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이야기/말 없는 말

믿습니까?

무설자 2005. 9. 13. 1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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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에 구름이 가득합니다. 그 구름에 가려 해는 보이지 않습니다. 그래도 엷은 구름 사이로 하늘이 느껴지고 햇살이 구름을 비추고 있습니다. 하늘 그리고 구름, 숨겨진 해가 큰 그림을 그리고 있습니다.

 

먹구름이 하늘을 뒤덮어 해가 보이지 않아도, 그 먹구름이 비가 되어 내려도 해는 그보다 더 높이에 떠 있습니다. 밤이 되어 어둠이 세상을 덮어도 아침이면 해는 어김없이 동쪽에서 떠오릅니다.

 

가 있다는 것을 믿는 사람은 먹구름이 낮을 밤처럼 만들어도, 서녘으로 해가 떨어져 긴 밤이 오더라도 시간이 지나면 다시 해를 볼 수 있음을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그 믿음이 없다면 어둠의 공포를 이기기 어려울 것입니다.

 

해가 쨍쨍한 대낮에도 그 해를 보지 못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햇빛이 미치지 못하는 지하층에 있는 사람, 창문이 없는 골방에 머무는 사람은 바깥에 해가 있는 것과는 상관이 없습니다. 해를 피해 숨어버리면 스스로 어둠과 함께 하게 됩니다.


 

 

어떤 이에게 해는 희망이고, 또 어떤 이는 깨달음입니다. 행복이고 건강일 수도 있습니다. 희망, 깨달음, 행복, 건강을 찾는 사람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그것들이 있음을 믿어야 합니다.  하늘에 떠 있는 해를 구름이 가린다하여, 어둠의 시간이 그를 구속한다하여 해가 있음을 믿지 못하면 그의 삶은 늘 어둠입니다.

 

지금의 삶이 어둡다하여 그 어둠에 스스로 갇혀서 사는 이들이 있습니다. 시간만 지나면 해는 다시 광명의 세상을 만드는데 그 시간을 기다리지 못하고 영원한 어둠 속으로 들어가 버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밝은 세상을 만나는데 필요한 시간은 기다려야 합니다. 아무리 힘들어도 구름을 밀어내고 해를 볼 수 없고 밤 시간을 서둘러 당겨서 아침을 맞을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 시간이 다 같을 수는 없습니다.

 

어둔 밤이 갑자기 아침으로 바뀌지 않습니다. 그 사이에는 밤도 아니고 아침도 아닌 새벽시간이 있습니다. 어둠을 밀어내는 엷은 밝음이 조금씩 아침을 만듭니다. 새벽이라는 어둠 속의 밝음을 볼 수 있다면 시간의 지루함을 참을 수 있을 지도 모릅니다.

 

희망을 알려주는 엷은 빛, 깨달음이 예견되는 삶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들, 행복이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있는 이 자리에서 찾아야 한다는 믿음, 건강은 완전한 육신의 상태가 아니라 유지해가야 한다는 생각들이 그러한 전조일 것입니다.

 

이미 지금의 삶이 희망이고 깨달음이며 행복임에도 그것을 알지 못하고 사는 이들도 있습니다. 어쩌면 그들은 창 없는 골방에 스스로 들어가 해를 보지 못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무엇이 희망이고 깨달음이며 행복임을 알지 못하면서 바라기만 하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부처님께서 있는 이대로의 세상이 극락이라고 했을 때 제자들은 그 말씀을 이해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부처님은 제자들에게 잠시 불안佛眼을 빌려 주었습니다. 부처님의 입장으로 세상을 보게 한 것이지요. 그랬더니 정말 이 세상은 있는 그대로 만족할만한 것으로 보였습니다 다시 부처님께서 불안을 거둬들이니 제자들이 보는 세상은 고통과 번뇌로 가득한 상태가 되어 버렸습니다.

 

부처님의 눈으로 보면 세상은 높으면 높은 그대로, 낮으면 낮은 그대로 존재하는 의미가 있는 것인데, 중생은 높은 것을 제 필요에 의해 낮추려하고 낮은 것을 높이려하니 삶에 어려움이 있음을 보여준 것입니다. 세상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 문제가 있음을 알게 한 것이지요. 내게 부닥치는 삶의 어려움을 피하려고만 든다면 당장 그 때는 피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문제는 그대로 남아있는 것이니 쌓여가는 고통에서 벗어날 길이 없는 것입니다.


 

 

하늘에는 해가 늘 떠 있으나 때로는 구름에 가리기도 하고, 시간이 흐르면서 높이 떠 있던 해는 산 뒤로 넘어가기도 합니다. 늘 밝은 해가 떠 있기를 바라는 것이 중생의 어리석음이라면 있는 그대로를 아는 것이 부처입니다. 우리의 삶에 부닥치는 문제를 피하려만 말고 이겨내는 기다림의 지혜를 얻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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