茶 이야기/에세이 차 이야기

[스크랩] 보이차의 두 얼굴 - 어느 것이 진실인가?

무설자 2005. 9. 6. 20:19
728x90
1. 보이차에 대한 신비로운 환상

요즘은 손님들에게 보이차를 내는 일이 뜸해졌지만 예나 지금이나 보이차를 낼 때마다 듣는 변치 않는 질문이 있습니다. ‘이거 청병입니까, 숙병입니까? 몇 년이나 된 것입니까?’

이런 질문을 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신비하게 느껴질 정도로 보이차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들의 보이차 이해는 옳은 것도 있고 그른 것도 있습니다만 대체적으로 한 가지 공통점을 지니는데 그들 대부분이 수십 년 내지 칠팔십 년 묵은 자연 진화된 청병에 대한 환상으로 젖어 있다는 것입니다.

보이차의 진운이 어떻고 장향이 어떻고 생진 작용이 어쩌니 하는 알아듣기조차 힘든 용어를 사용하는 그들의 보이차 예찬론은 범인(凡人)들의 기를 죽이기에 모자람이 없고 ‘호자급이나 인자급 보이차를 마시면 온몸에 뜨거운 기운이 돌고 등줄기에 땀이 솟아 엉덩이까지 흘러내린다.’는 경험담까지 보태지면 듣는 이로 하여금 보이차에 대한 경외심을 갖게 만들 지경입니다.

2. 보이차의 두 가지 개념

그런데 대만 출신 중국인이며 한서대 교수인 짱유화 씨는 이토록 환상적이고 신비적인 한국인의 보이차 이해에 대하여 명확한 선을 그으며 그 환상을 여지없이 깨뜨렸습니다. 그것은 보이차의 원산지인 중국의 보이차 개념과 홍콩이나 대만의 차상인들의 보이차 개념이 전혀 다르다는 것입니다.

오늘 날 푸얼차(普洱茶)가 인기를 얻을 수 있는 것은 홍콩 혹은 타이완의 차상인들에 의하여 만들어진 결과물이며, 그들의 상혼이 없었다면 푸얼차는 아직도 중국 소수민족들이 먹는 하급차에 불과할 것이다.

오늘 날 우리가 푸얼차를 이해하고 탐구하는데 있어 개념부터 확실하게 확립해야할 것이다. 이는 중국 본토와 해외의 시각이 확연히 다른 데에서 비롯된다. 곧 같은 푸얼차를 논하더라도 추구하는 관심사와 상충되는 푸얼차 개념에 따라 얻어진 결과물에 대한 해답이 전혀 다르게 나타날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중국 차시장에서 언급하고 있는 푸얼차는 소위 미생물을 통해 발효된 푸얼차를 말하며, 이에 중국 다서에 기재되어 있는 푸얼차는 모두 이러한 후발효공정을 거쳐 만들어진 푸얼차에 대한 논의이다. 그러나 해외 즉 홍콩, 타이완, 한국 등지에서 알고자 하는 푸얼차에 관한 지식은 1970 년대 이전의 푸얼차, 이는 곧 지금 푸얼차 시장에서 청병 또는 생차라고 가리키는 녹차형태의 덩어리차들이 세월의 경과에 따라 자연발효가 되어 산화된 푸얼차를 말하며, 이에 해외 지역에서 출간된 푸얼차에 관계한 책들은 모두 이런 아류의 푸얼차를 논하고 있는 것이 중국과는 다르다. (월간 tea & people 2005. 5)

이상의 견해를 통해서 중국과 홍콩, 대만 상인들의 보이차에 대한 개념이 다른 이유를 분석해 보면 그것은 접근 동기가 전혀 다른 데에 기인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즉 전자는 보이차의 원산지로써 역사적 사실에 기초한 경제적이고 현실적 개념을 정립했다는 것이요 후자는 순전히 상업적 동기에서 개념을 부여했다는 것입니다.

보이차는 청나라 때부터 홍콩으로 수입되었으나 상업적 가치가 별로 없어 창고에 쌓여 있다가 1980 년대 말부터 해외 화교들 사이에 관심이 높아지면서 품질 좋은 보이차가 대만 상인들의 손으로 넘어갔습니다. 이때 상인들은 보이차를 고가로 팔시 위한 뛰어난 상혼을 발휘하여 보이차의 성분과 효능을 부풀렸습니다. 특히 중국에는 거의 남아있지 않은 즉 1970 년 이전에 생산된 소위 청병이라고 불리는 보이차에 신비스럽기까지 한 정보를 덧칠하여 소비자를 현혹하였는데 현재 국내에서 떠돌아다니는 보이차 관련 정보는 대개 여기서 비롯된 것이며 사용되는 용어들도 이 시기를 거치면서 만들어진 것입니다.

짱유화 교수는 같은 기고문에서 ‘차학자들보다 차상인들에 의해 더욱 유명해진 푸얼차, 말도 많고 탈도 많아서 못 믿을 차로 낙인찍힌 푸얼차, 진짜보다 가짜가 더 많은 푸얼차......’라는 표현으로 시중에 떠도는 보이차의 진실과 거짓에 대하여 전했습니다.

3. 보이차에 대한 중국 정부의 정의

보이차의 경제적 가치를 크게 인식한 중국은 1973 년 미생물을 통해 쾌속 발효시킨 미생물발효푸얼차를 개발하여 대량속성생산을 가능케 하였고 이후 중국 운남성 정부는 1979 년 발표한 ‘운남성푸얼차제조공법에 관한 시행 규칙에 관한 시행령’을 고시하였습니다.

‘푸얼차란 운남성의 대엽종 찻잎으로 만들어진 녹차긴압차가 시간의 경과에 따라 차속에 함유되어 있는 여러 성분들, 특히 폴리페놀 중심으로 자연발효가 되어 차색이 변하는 동시에 색다른 맛과 향을 나타낸다. 이러한 차의 변화는 오래 묵힐수록 그 향미를 느낄 수 있는 것이 푸얼차의 진가이다. 푸얼차의 자연발효는 당시 사회적 배경에서 비롯되었는데, 이는 폐쇄적이고 낙후된 운남성의 교통망에 의해 야기된 운송수단에서 비롯된 장시간의 발효였다. 오늘날 운남성의 교통이 발달되어 1 년을 소요했던 운송을 단 며칠 혹은 몇 시간 안에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다. 이에 지난 날 운송수단에 의해 비롯된 자연발효의 맛과 향을 재연하기 위해 우리는 ’푸얼차쾌속발효가공법‘을 개발하여 소비자의 욕구를 충족하고자 한다. 쾌속발효가공법이란 물과 습도에 의해 인위적으로 발효한 가공법으로서 1975 년 쿤밍차창에서 생산한 후 점차적으로 몽하이, 사관, 푸얼차창 등 곳으로 확산되었다. 그동안 가공법에 나타난 난제들이 완벽하게 극복하는 단계에 이르렀으며 이러한 노력들이 결실을 얻어 이제 운남 각 지역의 차공장에서도 푸얼차를 생산하고 있는 실태다. 이에 운남 정부는 푸얼차 품질의 제고를 보다 유효하게 하기 위해 아래와 같은 시행령을 반포한다.(월간 tea & people 2004. 10)

이처럼 중국은 이미 30여 년 전에 보이차의 개념을 정리하고 경제적 가치에 상응하는 보이차 생산에 돌입하였습니다. 그렇다면 상인들이 고도의 상혼으로 만들어낸 환상적인 보이차 개념에 언제까지 포로로 잡혀 있을것인가는 순전히 소비자가 결정해야할 몫입니다.

4. 진정한 의미의 자연진화청병의 생산이 현실적으로 가능한가?

소위 운남 야생교목대엽종이라 불리는 큰 키의 노차수 찻잎의 모차가 덩어리로 만들어져 수십 년 이상의 세월과 함께 자연 진화한 진정한 의미로써 청병, 그것이 현재 얼마나 남아있는지 알 수 없지만 분명한 사실은 그것들이 세월이 흐를수록 먹어 없어지거나 혹은 식품으로서의 가치를 잃으면서 자연 소멸되어 사라질 것이라는 점입니다. 뿐만 아니라 혁명기를 거치면서 현재 얼마 남지 않은 큰 키 노차수의 운명은 진정한 의미의 청병이 시장에 상품으로 나타나는 것을 거의 불가능하게 만들었고 생산량이나 경제성을 생각해도 역시 어렵습니다.

다시 말해서 차나무가 재배형교목이나 관목으로 대체되어 진정한 의미의 청병 원료로서의 찻잎을 확보하기가 거의 불가능해졌고 차창의 민영화 이후 무수히 많은 소규모 제다업체가 생겨나서 대거 차 생산에 가세함으로써 온갖 잡다한 위조차가 판치는 오늘 날의 현실에서 그 옛날 유명 차상점에서 만들던 청병을 그대로 다시 제작한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습니다. 결국 상인들이 소비자를 기만하는 고도의 계산된 상혼을 버리지 않는 한 가짜는 세월이 흐를수록 더욱 많아질 것이라는 이야기입니다.

물론 그 옛날에 생산되었던 명차의 품질에 가깝게 만든 보이차도 전혀 없지만은 않겠습니다만 중국 서안의 어느 찻집에서 팔리는 20년 묵은(?) 보이차 한 잔의 가격이 1,200 위안이었다는 짱유화 교수의 증언을 생각한다면 우리 같은 범인이 보이차를 포함하여 중국의 명차에 대한 환상에 젖어 있다는 것이 얼마나 허망한 것인지 부끄러운 생각이 듭니다.

5. 잘못된 환상을 버려야 한다.

상인들의 약삭빠른 상혼에 의하여 만들어진 ‘보이차 개념’에 얽매어 골동이나 인자급 보이차의 환상을 좇는 어리석음은 이제 버릴 때가 되었습니다. 어차피 시간이 흐를수록 이런 차들은 사라질 것이고 설령 남아있다 하더라도 식품으로서의 가치가 사라지고 형태만 남은 박물관 진열품에 불과해질 것입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중국의 보이차 생산자들이 상인들의 상혼에 편승하여 다양한 유사품 및 위조품을 만들어 내놓고 있는 현실은 우리를 더욱 참담하게 만듭니다. 그리고 또 하나 우리를 고민하게 만드는 깜짝 놀랄 사실이 있는데 그것은 대만이나 홍콩 등의 시장에서 유통되는 중국 운남 산 보이차의 양이 운남에서 생산되는 보이차의 생산량을 웃돌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몇 년 전부터는 보이차의 신비를 좇는 사람들을 겨냥하여 소위 생차청병 혹은 보이생차라고 불리는 차들이 대량으로 쏟아져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이는 아마도 국내 시장에서 보이차에 대한 불신이 팽배해지고 소비자들의 구입 태도가 전 같지 않게 까다로워지니까 아예 생차청병이라는 것을 수입하여, 속기 싫으면 소비자들이 직접 묵혀먹으라는 한 수 더 뜨는 상혼을 발휘한 것 같습니다. 이에 많은 양이 팔려나갔고 개인적으로도 호기심을 가지고 그것들을 종류대로 구입하여 가지고 있습니다만 국내에서 보이생차를 묵혀서 만들었다는 제대로 된 자연진화청병을 본적도 먹어본 적도 없으니 그저 막연한 기대를 걸어볼 뿐입니다.

얼마 전에 열렸던 ‘티월드페스티벌’에서 보았던 소위 홍인이라 불리는 1942 년 산 인자급보이차에는 300 만원을 웃도는 가격표가 붙어 있었는데 책에서 늘 보던 것인데도 그것이 진품인지 아닌지를 떠나 웬일인지 낯설어 보였습니다. 이는 보이차에 대한 복잡한 심중이 반영된 느낌의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이제 우리는 보이차에 대한 냉정한 시각을 가져야합니다. 상인들이 치밀하게 계산된 상혼으로 만들어낸 정보에 놀아나는 우매함을 버리고 보이차에 대한 잘못된 환상에서 깨어나야 합니다. 그렇다면 보이차에 대한 우리의 선택은 무엇이어야 하겠습니까? 결국 중국 정부가 공인한 방법 즉 ’푸얼차쾌속발효가공법‘에 의하여 만들어진 보이차를 선택하거나 아니면 매우 드물겠지만 비교적 잘 만들어졌다고 판단되는 이미테이션 차를 선택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니면 사기당할 각오를 하고 계속해서 환상을 좇든지 해야 할 것입니다. 환상을 좇는 사람들이 많으면 많을수록 보이차를 만드는 사람들은 홍콩 대만의 상인들의 상혼에 편승하여 더 많은 위조차 내지는 가짜차를 만들어 낼 것이요 보이차 판매를 통한 폭리에 매달리는 상인들만 좋아할 것입니다.


출처 : 차맛어때
글쓴이 : 둘로스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