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이야기/나는 부처다

상생의 길

무설자 2006. 6. 6. 1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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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록이 이름다운 5월이지만 역사적으로는 피와 눈물이 얼룩진 달이다. 하지만 지금의 5월은 부처님 오신 날과 함께 어린이날, 어버이날, 스승의 날 등으로 은혜와 사랑을 나누는 달이라 역사의 슬픔을 치유하고 달랠 수 있어 좋은 것 같다.

 

지난 5월 31일 선거 결과를 바라보면서 많은 생각을 할 수 있었다. 현재의 정권을 얼마나 신뢰하고 있는가하는 국민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는 점이다. 어제와 오늘 관음사에서는 암 전문 의사를 모셔서 강의를 들었다. 암에 잘 걸리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차이는 원만한가 편협한가에 의해 결정되는 부분이 많다는 것이다.

 

미국 나사에서 우주로 보내는 승무원을 선발할 때 여러 가지 기준을 두고 선발한다고 한다. 그 중에서 인상이 깊은 것은 부모, 처부모, 아들 딸, 형제3-4명이 오랫동안 함께 살았느냐를 본다는 점이다. 가족적 결함이 없이 정상적인 코스를 밟아서 성장했느냐를 살핀다는 것이다.

 

한 가지 특수한 뛰어남으로 사회적 성취는 할 수 있지만 인간적인 원만함까지 갖추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 원만함이 지도자의 조건 중에서 가장 우선해야 할 것이다. 지금의 정권은 이 부분에서 큰 하자가 있음이 이번 선거결과를 통해 드러났고 지금의 어려움을 만드는 것이 아닌가 싶다.

 

물을 살펴보자. 둥근 그릇에는 둥근 모습으로, 사각 그릇에는 사각의 모습으로 담기는 유연함이 본성이다. 금강경에서 이르되 보살은 아상 인상 중생상 수자상을 갖지 않는 하였으니 내 세우기보다는 받아들이는 유연함의 중요성을 이르는 것이다.

 

겉모습보다는 안을 살펴야 한다. 속이 차 있으면 다른 이를 잘 살필 수 있다. 다른 이와 함께 살아가기 위해서는 경쟁하지 않아야 한다. 월드컵의 지나치게 보이는 우리의 응원 모습도 경쟁에서 이기면 그 뿐이라는 나만 생각하는 마음의 표현으로 보인다. 결국 경쟁이란 남을 누르고 내가 이기면 그 뿐이라는 편협함이다.

 

경쟁하지 않고 함께 사는 지혜를 얻도록 해야 한다. 참선, 염불, 간경 등의 수행도 살리는 방법을 배우기 위해서이다. 남을 죽이고 나만 살면 그 뿐인 방법을 찾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 반대인 남을 살려야 내가 존재할 수 있다는 보살의 길을 찾는 공부인 것이다.

 

한 수도원이 남의 눈에 잘 띄지 않게 사는 수녀님이 있었다. 조용한 성품에 말도 잘 하지 않고 남이 하지 않는 일만 가만히 하면서 살다가 운명했다. 살아서는 있는지도 몰랐는데 그 분이 없어지고 나니 수녀원이 제대로 돌아가지 않았다. 그의 삶의 전부가 남을 위한 것이었던 결과인 것이다.

어린 아이가 바닷가에서 거북이를 잡았다. 아이의 할아버지께 가져와 아이는 “어떻게 죽이는 것이 제일 재미있을까요?”하고 물었다. 할아버지는 “거북이는 깊은 물을 싫어하니 깊은 바다에 빠뜨려 버리자”고 손자에게 말했다. 손자에게는 거짓말을 했지만 거북이도 살리고 손자의 목적도 달성될 수 있는 상생의 길을 찾은 것이다.

 

문명사회라고 하는 첨단을 달리는 나라일수록 불행하다고 느끼며 후진국일수록 불행을 모르고 산다. 과거의 우리는 한 방을 여럿이 쓰고 살았다. 지금은 한 방을 한 사람이 쓴다. 옛날에는 멀리서 손님이 오면 묵고 가는 것이 예사였지만 지금은 찾아오는 손님이 별로 없다. 그러다 보니 함께 살아가고 남을 배려하는 마음을 익히지 못하고 산다.

 

우리는 인연화합의 존재이다. 정신적이든 물질적이든 인연이 화합되어 내가 존재한다는 것은 나와 상관없는 사람은 없다는 것이다. 결국 다른 이의 길을 열어준다는 것은 나의 길을 여는 것이나 다름없다는 것이다.

 

틱낫한 스님은 저서인 ‘상생’에서 대중에게 소외되는 사람의 유형을 이렇게 말하고 있다. 부처님의 10대 제자 목갈라나야 스님은 사량경에서 17가지를 일렀는데 그 중에 몇 가지를 살펴보자. 첫째 불건전한 욕망에 사로잡혀 그에 지배당하는 사람, 다음에는 자기 자신은 칭찬하되 남을 비방하는 사람, 화를 쉽게 내고 주체하지 못하는 사람, 화가 나서 원한을 품은 사람, 자신의 잘못을 지적해준 친구를 비난하는 사람, 자신의 잘못을 지적해 준 친구의 잘못을 지적하는 사람, 자신의 잘못을 지적해 준 친구에게 질문을 거듭하는 사람, 세련되지 못하고 악의를 가진 사람, 질투가 많고 탐욕스러운 사람 등이다.

 

벌이 꽃의 향기나 색에 집착하지 않고 꿀만을  취하듯 자신의 좋은 점을 숨기고 상대방의 좋은 점을 드러낼 때 많은 이들과 함께 하는 원만한 삶을 살 수 있다. 나에게 잘못을 지적해주는 사람은 다 나의 스승임을 알아야 한다. 자신을 칭찬하는 이를 가까이 하기보다는  나를 비난하는 이에게 머리를 숙일 줄 안다면 많은 스승을 가까이 둘 수 있는 것이다.

 

원만한 삶을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 어느 한 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사람, 전체를 위할 줄 아는 사람이 이끌어 가는 사회가 되어야 할 것이다. 지도자가 왕따를 당하는 지금의 이 사태가 빨리 수습이 되었으면 좋겠다. 함께 살아가는 길이 어떤 것인가를 생각해보는 좋은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참고도서 ; 틱낫한의 상생  미토스 (주)도서출판 청년사

 

정리 : 김 정 관


이 글은 2006년 6월 2일 관음청신사회 금요정기법회의 지현스님의 법문을 줄여서 정리한 것입니다. 정리한 이의 생각에 의해 첨삭이 되었으므로 법문의 전체적인 내용과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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