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이야기/말 없는 말

秋情雜談

무설자 2006. 9. 6. 1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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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 밖 벚나무가 푸른 잎 속에 숨어 몇 잎이 색깔을 바꾸더니 며칠 새 그 잎의 가지는 온통 붉은 잎으로 변해 있습니다. 그렇게 문득 가을이 내 앞에 와 서있습니다. '모든 것은 변한다'는 무상의 이치를 실감하는 계절입니다.

 

'모든 것은 변하노니 쉼 없이 정진하라'는 부처님의 유훈을 느끼며 공부할 수 있는 때 입니다. ‘나는 어떤 존재인가? 무엇을 얻기 위해 이렇게 싸우듯 살고 있는가?’라는 명제를 떠 올려 봅니다. 해마다 가을 막바지에 그 푸르게 가득했던 나뭇잎을 마침내 한 잎도 남김없이 털어버리고 빈 가지만 남은 나무를 봅니다. 그걸 보면서도 무상의 이치를 삶에 올바르게 담지 못하고 쉰을 바라보는 나이를 먹었습니다.

 

이 가을, 내 나이의 사람들은 무엇을 생각할까요? 이제 어렴풋해졌을 지난 사랑을 아직도 떠 올릴까요? 봄은 새로운 만남을 기다리지만 가을은 헤어졌던 인연을 떠 올리게 합니다. 나이는 몸으로 먹었지만 아직도 마음은 청춘이라 애틋하게 헤어졌던 사랑을 기억해내며 가을이라 낭만을 즐길지도 모릅니다.


 

남녀 간의 사랑은 세속이나 출가자에게나 공부하는 이에게는 장애가 된다하여 경계합니다. 그렇지만 아직 부처의 그림자도 보지 못한 중생에게는 때로는 애틋한 사랑의 기억이 힘든 공부를 이겨내는 활력소가 되기도 합니다. 화엄경 입법계품에서 선재동자는 사막을 건너가며 죽을 고비를 애욕의 에너지로 이겨내는 장면도 있습니다.

 

한편으로는 부처가 되고나면 참 심심할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무엇이든 집착해서 빠지면 문제가 되지만 선을 지켜가며 중생으로 사는 것도 괜찮은 것이라 생각도 해 봅니다. 부처님을 닮아야 하는 스님들은 누릴 수 없는 세속의 재미가 유발의 재가신자가 머리를 깎지 못하는 큰 이유입니다.

 

법정 스님의 수필집에 보면 스님께서 갓 출가시절에 호롱불을 켜고 주홍글씨라는 소설을 숨어 읽었답니다. 스승이신 효봉 스님이 그것을 아시고는 아주 엄하게 호통을 치셨답니다. 출가자가 쓰는 모든 물건은 신도들이 피땀 흘려 만들어 올린 공양물인데 그것을 출가자가 본분을 지키는데 쓰지 않았다는 것이지요.

 

출가자는 음식을 입에 넣을 때 뜨거운 쇳물을 먹듯 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만약 제대로 공부를 하지 않으며 가벼이 시물施物을 쓴다면 내생에는 손발이 없는 과보를 받을 것이라는 무서운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 얼마나 살벌한 분위기입니까?

 

그래서 종교에 심취한 분들은 재미가 없나 봅니다. 어떤 종교를 막론하고 독실하다는 종교인들은 왠지 좀 썰렁하고 딱딱한 분위기를 가지고 있지요. 그래서 저도 사람사이에서 인기가 없었나 봅니다. 어떤 자리에서도 제가 말을 꺼내면 그만 분위기가 가라앉지요. 그러다보니 오히려 나이가 들어가면서 세속 일에 한눈을 팔게 됩니다. 일찍 불교에 심취해서 머리만 깎으면 중이라는 소리를 많이 들을 만큼 재미없이 살아다보니 이제는 재미를 누리며 살고 싶어졌답니다.

 

그렇다고 부처가 되는 공부는 정말 재미가 없는 것일까요? 꼭 그렇지는 않을 것입니다. 깨달음을 얻은 이는 세상을 바꾸려하기 보다 자신을 바꿨기 때문에 가능했기에 일상사를 받아들입니다. 그러기에 오히려 원만하고 여유가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고 보면 다른 이에게 딱딱하고 어려운 이는 아직 깨달음에 이르지 못한 사람이 아닐까요? 깨달음의 수준은 세상의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보고 받아들이는 정도의 차이일 것입니다.


 

가을이라 떠올리는 무상의 이치도 일어날 때 이미 흩어짐을 안고 있었음을 보이게 할 따름이지요. 봄에 피는 꽃에는 열매의 속성이 담겨있고 여름의 푸른 잎에는 화려한 가을 색이 숨어 있는 것이지요. 사랑 또한 시작부터 이별을 담고 있고, 달콤한 언약에는 어차피 다 지키지 못할 말의 공허함이 숨겨져 있는 것이었지요. 그래서 사랑하기에 헤어진다는 말로 끝맺음하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가을 나무에 매달린 열매는 봄에 피었던 꽃 중에서 십분의 일이나 될까요?

 

연인들이 사랑하면서 수많은 얘기를 내뱉습니다. 그 얘기 중에는 그냥 떨어져 버리는 많은 꽃처럼 귀를 즐겁게 하고 흩어질 것도 있는 것도 있고 열매처럼 사랑으로 익을 수 있는 것도 있지요. 열매를 보는 이와는 사랑의 결실을 가지게 되지만 떨어지는 꽃을 원망하는 이와는 헤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달콤했던 것은 떨어져 버린 꽃 같은 얘기들입니다. 그래서 그 기억은 아름답게 남아있지요.

 

꽃이 흐드러졌던 봄 풍경처럼 아름다웠던 그 시절을 잊지 못하는 것이 가을을 보내는 기억입니다. 사십대 후반의 우리 나이에 꽃다운 지난 날을 돌아보는 것 또한 가을에 어울리는 나이이기에 그럴지도 모릅니다. 이 글을 쓰는 이유도 이 나이와 어울리는 때인 가을을 그냥 보낼 수 없기 때문이라고 억지로 둘러대 봅니다. 그래도 이런 상념이 이 팍팍한 시절을 이겨내는 약이 될지도 모르지요.

 

 

 

절 앞 큰 벚나무에도 가을이 물들기 시작합니다. 가을은 오는 기척도 없이 왔다가 간다는 기별도 없이 가 버린답니다. 오는 가을이 아쉽다고 잡아두려 애쓰지 않겠습니다. 가을은 앉아서 머무를 손님이 아니라 선 채로 물 한 모금 마시고 가는 바쁜 손님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오는 가을이 가기도 전에 아리도록 아쉽기에 지난 추억을 시리도록 그리워하며 가을을 누리는 것이 중생의 어리석은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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