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이야기/풀어 쓰는 건축이야기

일하는 것과 그 대가를 받는 법

무설자 2010. 5. 25. 1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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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하는 것과 그 대가를 받는 법 

스님의 계산법

 

어떤 스님이 있었다. 이 스님은 가는 절마다 주변의 황무지를 개간하여 논이나 밭으로 만들었다. 그 스님은 잠시도 쉬지 않고 일을 하는 분이었지만 사실은 절의 어른이었다. 그 스님이 절 주변의 땅을 소일 삼아 개간하여 논이나 밭을 만들어지고 나면 그 논밭은 인연이 닿는 사람에게 싼 값으로 건네 졌다. 

 

부산의 어느 절에 있을 때도 그 스님은 여름 내내 비지땀을 흘려가며 황무지를 밭으로 만들었다. 밭이 만들어지자마자 절 아랫마을의 어떤 사람이 찾아와서 자신에게 팔라고 했다. 그런데 그 사람은 스님이 계산에 어둡다는 것을 알고는 아주 싼 가격을 제시했다. 스님은 그와 몇 마디 말을 주고받고는 그 논밭을 그 사람이 제시한 가격으로 넘겨주었다. 

 

그 스님은 절의 재무스님을 불러 밭을 팔았다고 하면서 돈을 건넸습니다. 재무스님은 주변 시세에 비해서 너무 싼 가격이었기에 그 돈을 받으면서 투덜거렸다.  그러자 스님은 재무스님에게 이렇게 물었다.

 

 “재무스님, 자네의 계산 방식은 나와는 다른 것 같네. 그 논밭이 원래는 농사를 짓지 못하는 쓸모없는 땅이었지 않았던가?”

 “예 스님”

 “그런데 이제는  내가 밭으로 만들었지?”

 “예”

 “그리고 그 땅이 그 사람에게 건네 졌지만 여전히 밭으로 남아있지?”

 “예”

 “그리고 없던 돈이 이렇게 자네 손에 건네 져서 여기에 있지?”

 “예...”

 “원래 없던 밭이 생겼고 또 돈도 이렇게 생겼는 어째서 손해를 보았다고 생각하는가? 누가 그 밭에 농사를 짓던지 간에 밭은 거기에 있고  또 돈도 생겼으니 얼마나 좋은가? 계산은 이렇게 하는 거라네”

 

이 스님의 계산이 세상의 기준에 맞는 것인지 따져본다면 분명히 손해를 본 것이리라. 하지만 스님은 황무지를 논밭으로 만들어서 필요한 사람에게 전해주는 것으로 만족하는 것에서 이미 당신의 계산을 끝냈고 밭을 전달하는 과정에서 생긴 돈을 잉여금으로 보았다는 얘기다. 

 

 건축사가 일하는 대가

 

건축사인 제 입장에서도 건축 설계 계약을 하면서 정해지는 금액에서 이윤을 따져본다. 일에 따라서 원가를 생각하지 않고 심혈을 기울여 작품이 될 수 있는 집은 금전적인 이윤이 아니라 창작에 따른 결과물로서의 만족함을 얻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 않고 일로만 주어지는 작업의 설계비는 무조건 이익이 남는 것이 결과로 되어야만 작업을 할 수가 있다. 

 

작품이 되는 일과 단순히 노동력의 대가는 다르다는 논리를 세워보지만 스님의 논리로 보면 참 어리석은 계산법일 수도 있다. 그 스님의 계산 방식을 온전히 받아들일 수만은 없지만 의외로 그렇게 사는 분도 더러 있어서 더 힘든 것이 우리 건축사의 업무대가의 현실이다. 

건축사의 일이 노동의 대가가 아니라
작품을 만든다는 '마음의 일'로 뼈를 깎는 창작의 결과라는 걸 아는 이가 얼마나 될까?

 

집을 짓기 위해서 설계를 의뢰하는 분들은 설계라는 일이 대부분 결과물인 도면 몇 장이라는 단순 노동의 대가를 받기 위한 것으로 아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그렇지만 도면 작업만이 아니라 결과를 만들기 위해 고심하며 집이 지어지고 난 이후에 평가를 받는 가치에 대한 계산은 분명히 다를 것이다. 

 

노동의 대가가 아니라 작품을 만든다는 '마음의 일'로 하는 뼈를 깎는 창작으로 아는 이가 얼마나 될까? 그 몸과 마음을 바쳐서 하는 작업을 하면서 시간이 지나 언젠가는 그 작품을 알아주는 이를 통해 높은 부가가치를 만들 수도 있을 것이라 믿고 힘든 시간을 견디며 일을 하는 분들이 아직 많은 것 같다.

 

 건축사가 기대하는 대가에 대한 솔직한 심정

 

오래전이지만 이상건축이라는 건축전문지에서 개최한 포럼 자리에서 재미 한국인 건축사의 강연 자리에서  있었던 일이다. 그 건축사는 그의 작품과 건축에 대한 생각을 발표하고 난 뒤에 청중과의 대화의 시간을 가졌다. 그 자리에서 한 청중이 그에게 이런 질문을 했다.

 

 “당신은 스스로 유명하다고 생각합니까?”

 

그 건축사는 이미 세계적으로 상당한 지명도를 가지고 있는 분이었다. 하지만 이 질문에 대해서 그가 만약 자신이 유명하다고 얘기한다면 ‘자신을 스스로 유명하다고 하다니 참 건방진 친구구먼’하는 얘기를 들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가 유명하다고 생각지 않다고 얘기한다면 ‘그럼 왜 이 자리에 섰나요?' 하는 질투가 섞인 얘기를 들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는 이렇게 우문현답처럼 얘기했다. 

 건축사가 유명해지면
그만큼 좋은 설계를 할 수 있는 기회와 여건을 더 많이 얻을 수 있기 때문

필자 설계-BJFEZ 건축상 최우수상을 수상한 부산 명지동 BALCONY HOUSE

 “저는 그렇게 대단한 이름을 얻고 있다고 생각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유명해지고 싶습니다. 제가 지명도를 얻은 만큼 좋은 설계를 할 수 있는 기회와 여건을 더 많이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시중에서 이야기되는 정도의 설계비를 받아서는 결코 '작품'을 만들 수 있는 작업여건을 가질 수 없다. 평당 몇만 원이라는 설계비에 대한 사회의 인식을 바꿔 놓을 수 있는 것은 건축물이 단순 하드웨어가 아닌 스프트웨어가 담긴 문화적인 결과물이라는 인식이 필요하다. 건축사의 작업 결과, 즉 건축물이 문화적인 관점에서 창작의 소산으로 사회에 인식되어야만 건축사의 일이 온전한 평가를 받을 수 있다. 평당 몇만 원을 받으면서 원가를 생각하고 이윤을 남기는 작업 결과물을 자꾸 내놓는다면 건축사라는 직업은 우리 사회에서 설자리를 잃게 될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건축사는

 

행인지 불행인지 이 어려운 현실에서도 좋은 집들이 많이 세워지고 있다. 어쩌면 설계비를 평당 몇십만 원을 들이더라도 저런 집을 지어야겠다는 생각을 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 좋은 작품으로서의 집이 자꾸 더 많이 나와야  할 것이다. 그런 집이 매체를 통해 세상에 널리 알려져야 싸구려 집이 우리 도시를 얼마나 황폐하게 한다는 것을 알게 되지 않을까 싶다. 

 

작품으로서의 집을 만들어내는 건축사가 얼마를 주더라도 군말하지 않고 제 일을 잘하는 사람이라는 소리를 들어서 되겠는가? 백 년은 버텨내야 할 건축물을 평당 몇만 원을 받고 원가만큼 설계를 하다니 기가 막힐 일이 아닌가? 건축사가 받아야 하는 설계비는 작업을 해야 할 시간에 대한 비용이다. 설계비를 제 값을 매기자는 건 매일이다시피 밤을 새우는 노력을 다 할 수 있는 그런 여건을 확보하자는 것이다. 

백 년은 버텨야 할 건축물을 평당 몇만 원을 받고
원가만큼 설계를 하는 건 기가 막힐 일

 

아직 건축사는 그 노력만큼 우리 사회의 지명도를 얻지 못하고 있다. 내가 활동하는 부산에서도 제대로 된 도시환경을 만들기 위해 부산시에서 '부산 건축상'이라는 시상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해마다 그 시상제도에서 상을 받아도 지역 일간지에 제대로 게재되지 않는 현실을 본다. 좋은 도시 환경을 만드는 일등공신인 건축사의 노력이 그만큼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게 아닌가? 

 

도시의 경쟁력은 건축물

 

건축사가 겪고 있는 어처구니없는 현실은 누구의 잘못으로 일어나는 것일까? 아직 사람이 살만한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는 공통된 인식이 그만큼 부족하기 때문일 터이다. 도시의 아름다움은 우선 좋은 건축물이 많아야 하며 그 근간을 바탕으로 도시의 인프라를 강화시켜나가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도시의 경쟁력은 바로 건축물이기 때문이다.

도시의 경쟁력 확보는 오로지 좋은 건축물이라고 할 수 있는데

 

관광도시 부산, 영화도시 부산, 컨벤션 도시 부산으로 슬로건을 내세우면서도 정작 그 도시의 경쟁력을 만들어내는 건축의 실질적인 부분에 관심이 모자란다고 본다. 행정은 계획을 세워 집행하고 언론은 그 결과를 잘 홍보해야 하는데 무엇으로 그 도시적 경쟁력을 확보하려고 하는지 알 수 없다. 

 

그렇지만 좋은 건축물을 만들고자 하는 노력은 계속되어야 한다. 이 어려운 여건에서도 좋은 집들이 계속 지어질 수 있다는 게 의아한 일이다. 산성화 된 농토에 유기농 퇴비를 땅에 넣으며 제대로 된 농사를 짓겠다는 농부의 마음처럼 누군가의 의지가 이렇게 표현되고 있는 것이다. 

 

건축사에게 아직 좋은 설계를 할 수 있는 여건은 확보되지 않고 있지만 좋은 건축물들이 많이 세워지고 있다. 좋은 건축물은 미래의 건축주들이 제대로 된 설계비를 지불할 수 있는 좋은 근거가 될 것이다. 아름다운 도시, 사람이 살만한 도시를 만드는데 큰일을 하는 좋은 건축사가 자꾸 줄어들면 아무리 말로 '아름다운 부산'이라고 떠들어도 아무런 소용이 없을 것이다. 행정이, 언론이 좋은 집을 설계할 수 있도록 건축사를 도와줘야 할 것이다. 

 

형식적인 賞보다 실질적인 賞

 

시민이 알 수 있는 좋은 건축사를 행정적으로 찾아서 시상하면 언론은 그 건축사를 일간지에 대서특필해야 할 것이다. 구청, 시청에서 좋은 건축물을 선정하는 노력을 각종 시상제도를 통해서 매년 시행하고 있지만 정작 그 결과를 시민들이 모른다면 무슨 소용이 있을까? 

 

제대로 된 집을 짓고 싶어 하는 시민들이 좋은 건축사를 찾을 방법을 몰라 평당 몇만 원짜리 설계를 할 수밖에 없을지도 모른다. 대가에 연연하지 않고 심혈을 기울여 작업한 좋은 집들이 지어지고 있다. 이제 작업을 할 기회만큼 일할 수 있는 여건이 되는 대가를 건축사에게 주어져야 하겠다. 대가를 지불받지 못하는 설계를  계속해야 한다면 출혈을 견디지 못해 그 노력이 중단되고 말 것이다. 

 

땅을 개간하여 대가를 따지지 않고 넘기는 스님처럼 일에 걸맞은 대가에 미치지 않는데도 일에 대한 사명감으로 최선을 다하는 많은 동료 건축사에게 경의를 표한다. 

 

 

무 설 자

 

무설자(김정관)는 건축사로서 도반건축사사무소를 운영하고 있으며,

집은 만들어서 팔고 사는 대상이 아니라 정성을 다해 지어서 살아야 한다는 마음으로 건축설계를 하고 있습니다.

어쩌다 수필가로 등단을 하여 건축과 차생활에 대한 소소한 생각을 글로 풀어쓰면서 세상과 나눕니다.

차는 우리의 삶에서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이만한 매개체가 없다는 마음으로 다반사로 차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집을 지으려고 준비하는 분들이나 이 글에서 궁금한 점을 함께 이야기를 나눌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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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화:051-626-626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