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어학연수 길에 나선 딸에게
내가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은 비행기 안이겠구나. 잠깐 여행이 아니라 일년을 살기 위해 중국으로 가고 있는 네 머리 속에는 온갖 생각이 가득할 것이다. 집을 떠나고 학교를 떠나고 네가 만나던 사람을 떠나는 자리이다.
여자 나이 스물둘이면 이제 스스로 서기 위한 마음가짐이 확고해야 하겠지만 아직도 어떻게 자신의 미래를 만들어가야 할지 불안하기만 할 것이다. 인생은 예정된 길을 간다고 믿는 것이 아빠의 요즘 생각이다. 그 예정된 길이라는 것은 누구도 알지 못한다. 다만 지나온 길을 돌아보니 자신의 의지보다는 어떤 큰 힘에 의해 밀려서 살아온 것이라는 생각이 많이 든다.
너에게 예정된 길 중 중국에서 살아보는 길에 들어선 것이라고 생각해 본다. 누구나 앞날을 알 수 없기에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은 가능한 최선을 다하는 길뿐이다. 네가 부산국제건축문화제 워크샾에 참여한 것도 입상을 목표로 한 것이 아니지만 2등이라는 결과를 성취한 것은 열심히 했기 때문이다. 상을 타기 위한 욕심의 결과가 아니라 열심히 한 대가라는 것이지.
인생의 결실 또한 욕심대로 되는 것이 아니라 열심히 하고난 뒤의 보상을 받는 것이다. 너의 지난 생활을 돌이켜 보아라. 승부욕이 없는 네게 주어진 이런저런 결과는 대부분 열심히 한 뒤에 나온 성과 같구나. 너는 스스로 열심히 하기보다는 그렇게 해야 하는 환경이 닥치면 밀려서 하는 경향은 좀 고쳐야 할 것 같다.
이 부분에서 아빠는 조금 염려한단다. 학기 중에 주어진 과제나 시험에 쫓겨서 허겁지겁하다보니 결과는 기대치에 미치지 않을 수도 있을 것이다. 스스로 열심히 하는 게 우선이 되고 거기에 재능을 더해야만 바라는 결과에 이를 수 있겠지. 재능은 A+지만 스스로 하는 자발적인 의지가 B가 된다면 B+의 결과로 만족해야겠지. 너에게는 A+의 재능이 있으니 열심히 하기만 하면 된다는 걸 믿었으면 좋겠다.
사랑하는 딸아,
결혼이라는 명제도 서른이 가까워지면 너의 머리를 복잡하게 만들 것이다. 대부분 배우자를 찾을 때 자신을 도와줄 사람을 원하겠지만 배우자가 될 사람도 그 부분에서는 마찬가지이다. 서로 도울 수 있는 사이라야 올바른 배우자가 될 것이다. 하지만 아직 우리 사회는 아무래도 여자가 남자를 돕는 쪽으로 인식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 말은 네 생각처럼 일방적으로 되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그래서 너의 능력을 갖추어서 시댁도 돕고 친정도 위할 수 있는 때에 이르러 배우자를 만나야 한다. 하지만 나이를 먹어갈수록 그런 사람을 찾기는 너무 선택의 여지가 좁다는 것이 문제이다.
그렇더라도 능력을 갖추지 않은 상태에서 남의 아내라는 자리만으로 결혼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아빠의 지론이다. 그래서 남들보다 열심히 하고 가능한 빨리 네 자리를 잡아야 하는 것이다. 그런 자리는 남들과 경쟁에서 앞서야 하는 노력이 필요해진다.
이런 의미에서 요즘 네가 판단하는 미래는 참 대견하기 이를 데가 없다. 일년 동안 HSK 7급 이상을 취득하여 중국어에 대한 부담을 없애고 이후에는 영어공부를 통해 너의 학교 자매대학으로 대학원 과정을 도전해 보겠다는 생각은 대단한 판단이다. 어쩌면 고등학교를 외고로 간 네 생각을 실현하는 남다른 과정이기도 한다. 외고를 다니면서 공부를 제대로 한 것은 아니지만.... ^^
건축학과에서 이런 노력을 하는 학생들이 얼마나 있을까? 네 판단과 노력에 박수를 보낸다. 하지만 그 목표를 성취하기 위해서는 많은 것을 포기해야 할 것이다. 그 포기 중에는 인생을 즐기는 것도 포함이 될 것이다.
연애는 달콤하지만 결혼을 쓴 것이다. 달콤하기에 연애에 빠지다 보면 결혼이 그 길에 덫으로 존재한다. 아빠의 여자 후배들을 보면 충분한 능력을 갖춘 친구들이 결혼이라는 덫에 빠져 건축을 포기한 예가 많다. 그 친구들이 결혼을 조금 더 미루었다면 아마 결혼과 일이라는 두 가지를 병행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많단다.
그렇다고 연애까지 포기할 수는 없다. 그렇기에 연애를 지혜롭게 해야 한다. 남자에게 결혼은 후원자를 얻는 것이지만 여자는 극복하기 어려운 짐을 지게 되는 것이다. 그렇지만 능력을 갖춘 뒤에 하는 결혼은 이러한 위험을 많이 줄일 수 있다.
이런 얘기를 많은 여자후배들에게 해주었다. 그렇지만 다들 결혼과 일을 동시에 할 수 있다고 결혼을 하였다가 일을 포기하고는 늦은 후회를 하는 것을 많이 보았다. 여자에게 일이란 남자에 비해 몇 배의 경쟁력을 가져야 원하는 결과를 얻을 수 있음을 깊이 새기기 바란다.
연애를 지혜롭게 하기 위해서는 감정을 잘 통제해야 한다. 남자는 여자를 즐기는 대상으로 여기기 쉽고 여자는 남자를 소유하듯 집착하기 쉽다. 즐기는 대상이기에 책임감이 결여되기 싑고 소유하는 대상으로 여긴다면 너무 집착하게 된다는 것이다. 여자에게 남자는 의지하는 대상이지만 남자는 여자를 자랑감으로 여기는 것 같다. 남자는 사귀는 여자가 자랑할만한 가치가 떨어지면 물건을 버리듯이 소홀히 여기게 된다.
따라서 너에게 소중한 남자와 오래토록 연애를 하려면 그에게 너의 자랑스러운 부분을 천천히 보여주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남자를 가벼이 대하면 안 된다. 항상 너의 주변에 있는 남자들을 소중하게 대해야 하며 필요 이상 가까이 하는 것을 조심해야 된다. 다가오면 뒷걸음질치고 멀어지면 다가가는 지혜로운 관계를 잘 유지해야 할 것이다.
자랑스러운 딸아,
네가 성공한 모습을 그려본다. 성공한 사람들의 이야기 속에는 공통점이 있다. 목표가 분명하고 그것을 성취하려는 의지가 굳건하며 그 목표에 다가가기 위한 자신만의 단계적인 방법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들은 우연을 믿지 않고 노력한 만큼의 결과를 가져간다는 것이다. 그들에게는 만족한 마지막 결과는 없으며 항상 새로운 목표를 설정하고 끊임없이 그 목표를 위해 자신을 바꾸어 간다는 것이다.
너의 목표는 무엇일까? 그 목표에 대한 확신은 얼마나 확고한 것일까?
일단 건축을 통해 너의 미래를 열어간다는 것이 큰 목표일 것이다. 그리고 미국에서 대학원 과정을 마치고 실무를 경험한다는 것이다. 그 목표를 믿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일단 일년 동안 중국어를 7급 이상 취득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귀국해서 영어공부와 건축공부에 매진해서 너의 학교 자매대학에 가야 할 것이다. 미래에 대한 디테일한 진로는 일년 뒤에 제대로 정리해 보기로 하자
그러기 위해서는 성공한 사람들의 습관을 너의 습관으로 옮길 필요가 있다. 나를 닮은 너의 부족함은 스스로 문제점을 해결하고 목표를 향해 매진하는 적극성이 결여되어 있다는 것이다. 주어진 환경에서 해야 하는 일에 빠지는데 그치지 말고 스스로 목표를 정하고 꼭 결과를 만드는데 최선을 다해주기 바란다.
이제는 아빠의 도움이 너의 미래에 큰 보탬이 되지 않을 것임을 느낀다. 하지만 각론적인 부분에서는 아닐지 몰라도 원론적인 부분에서는 아빠보다 나은 스승을 만나기는 어려울 것이다. 인생은 큰 흐름 속에서 배를 타고 가는 것이다. 네가 가진 엔진의 성능에 따라서 네 의지대로 갈수도 있지만 성능이 떨어질 때는 물의 흐름을 잘 타는 지혜를 가져야 그 흐름에 휩쓸리지 않고 나아갈 수 있다.
아빠는 지금 엄청난 소용돌이 안에서 허우적대고 있다. 이 소용돌이를 잘 빠져나오지 못하면 시대적인 흐름을 놓치고 만다. 그 방법을 아빠가 살아온 인생을 통해 찾아서 시도를 하고 있지만 결과를 만들기에는 너무 힘든 과정을 거치고 있다. 그 중에서 가장 큰 핵심은 사람의 관리이다. 너에게 아빠도 그런 면에서 필요한 사람이기를 바란다.
지혜로운 딸아,
인생은 시작과 끝이 같다. 옛말로 보면 공수래 공수거 空手來 空手去라는 말이다.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간다는 것이지. 너무 자신을 희생해가면서 세속적인 결과만 쫓지 말라는 것이다. 50대가 되면 평생 해 온 일을 정리하고 자연인으로 돌아가 나머지 여생동안 할 수 있는 일을 찾는 인생이 가장 좋을 것이라는 생각이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철학이 있어야 한다. 즉 인생의 컨셉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것은 필요한 때에 철학책을 본다고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지금부터 삶이 무엇인지, 왜 내가 이 일을 하고 있는지에 대해 생각을 해가면서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아빠는 그 길을 불교에서 찾았다. 어려운 환경에서, 엄한 부모님 밑에서, 할아버지의 병환과 죽음, 동생들의 뒤치다꺼리, 힘든 세상에서 직업의 성취 등을 불교가 아니었으면 헤쳐 나가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 때마다 불교는 내게 가야할 길을 제시해 주었다.
너도 살아가면서 어려움에 봉착할 때 불교의 가르침이 그 방법을 제시하는 답이었으면 좋겠다. 건축에 있어서도 그 쪽에서 큰 답이 될 수 있음을 확신한다. 지금부터 조금씩 공부를 해주었으면 한다. 점점 네 스스로 답을 내려야 경우가 많을 것이다. 그 답은 남에게 들을 수 없는 것이 대부분이 될 것이기에 부처님이 그 스승이 되기를 바라는 것이다.
그래야만 평생을 통해 아빠와 대화를 할 수 있을 것이다. 따로 답이 없는 인생이기에 문제 속에 답을 찾아야 한다고 아빠가 한 말을 기억하는지 모르겠다. 문제는 계속 나오는데 그 답을 다른데서 찾으려 하면 풀리지 않고 헤매기만 할 것이다. 그 비결을 부처님의 가르침에서 찾아야 한다.
이 이야기는 앞의 그 어떤 것보다 중요하다. 꼭 명심해서 지금부터 관심을 가져주길 바란다. 이것을 놓쳐버린다면 다른 것을 성취하더라도 곧 무너져 내리고 말 것이다. 돈도 명예도 사람도 때가 되면 나를 떠나버린다. 떠나지 않는 것은 자신이며 그 자신은 삶에 대한 올바른 길을 보는 것이다.
아빠에게 너는 자랑스러운 딸이기 보다는 지혜롭고 현명한 딸이 되기를 바란다. 나도 겉만 번지러한 사람보다 속이 여문 사람이 되기 위해 애를 쓰며 살아왔다. 앞으로도 그렇게 살아가기 위해 애를 쓸 것이다.
이제 다시 사랑하는 딸 지인아,
엄마 아빠는 너를 믿는다.
실패는 해도 되지만 작은 실수는 크게 반성해야 한다. 실패란 노력 뒤에 나오는 인정해야 하는 결과이지만 실수란 나태해서 나타나는 것이기에 스스로 용서해서는 안 된다. 실패는 다시 시작하기 위한 좋은 체험이지만 실수를 여러 번 반복하면 아무런 결과를 기대할 수 없다.
좀 더 부지런해지고 좀 더 현명해지며 좀 더 크게 볼 수 있기를 바란다. 지금 나이에는 너에게 모든 남자들이 관심을 가지지만 나이를 먹어갈수록 세상은 네게 점점 냉정해질 것임을 알아야 한다. 지금 준비하는 이런 노력이 네 꿈을 이루는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변명하는 사람이 되기보다 반성하는 사람이 되고 다른 이의 결과만 보기보다는 숨어 있는 그 결과에 다다른 과정을 볼 줄 알기 바란다.
이 글을 쓰는 지금도 네가 보고 싶은데 일년이라는 기간을 어떻게 참을 수 있을까? 물론 중간에 꼭 몇 번을 네가 있는 곳에 가보겠지만 문득 보고 싶으면 어쩌지? 그래도 내 딸이 열심히 공부하고 있다는 것을 그리면서 참아야겠지,
너야 적응하는데 선수니까 금방 친구들과 어울리고 새로 만들어진 환경을 즐기면서 잘 살 것이라 믿는다. 어떻든 자주 메일 쓰고 전화도 하고 새로운 연락방법을 만들어서 자주 대화를 하도록 하자.
아빠는 아마 일기 쓰듯 네게 메일을 보낼 것 같다. 쑥쑥 크는 지인이를 느낄 수 있겠지. 네가 성장하는 모습을 보는 것이 엄마아빠의 낙이란다. 현명하고 당당한 모습으로 어른이 되는 것을 바라보는 즐거움으로 살게 해주렴.
언제든 이제 엄마 아빠가 오면 가이드 해줄 수 있다는 연락만 하면 금방 달려갈게. 그 시간이 빨리 올 수 있도록 열심히 하길 바란다. 우리 딸을 믿고 자랑스러워하는 건 아마 엄마아빠가 어떤 부모보다 최고라는 것을 잘 알지?
항상 건강 유념하고 음식 잘 챙겨먹고 몸 관리 잘 하도록 해라. 몸만 건강하면 다른 건 아무 문제가 없으니까. 일년이라는 시간이 잘 보내면 금방이지만 힘들면 너무 긴 시간이 될 것이라는 걸 잘 알아야겠지.
사랑한다. 장한 우리 딸. 이만 쓴다.
세상 그 누구보다 너를 사랑하는 엄마 아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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