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이야기/나는 부처다

이루어지지않는 기도

무설자 2006. 2. 7. 1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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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신교의 큰 목사님이 쓴 이런 내용의 글을 기억해 봅니다.


사실 기도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여호와를 공경하고 그 분의 뜻대로 열심히 살면 부족함이 없는 삶을 살 수 있는데,

대부분의 사람들이 하는 기도는 자신의 욕심을 이루어 달라고 하는 내용이니 여호와의 뜻과는 위배된다.

따라서 자신의 욕심의 성취를 기원하는 기도는 이루어질 수가 없는 것이다


어떻습니까? 오늘 내가 올린 기도는 어떤 내용이었나요? 부처님이든 하느님이든 상관없습니다. 절대자에게 엎드려 내 욕심이 성취될 수 있도록 빌었습니까? 다른 이를 불편하게 하더라도, 다른 이의 재물을 내게 옮겨 달라고, 나만 편하면 된다는 기도는 아니었습니까?


기도라는 표현은 어쩌면 부처님 앞에서 올리는 것으로는 맞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대승경전에서는 이와 같은 내용이 부분적으로 나타납니다만 근본경전에서는 어불성설입니다. 자작자수自作自受, 제가 짓고 스스로 받는 부처님의 가르침에 나 말고 다른 이가 무엇을 해결해 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불가에서는 발원이라고 하지요. 원을 세우고 그 성취를 맹서하는 것입니다. 아미타 부처님이야말로 극락정토를 서원으로 이룩하신 분이시고, 지장보살께서는 스스로 지옥에 가서 모든 중생을 지옥에서 구제하고 난 뒤에 성불을 하겠다는 원력보살이시지요.


원을 세우는 행위, 발원은 반드시 스스로 뜻을 세워야 하며 그 뜻을 성취하기 위한 실천방법을 만들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성취를 위한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겠다는 맹서를 불보살께 하는 것이지요.


일반적으로 하는 기도와는 다를 것입니다. 실천을 전제로 하는 기도는 바로 발원입니다. 불보살은 해결사가 아니라 인도자이며 후원자가 되는 것이지요. 대신 이루어주는 분이 아니라 이루도록 지켜보고 도와주는 분이라고 해야겠습니다.


내 편이 아니면 벌을 내리고 그 앞에 잘 엎드리면 상을 내리는 그런 분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부처님이나 보살님, 심지어 신장이나 나한, 산신이나 용왕까지 해결사로 전면에 내세워 그 앞에 복전을 놓게 하는 많은 절이 있습니다. 그건 우상숭배에 가깝지요. 방편을 위해 모습을 만들어 신심을 증장시키는 것은 불교에 입문하는 시작일 수 있지만 그 다음을 제시하지 못하는 신행은 그야말로 기복신앙일 뿐이지요.


그건 부처님께서 가장 부정했던 것입니다. 신-범천의 대리인인 사제-바라문이 신자를 위하는 제사를 주관하고 신의 전권을 행사했던 당시 인도의 종교적인 행태를 배제한 ‘나’ 중심으로 돌리는 가르침으로 바꿨습니다.


그 가르침과 절대자 앞에 그냥 엎드려 해결책을 바라는 행위와 같은 기도는 분명 불법이 아닙니다. 따라서 발원이라는 적극적인 의지가 수반된 나를 중심으로 하는 불교적인 신행을 하도록 해야겠습니다. 


부처님 앞에서 올리는 발원, 그 자리를 위한 준비는 간절함과 굳셈이라고 표현하고 싶습니다. 꼭 이루어야 하는 서원을 준비하고 꼭 이루고야 말겠다는 다짐이 있으면 될 것입니다. 매일 정해진 때에 정갈한 몸가짐과 마음가짐으로 향을 사르고 108배나 경을 읽고 발원을 하면 됩니다.


꼭 이루어 주소서’가 아니라 ‘꼭 이루어 내겠습니다’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내가 정한 목표를 온 정성과 노력을 다하여 기필코 이루겠다는 서원을 다짐하는 자리입니다. 불보살은 그 증명이 되는 것입니다. 목표가 굳건한 것은 그렇게 되지 않으면 안 되는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그 이유가 분명할수록 그 성취를 위한 노력도 남다를 것입니다.


남에게 보이기 위한 형식보다는 스스로 온 힘을 다할 수 있는 의지가 중요하다 할 것입니다.

크신 서원을 꼭 이루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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