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이야기/풀어 쓰는 건축이야기 31

중국 어학연수길에 나선 딸에게

중국 어학연수 길에 나선 딸에게 내가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은 비행기 안이겠구나. 잠깐 여행이 아니라 일년을 살기 위해 중국으로 가고 있는 네 머리 속에는 온갖 생각이 가득할 것이다. 집을 떠나고 학교를 떠나고 네가 만나던 사람을 떠나는 자리이다. 여자 나이 스물둘이면 이제 스스로 서기 위한 마음가짐이 확고해야 하겠지만 아직도 어떻게 자신의 미래를 만들어가야 할지 불안하기만 할 것이다. 인생은 예정된 길을 간다고 믿는 것이 아빠의 요즘 생각이다. 그 예정된 길이라는 것은 누구도 알지 못한다. 다만 지나온 길을 돌아보니 자신의 의지보다는 어떤 큰 힘에 의해 밀려서 살아온 것이라는 생각이 많이 든다. 너에게 예정된 길 중 중국에서 살아보는 길에 들어선 것이라고 생각해 본다. 누구나 앞날을 알 수 없기에 스..

건축을 전공하고 있는 자식 자랑

건축을 전공하고 있는 자식 자랑 자식자랑은 푼수나 하는 짓이라고들 합니다. 자식자랑과 아내자랑이 합쳐지면 온 푼수, 한 쪽만 하면 반 푼수라지요. 그래도 반 푼수가 되는 걸 각오하고 자식자랑 좀 해야겠습니다. 건축학과 3학년에 재학 중인 제 아이가 올해 부산국제건축문화제에서 주관하는 디자인 워크샾에서 2등으로 입상했습니다. 한국 중국 일본에서 온 학생들로 구성된 30개 팀이 경합하여 그 결과를 만들었으니 자랑할만하지 않습니까? 그렇지만 그동안 좋은 대학 못 갔다는 이유로 이렇게 저렇게 구박을 많이 받았었지요. 제 자신이 더 힘들었을 텐데 내 얼굴 깎였을까봐 그렇게 못난 짓을 했었나 봅니다. 다들 자식 키우면서 진정으로 자식을 위한 일을 얼마나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어쩌면 부모얼굴에 훈장 만드는 일을 자식..

오래된 집, 텃밭과 마당을 바라보며

오래된 집, 텃밭과 마당을 바라보며 지금까지 내가 살고 있는 집 이야기를 해 볼까 합니다. 돌아가신 아버님이 물려준 사십 년 묵은 이 집에서 고2부터 지금까지의 내 삶이 엮어져 왔습니다. 청춘이 지나 사십대 중반에 와 이제는 내 아이가 고3이 되어 있으니 한세대를 산 것이지요. 이 곳으로 이사 올 때 이 근방에서는 최신 유행의 가장 좋은 집이었는데 이제는 나이를 먹어 낡은 집이 되었습니다. 이 자리에서 시간이 사람을 키우고 나무도 키웠지만 집은 황폐하게 만들었나 봅니다. 옥상에 방수처리가 상해서 비가 새고 낡은 창문은 약한 바람에도 덜컹거립니다. 몇 번 칠한 페인트도 오래되어 외관은 흉하기 짝이 없습니다. 마루바닥도 상해서 내려앉고 비 새는 벽에는 곰팡이도 보입니다. 집 밖에 있는 화장실, 세면장도 이제..

발코니 있는 아파트라야 吉宅길택

모 신문사에 기고원고로 썼는데 원고가 밀려있다해서 게재를 하지 못했습니다. 써 놓은 글이라 블로그에 올려 봅니다. 먼저 올린 글의 후편이라고 할까요? 이제 시행을 눈앞에 두고 있는데 참 안타까운 일입니다. 발코니 있는 아파트라야 吉宅 김 정 관 인공위성에서 지구를 내려다보면 사람이 만든 구조물 중에서 만리장성이 먼저 보인다고 했던가? 우리나라를 보면 어떨까? 아마 아파트만 보일지도 모른다. 시골에서 도시까지 거의 아파트가 원시시대의 공룡처럼 전 국토를 점령하고 있다. 노태우 정권 때 200만 호 공급이라는 물량 위주로 지어내다가 이제는 질적으로도 많이 나아져 괜찮은 주거 공간으로 정착이 되어가는 듯하다. 하지만 정말 아파트가 제대로 사람이 살만한 집일까라는 고민은 별도의 화두로 두어야 할 것 같다. 특히..

발코니 예찬-아파트 처마 밑에 앉아

‘후드득’ 빗방울 소리가 난간을 치더니 곧 비가 쏟아진다. 앞산에 비구름이 낮게 깔려 있더니 비가 내린다. 겨울비는 잎이 마른나무도 꼭 필요하지만 도시에 사는 우리에게도 메마른 정서를 적시는데 큰 도움이 된다. 집 아래 마당의 나무에 닿는 빗소리가 꽤 크게 들려온다. 거실로 드는 바람에 비가 묻어 겨울 냄새가 밴 찬 기운이 몸에 전해온다. 컴퓨터를 켜고 블로그에 저장해 놓은 비 노래 모음을 틀어 쓸쓸한 겨울 분위기에 젖어본다. 아침마다 눈을 뜨면 처음 일이 뒷방 창문을 열고 뒷산 숲에서 불어오는 산바람을 집으로 들여놓는 것이다. 창문을 열면 바람에 산새가 지저귀는 소리도 덤으로 묻어온다. 산에 바로 면해 있는 언덕 위의 집이라 지하철에서 걸어서 15분 거리, 급경사 길을 가쁜 숨을 몰아쉬며 올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