茶 이야기/여성경제신문연재-무설자의 보이차 이야기

보이차를 굳이 노차로 마셔야겠는지요?

무설자 2024. 12. 30. 1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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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발효차의 끝판왕은 노차라고 한다. 후발효차의 의미를 표현하는 월진월향越盡越香이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은 세월이 더해지는 만큼 차향도 빼어나다는 의미이니 십 년을 넘어 백 년 된 보이차에 신비감이 더해진다. 이 모호한 신비감을 업고 상업적으로 악용된 가짜 보이차가 시장에 많이 유통되고 있다. 

    

시중에 유통되는 노차는 가짜 보이차가 많다는 걸 알면서도 30년 이상 되었다는 90년대 보이차는 쉽게 사고 팔리는 상황이다. 상인에게 ‘가짜 아니죠?’라고 묻는 사람은 진짜가 아니라는 걸 모르는 것일까? 대만에서 많이 들여온다는 90년대 노차는 뛰어난 작업 기술로 진품에 가까운 향미를 보인다고 한다. 진품이라면 매겨질 수 없는 가격에다 향미까지 90년대 노차 뺨칠 정도이니 구매 유혹에 혹하지 않을 수가 없다.    

 

진위 여부를 알아차리기 어려운 건 포장지 때문     

   

보이차는 한 편씩 종이 포장지에 싸서 일곱 편을 말린 대나무 죽순 겉껍질로 싼 한 통 단위로 보관되어 유통된다. 지금은 포장지가 차마다 다른 디자인에 차 생산일자와 차에 대한 정보가 들어 있다. 그렇지만 2000년도 무렵 이전까지 보이차는 중차패라는 공통된 포장지로 공급되었다. 이 중차패 포장지는 생산연도도, 차산지나 차창 등 차에 대한 아무런 정보가 없어서 어떤 차인지 알 수 없었다.   

  

시중에 유통되는 90년대 차라고 하는 노차는 다 이 중차패 포장지이다. 그래서 차를 판매하는 사람들도 중간 상인들의 말로 몇 년도 차이며 어느 산지, 생산 차창이라는 걸 알 뿐이다. 차에 대한 정보는 차의 병면에 묻혀있는 작은 종이조각인 내비로 차창 정도는 확인할 수 있을 뿐이다. 그 내비에도 차창이 적혀 있지 않은 경우가 더 많으니 90년대 차는 마셔보고 구매여부를 판단할 수밖에 없는 형편이다.  

 

시중에 유통되고 있는 90년대 노차는 거의 이 포장지인데 '茶'의 색이 황색, 적색, 녹색으로 되어 있다. 오래된 차로 보이려고 종이도 낡은 것처럼 만들어서 노차로 오인하게 된다

 

 90년대 이전 차의 노차 진위 여부는 전문 감정인이 포장지에 인쇄된 글자체를 보고 판정한다고 한다. 그렇지만 우리 주변에는 감정인이 없을 뿐 아니라 혹시 감정서가 있다고 해도 일반 소비자가 어떻게 믿을 수 있을까? 차라리 믿을만한 노차 전문점이 있다면 그곳을 믿고 구입하거나 시음을 하고 그 결과에 따라 구매하는 게 상책이다. 그러니 노차는 마시는 사람의 입맛에 의존할 수밖에 없으니 차가 아니라 사람에 대한 신뢰가 우선이라 하겠다.     

 

90년대 차라면 보관된 기간이 30년 이상인데 가격이 얼마 정도 평가할 수 있을까? 중차패 포장지에 싸여 있는 차는 대부분 대지병배차로 보아야 한다. 대지병배차로 가장 신뢰할 수 있는 차는 맹해차창 대익차이며 30년 이상된 노차도 구입할 수 있다. 그렇지만 ‘듣보잡 노차’에 비해 가격이 만만찮게 비싸다는 걸 각오해야 하며 그런 가격이라야 진품일 것이다.   

  

90년대 노차의 포장지 안의 차는 어떨까?       

 

보이차는 실온에서 보관하기에 차가 있었던 장소에 따라 차의 변화는 천차만별로 달라진다. 보이차의 숙성은 고온고습의 환경에서 가장 빨리 이루어진다. 그래서 우리나라 주거 환경에서는 여름이 되면 차를 보관하는 방 안에는 차 익는 냄새가 가득하다. 그럴지만 우리나라 아파트는 여름이라도 에어컨을 켜고 지내기 때문에 30년 정도 된 생차도 변화가 더딘 편이다.  

    

생산연도가 같은 차라고 해도 대만이나 홍콩, 광동과 우리나라에서 보관된 차는 탕색을 보면 완전히 다른 차가 되어 있다. 30년 된 차라고 해도 여름 내내 에어컨으로 생활하는 사무실에 두면 탕색이 진노랑이고 대만이나 홍콩의 창고에 보관된 차는 숙차처럼 붉은색이 나온다. 고온고습의 창고에 보관된 차는 곰팡이가 피는 걸 피할 수 없어 발효가 이루어진다. 반면에 우리나라에 보관되는 차는 산화에 의한 변화로 탕색의 변화가 더디다.     

 

중차패 90년대 8582, 병면이 숙차의 그것과 다름없는 색이다. 보관 장소가 고온다습이었으면 이 정도로 익을 수 있겠다. 90년대 노차는 병면에 있는 내비에 맹해차창을 확인하면 가장 믿을 수 있다.

 

보이차는 병면의 색깔은 탕색과도 이어지는데 90년대 생차가 숙차와 비슷하다면 고온고습한 창고에 보관된 발효차라고 보는 게 맞을 것이다. 문제는 창고에 보관되면서 생긴 곰팡이의 유해성 여부이다. 숙차는 된장을 띄울 때 피는 검은곰팡이와 같은 종류라서 무해하다. 그렇지만 습한 창고에 보관하며 피는 곰팡이는 독성이 강하다고 하니 ‘듣보잡’ 노차는 마시면 해로울 게 뻔하다.  

   

90년대 노차를 탕색만 보고 익은 차라며 구입하는 걸 추천하지 않는 이유다. 그렇지만 만들어진 생차를 익은 차로 만드는 기술이 인정받고 있다고 한다. 창고의 온도와 습도를 기계적인 장치로 관리하여 생차의 고삽미를 줄인 노차의 향미를 만들어내고 있다. 유해한 곰팡이를 피워 만든 억지 노차가 아니라 익은 향미인 진향을 가진 차를 만드는 새로운 제다법으로 만들어진 차인 것이다.    

 

노차는 한 편이 아니라 한 잔으로 마시는 차     

 

왜 보이차만 유독 따로 노차라고 부르며 오래 묵은 차를 예우하는 것일까? 노차의 대표 격인 홍인은 거래가 경매로 이루어지고 있다. 보이차가 오래 보관하면 이런 대접을 받을 수 있을 거라는 걸 알았을까? 이렇게 될지 아무도 몰랐기에 남아있는 보이차는 가격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고 있다. 요즘 경매에 홍인이 2억으로 가치가 평가되는데 앞으로 얼마나 더 높게 거래될지 알 수가 없다.  

   

홍인은 내가 마실 수 없는 차라고 해도 30년 이상 된 노차는 얼마든지 기회를 가질 수 있다. 물론 제대로 보관된 차라야 할 것인데 어떻게 알 수 있을까? 다른 보이차도 마찬가지지만 비싼 차일수록 꼭 시음 후에 구매하는 게 원칙이다. 그렇지만 노차가 아니더라도 비싼 차는 무료로 시음하는 건 어려울 테니 값을 치르더라도 꼭 마셔보아야 한다.

        

노차는 소장해서 마시기는 진위의 판단도 어렵고, 진품 노차라면 가격도 만만찮아서 소장자와 함께 마시는 게 가장 좋다. 노차에 일가견을 가진 다우와 마시면 운 좋게 홍인을 얻어 마실 수도 있다.

 

노차는 보관 과정에 문제가 생긴 차가 많다. 전설의 호급차를 마실 기회가 있었지만 한 모금을 넘기지 못하고 뱉어내고 만 경험이 있다. 호급차면 무엇하고 인급차면 또 무엇하겠는가? 보관이 제대로 되지 않아 유해한 곰팡이가 침투한 차는 이미 마실 수 없는 차가 되고 만다. 노차는 발효가 아니라 산화되어 성분 변화가 이루어져야만 제대로 된 진향을 가질 수 있다. 

    

30년 정도 된 노차를 마신다고 보면 탕색은 붉은색이 아니라 진노랑이나 갈색이어야 한다. 차를 서너 탕 우려낸 엽저를 만져봐서 뭉개지거나 뻣뻣하면 곰팡이로 발효된 작업차이다. 온전하게 잘 보관된 노차라면 엽저가 부드럽고 탄력을 잃지 않는다. 차를 수십 번을 우려도 탕색의 변화가 있을 뿐 오래 오래 차의 향미는 지속된다. 홍인급 노차는 수십 포를 넘어 백탕白湯에 가깝게 우려내도 그에 맞는 향미를 잃지 않는다.   

 


             

대접을 받을만한 노차는 진하게 우려도 향미가 거북하지 않다. 가성비를 따져 한 통을 구입한 노차보다 손 떨리는 값을 지불하고 마신 한 잔의 노차가 더 가치가 있지 않을까 싶다. 사실 넉넉하지 못한 주머니 사정을 아쉬워할 필요가 없는 게 노차를 소장해서 일상의 차로 마실 수 있는 사람은 따로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노차 흉내를 내는 90년대 생차는 다 대지병배차라서 그 향미가 2000년대 초반 고수차 첫물차보다 나을 수 없다.     

 

노차는 잔으로 마시는 차인데 어떻게 한 편을 소장할 수 있을까? 보이차에서 가짜차라는 오명을 듣는 노차를 굳이 내 차 목록에 올릴 필요가 없다고 본다. 90년대 노차에 미련을 가지고 몇 번을 구입해 보았지만 결국 버리지도 못하는 차로 가지고 있다. 불과 몇 년 차이도 나지 않는 2000년대 초반 고수차는 노차라는 이름을 붙일 필요 없이 당당하게 제 이름을 가진다.  

 

 

여성경제신문 '더봄' 연재 - '무설자의 보이차 이야기' 21

원문읽기 : https://www.womaneconomy.co.kr/news/articleView.html?idxno=22927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