茶 이야기/에세이 차 이야기

고진감래의 향미로 마시는 보이차

무설자 2007. 8. 22. 1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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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설자의 에세이 차 이야기 070822

고진감래의 향미로 마시는 보이차

 

 사는 것이 참 재미가 없습니다. 예전에는 은퇴 시기라는 게 있어서 제 전문분야에서도 시간이나 경제적인 면에서도 여유가 있었습니다. 그 여유를 봉사나 여가시간으로 보내면서 회향하며 사는 준비를 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나이 드는 게 두렵습니다. 세상 탓만 할 문제는 아니지만 주어지는 현실이 의무와 책임만 있을 뿐 누릴 수 있는 여유를 가진 사람은 드물지요. 세상 탓을 하는 게 어리석을 뿐 내 부족함을 반성하지만 사는 게 만만치 않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저의 여러 가지 면을 바꾸어보려고 애를 써 봅니다. 이 어려움을 저를 변화시키는 계기로 삼아 보자는 것이지요. 어떤 동기가 주어지지 않고 자신을 돌아보고 부족한 부분을 찾아 변화시키기란 쉽지 않지요. 그렇더라도 이 어려운 시기를 넘어가기 위해 마음을 다잡아 봅니다.

특별한 동기나 계기 없이 자신을 돌아보고 부족한 부분을 찾아 변화시키기란 쉽지 않지요

 

 재미없는 요즘이지만 그나마 차를 마시는 즐거움이라도 있어서 다행입니다. 녹차를 마신지는 벌써 25년이 넘었지만 차 맛을 따로 이야기할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제 돈을 따로 들여 좋은 차를 찾아서 마시지를 않았으니까요. 지금은 좋은 차에 대한 관심을 갖고 차모임도 나가면서 차를 배우고 있습니다.

 

 최근에 네 시간을 연강으로 차에 대한 강의를 들었습니다. 차에 대한 지식은 꽤 가지고 있는 편이었지만 고수를 만나서 듣는 차에 대한 높은 지식은 저의 부족함을 일깨워줍니다. 저의 어느 쪽이라도 부족함을 알게 되면 전체적인 일상에 자극이 옵니다. 요즘은 차가 저를 흔듭니다.

 

 차를 마시면서 그 맛을 물어보면 이것이라며 단언하기가 어려울 것입니다. 그 맛이 바로 차 맛입니다. 단맛과 쓴맛이 주를 이루지만 그 안에는 다른 맛도 복합적으로 어우러집니다. 그렇지만 주로 단맛을 찾지요. 그래서 커피도 단맛이 주도적인 커피믹스를 많이 마시나 봅니다.

어떤 일이 계기가 되더라도 나의 부족함을 알게 되면 전체적인 일상에 자극이 옵니다

 요즘 제가 많이 마시는 차는 보이차입니다. 보이차는 특별한 맛이 없습니다. 차마다 약간의 다른 차이를 보이지만 초보자들은 그 맛이 그 맛이라고 할 정도입니다. 그런데 이 보이차가 중국에서도 난리이고 우리나라에서도 음용인구가 급격히 늘고 있습니다. 왜 그런지는 마셔보아야 압니다.

 

 

 이 보이차 이야기를 좀 하겠습니다. 보이차는 쓴맛과 떫은맛이 강해서 그 해에 만들어진 차는 마시기가 어렵습니다. 겨우 마시기 위해서는 최소 5년은 지나야하며 제 맛을 내기 위해서는 20년이 되어야 하며 제대로 이 맛이라며 인정받는 데는 30년 이상 되어야 한다는 차입니다.

 

 제 맛을 발휘하는 오래된 보이차에는 깊은 맛이 있습니다. 이 맛과 향은 차를 목으로 넘긴 뒤에 입안과 코로 되돌아 나옵니다. 이것을 회운回韻이라고 합니다. 좋은 차는 몇 시간씩 지속된다고 합니다.

제대로 된 향미를 느낄 수 있는 오래된 보이차에는 묘하게 깊은 맛이 있습니다

 

 회감回甘이란 차를 넘긴 뒤에 입안에 감지되는 단맛입니다. 쓴맛과 떫은맛 뒤에 돌아 나오는 단맛이지요. 회운은 좀 더 디테일한 맛이며 회감은 차를 마신 즉시 알게 되는 맛입니다. 회감은 누구나 느낄 수 있지만 회운은 느끼기 위한 훈련이 되지 않으면 잘 감지되지 않습니다.

 

 또 다른 맛으로 첨미甛味가 있습니다. 이 맛은 차가 입 안에 있을 때 혀로 감지되는 맛입니다. 한자를 파자한대로 단()맛이 혀()에 바로 느껴지는 것을 말하지요. 흔히 말하는 단맛을 말합니다.

 

 이 맛을 보이차에서 구분해서 느끼기에는 꽤 많은 양의 차를 마셔보아야 가능합니다. 어떤 차에는 첨미가 주로 느껴지고 어떤 차는 회감이 많이 느껴지며 상당히 좋은 차라야 회운이 올라옵니다. 이 디테일한 맛을 느낄 수 있는 정도의 차이에 따라 차맛의 우열을 나눌 수 있는 수준이 있다고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첨미는 꿀맛 느낌의 밀향이라고도 하는데 차의 호감도를 결정하는 요소가 됩니다. 회감은 쓰고 떫은맛과 연관되어 차 마니아들이 따지는 맛입니다. 회운은 좋은 환경에서 잘 보관된 오래 묵은 생차인 노차에서 주로 음미할 수 있는데 차의 급수만큼 마시는 사람의 구감과도 연관됩니다.

보이차를 마시며 느끼는 향미에는 첨미甛味, 회감回甘, 회운回韻이 있다

 

 갓 만든 보이차는 쓰고 떫은 맛이 많아서 바로 마시기가 어렵습니다. 그래서 만든 즉시 마실 수 있게 급속 발효시킨 보이차를 숙차라고 합니다. 숙차는 급속 발효되는 과정에서 회감과 회운을 옅어져 첨미 위주로 차맛을 음미하게 됩니다.

 

 생차는 말 그대로 만들어서 오래 보관하며 차의 성분 중에 폴리페놀이 산화되면서 쓰고 떫은맛을 줄어들어 부드러운 차가 되기를 기다립니다. 생차는 오래되어도 쓴 맛이 살아있기 때문에 회감과 회운을 즐기고 보관 과정에서 복합적으로 변화되는 차의 성분이 차맛을 결정합니다.

인생을 재미와 느낌으로 산다고 하면

 

 재미가 있어야 살맛이 난다는데 어떤 재미로 사는지요? 달콤한 인생이라고 표현하듯 대부분의 사람들은 인생의 단맛을 찾습니다. 달콤하다는 표현은 어떤 것입니까? 깊이는 없을지 몰라도 즐겁고 재미있는 상태가 바로 느껴지는 게 달콤한 것이겠지요. 하지만 인생에서 이런 단맛은 오래 지속되지 않는 것이 보통입니다. 빨리 느껴지지만 금방 끝나 버리지요. 그래서 그 맛을 이어가기 위해서는 빨리 빨리 보충해줘야 합니다.

 

 그럼 재미와 다르게 느끼는 인생이 있을 겁니다. ‘느끼는 인생이라고 표현한다면 몸보다는 마음으로 와 닿는 맛이지요. 느낌을 얻기는 어렵지만 한 번 그 느낌을 받게 되면 여운이 오래 지속되어 금방 사라지지 않지요. 강렬하지는 않지만 은근한 그 맛은 자신만 가지는 고유한 의미가 됩니다.

 

 보이차에는 재미와 의미가 함께 담겨 있는 것 같습니다. 이 맛이라고 표현하기는 어렵지만 자신만 느끼는 그 의미가 담긴 숨어있는 맛을 느끼는데 빠져드는 것 같습니다. 세월을 두고 익어가는 차의 맛, 보관되는 환경과 세월의 연수에 따라 달라지는 맛, 차가 자란 환경에 따라 다른 맛, 수장하여 지켜보며 마시며 그 다른 맛을 음미하는 것에서 인생을 함께 느끼게 됩니다.

 

 기본적으로 쓴 맛이 바탕이 되는 보이차는 지금의 팍팍한 삶과 바탕에서 함께 어우러지고 그 안에서 조금씩 느껴지는 단맛과 그래도 살만하다는 희망의 여운과 보이차의 회운이 닮아 있습니다. 그래서 보이차 한잔으로 이 어려운 세상을 이겨내는 듯 마음을 냅니다.

 

 이 글을 읽는 분들에게 단맛이 숨어서 돌아 나오고 차를 마신 뒤에도 향기가 입안과 코에서 맴도는 좋은 보이차 한잔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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