦입니다. 많은 부부들이 큰 집, 좋은 차로서 남부럽지 않은 부를 누리면서도 고통 속에 삽니다. 물질적인 것만으로는 행복해지지 않기 때문일 것입니다. 선을 하는 이유는 지금 이 순간의 존재현상을 깊이 있게 이해하기 위한 시간을 갖는 것입니다.

 

나는 정말 행복한가?

그렇지 않다면 왜 그럴까?

 

이 질문은 고통 속에서 살아가는 부부들에게는 현실적이며 매우 중요합니다. 부처님을 찾고 있는 이 존재가 무엇인가를 봅니다.

그 기자 부부는 그 순간 고통을 직시하게 됐고 그 원인을 깨닫기 시작했습니다. 어떤 부부든 처음 만나 사랑을 느끼게 되었을 때는 당신이 없다면 살 수 없다고 말했을 것입니다. 사랑에 빠진 어떤 연인이라도 그러하듯 이렇게 얘기합니다 .

 

너 없는 세상은 의미가 없다.

오직 당신만을 사랑해

 

그렇지만 결혼하여 몇 년이 지나면 대화가 끊어지고 서로 마주보기를 두려워하게 됩니다. 그 때부터는 가능한 멀리 할 궁리만 하고 사는 듯 합니다. 어떤 부부는 서로 괴롭힐 생각만 하고 사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 고통의 실체와 원인을 파악해 봅시다. 화가 치밀어 오르는 순간 그 화를 다스리지 못하면 괴로움의 씨앗이 발아하기 시작합니다. 이렇게 날이면 날마다 상대방의 마음에 고통이 일어나게 하면 나의 마음에도 고통이 함께 하게 됩니다. 괴로움이 점점 커지면 그 원인을 남에게 돌립니다. 남편은 아내에게, 아내는 남편에게 잘못을 돌리지요. 그들은 남이 내 고통의 제공자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내게 일어나는 괴로움을 남에게 돌려주려 합니다.

 

만약 여러분 곁에 좋은 도반이 있다면 너와 나의 관계 속에서 괴로움이 생긴다고 얘기를 할 것입니다. 이러한 이치를 모르는 것은 괴로움의 원인에 대해 잘못된 견해를 가지고 있는 것이므로 괴로움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는 길을 찾을 수 없습니다. 부부 간, 동료 간의 대화를 되찾기 위해서는 주의 깊게 생각하고 말해야 합니다. 가정에 대화가 끊어지면 불화가 생기고 나라간에 대화가 없어지면 전쟁이 일어납니다.

 

여성들은 관세음보살과 같은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관세음보살은 자비심이 가득하기에 어떤 얘기에도 화내지 않고 받아들입니다. 우리들 가정에 대화를 되찾기 위해서는 관세음보살의 자비심과 잘 듣기를 배워야 합니다. 관세음보살께서는 가장 중요한 수행은 관심있게 듣는 것이라고 가르칩니다.

 

상대방의 말을 겸허하게 경청한다는 건 말 할 수 있는 간격을 주는 것입니다. 비록 상대의 말 속에 분노, 편견이 가득 차 있어도 포용할 수 있어야 합니다. 상대가 분노와 미움, 질투가 가득할 지라도 그 말을 자비로서 섭수하지 못하게 되면 그는 모든 원인을 남에게 돌리는 잘못된 성향을 버리지 못할 것입니다.

 

상대를 헤아릴 줄 모른다면 고통은 끊어지지 않습니다. 상대가 내는 화의 수렁에 빠지면 수행의 효과는 나타나지 않습니다. 상대가 나를 어떻게 대하더라도 나는 그를 한없이 받아들일 것이다라고 다짐해야 합니다. 그렇지만 이렇게 하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끊임없이 내게로 향하는 상대방의 화를 받아들인다는 것이 너무나 힘든 일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관세음보살의 제자로서 자비를 배우기 위해서 끊임없이 자비로움을 연습해야 합니다.

 

상대방이 어떤 말을 할지라도 대꾸하지 말고 오직 먼저 들어야 합니다. 들어줌으로서 상대의 화는 그릇에서 비워집니다. 깊이 경청하고 조건 없이 받아들이는 수행을 하면 상대방도 받아들이게 됩니다. 현대인은 서로 깊이 있게 경청하는 마음, 조건 없이 받아들이는 마음을 잃어 버렸습니다.

 

최첨단의 대화수단-휴대폰, 이메일, 팩스를 가지고 있지만 마음을 잃어버렸기에 진정한 대화는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관세음보살의 깊이 경청하는 기법, 조건 없이 받아들이는 기법이 없이는 대화를 찾을 수 없습니다. 모든 사람이 플럼빌리지에서 일주일만 수행한다면 대화의 가능성을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남녀 모두가 서로 경청하는 것은 사랑스러운 말을 하는 것과 다름없습니다. 아내와 남편이 서로 상대의 얘기를 듣고 이렇게 얘기하십시오.

 

여보 지난 몇 년 동안 나 때문에 얼마나 괴로웠소?

당신의 괴로움을 벗어나도록 돕지 못하고 오히려 더하게 한 것 같소.

당신의 가슴속의 모든 얘기를 끄집어내시오.

이제는 행복과 기쁨만을 주려고 하오.

 

부모가 자식에게, 형제지간에, 동료지간에도 그렇게 해보십시오. 나는 제자들에게도 똑같이 얘기합니다. 나로 말미암아 제자들이 괴롭지 않은가 하고 말입니다. 부모와 대화를 단절한 많은 젊은이들이 자살로 이어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아버지는 항상 아들을 꾸짖으려고만 하고 이해하려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아들은 괴로워합니다. 선생님이 학생을 꾸짖지만 학생과 함께 선생님도 괴롭습니다.

 

아들딸은 부모의 계승자입니다. 그들이 없으면 나의 존재 또한 없습니다. 관세음보살의 제자로서 우리는 아들딸을 자비심으로 이해하고 받아들여야 합니다. 오늘 저녁 집에 들어가면 이렇게 얘기하십시오.

 

얘야, 지난 몇 년 동안 너를 괴롭혔구나

이제부터는 자애로운 말, 깊이 경청하는 자세로 너를 대하겠다.

무엇이 너를 괴롭히고 있느냐?

이제 나는 네게 괴로움을 주지 않겠다.

 

깊이 경청하고 자애롭게 하는 말은 대화를 이끌어내고 원만한 결과를 만들어냅니다. 아이들의 말을 깊이 듣고 이해하려 할 때 아이들도 그렇게 합니다. 만약 부인이 남편을 이해하지 못하고 지혜롭게 받아들이지 못하면 남편의 고통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남편 또한 부인에 대해 그러할 것입니다.

 

부처님은 지혜는 자비 없이 성립할 수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문수는 지혜, 관세음은 자비의 상징입니다.

 

확신하건대 일주일만 깊이 상대의 얘기를 듣고 자비로운 마음으로 대한다면 대화는 살아날 것입니다. 오늘 저녁 집에 돌아가서 이 수행을 해 보십시오, 이 수행은 정념-깨어있는 마음을 유지하는데 기초하고 있습니다. 고요한 마음으로 주변을 거닐면서 들숨 날숨을 바라보며오지않은 미래에 대한 두려움을 버리십시오.

 

숨과 함께 온전히 깨어있는 순간을 느낄 때 살아있는 그 자체가 경이로워질 것입니다. 고요한 마음, 맑은 눈빛으로 상대방을 바라보며 이렇게 주문을 외우십시오.

 

나는 당신이 온전히 깨어 존재함을 압니다.

나는 당신이 행복한 것을 압니다.

 

여보

내가 지금 당신 곁에 있습니다.

당신의 괴로움을 없애주기 위해 같이 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의 괴로움을 알아줄 때 그의 괴로움은 한층 덜어지게 됩니다. 이 주문을 잘 유지하기 위해 정념-집중된 마음을 갖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이 집중의 힘을 키우기 위해 3분 만 호흡에 집중된 마음으로 걸으면 정념과 선정의 힘을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정념과 선정으로 우리는 온전히 존재할 수 있습니다.

 

 

정리 ; 김 정 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