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차는 생차와 숙차가 있다. 숙차가 나오기 전까지는 보이차는 생차 밖에 없었다. 숙차라는 차가 나오게 되니 기존 보이차는 할 수 없이 생차라고 이름을 가지게 된 셈이다. 사실 오래된 생차를 익은 차라고 해서 숙차라고 불렀는데 굴러온 돌이 박힌 돌의 이름을 차지해 버린 것이다. 그래서 오래된 생차는 노차라는 새 이름을 쓰게 되었다.
생차 입장에서는 보이차라는 이름을 나누어 써야 했고 숙차라는 이름까지 빼앗겨 버렸으니 억울한 처지가 되었다고 해도 될 형편이었다. 여기에다 2003년 3월에 윈난 성 질량 기술 감독국에서 ‘윈난 성 일정 구역 내의 운남대엽종 쇄청모차를 원료로 하여 후발효를 거친 산차와 긴압차’로 숙차만 보이차로 정의해 버렸다. 이름을 나누어 쓰는 걸 넘어 아예 빼앗긴 것이니 억울한 정도를 넘어 원통한 지경이 아닌가? 물론 지금은 생차와 숙차가 모두 보이차로 정의되어 있다.
숙차는 마시면 안 되는 차?
지금은 숙차에 대한 편견이 거의 없어졌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마시면 안 된다고 대놓고 말하는 사람이 적지 않았다. 그럴 만했던 게 숙차를 만들었던 초창기에는 발효 장소의 환경이 너무 비위생적이었기 때문이었다. 시멘트 바닥에 쇄청모차를 쌓아 놓고, 삽을 든 인부가 담배를 입에 물고 작업하는 사진이 공개되었으니 경악할 노릇이었다. 게다가 막 발효를 마친 숙차에서 나는 고약한 냄새는 코를 막아야 할 지경이었다.
청국장, 홍어, 취두부 등 발효 식품을 먹으려면 유쾌하지 못한 냄새를 받아들여야 하듯 숙차도 예외가 아니다. 숙차에서 나는 지린내 같은 숙미, 숙향은 짧게는 3년, 보통 5년 정도 지나면 사라진다. 이러다 보니 곰팡이를 피워서 만든다고 발암 운운하는 학자까지 있었다. 고수차를 만들어 팔면서 유명세를 가지고 있는 모 인사도 숙차를 마시면 안 된다고 홍보를 했었다.
지금은 생차로 부르지만 숙차가 나오기 전까지의 대지차 병배 보이차는 중국 내에서도 거들떠보지 않는 차였다. 지금도 그렇지만 중국 차 생산량의 70%가 녹차였고 그만큼 수요가 있었다. 그 당시 보이차는 쓰고 떫은맛 때문에 일상에서 마시기 어려웠다. 1973년 숙차가 개발되고 나서 보이차는 중국보다 해외에서 그 이름이 알려지게 되고 인기를 얻게 되었다.
숙차는 값싼 대지차를 모료로 써서 만들어 찻값이 저렴한 데다 건강에 좋은 성분으로 관심을 받으며 보이차의 새 지평을 열게 되었다. 음용 기한이 따로 없는 데다 오래 두면 둘수록 가치가 올라간다는 보이차의 특성은 차를 대하는 개념을 다르게 했다. 숙차는 일부 사람들의 우려와 이속을 차리는 이해관계로 마셔서 안 되는 차라는 오명을 쓰면서도 보이차 시장을 넓히는데 혁혁한 공을 세우게 되었다.
마시기 어려운 생차와 누구나 마실 수 있는 숙차
숙차를 개발하게 된 배경이 홍콩에서 생차를 고온고습 환경의 창고에서 곰팡이로 익혀 쓰고 떫은맛을 줄여 마시면서 시작되었다. 지금도 이런 환경에서 발효시킨 차를 오래된 노차라고 팔고 있다. 그렇지만 고온고습한 창고에서 핀 익힌 차는 유해한 곰팡이라서 마실 수 있을지는 몰라도 정상적인 차라고 할 수는 없었다. 그렇지만 쓰고 떫은맛이 줄어들고 독특한 진향이 나는 이 차를 홍콩 사람들이 즐겨 마시게 되면서 보이차의 판매가 급증하게 되었다.
이러한 익은 보이차의 수요를 윈난성에서 직접 공급하자는 계획으로 발효법을 연구하게 되었다. 1973년에 쇄청모차를 쌓아놓고 물을 뿌려 곰팡이를 발생시키는 발효법으로 새로운 보이차인 숙차가 개발되었다. 기존 보이차는 생차, 발효법으로 개발된 차를 숙차로 명명했다. 이때부터 보이차는 생차와 숙차의 두 종류로 나누어지게 되었다.
된장을 만들면서 메주를 띄우면 발생되는 푸른곰팡이가 숙차를 만드는 곰팡이와 같은 종류이다. 흔히 차를 분류하면서 불발효, 약발효, 경발효, 전발효, 후발효로 발효 정도에 따라 대별한다. 그렇지만 흑차를 제외하면 다른 차류는 발효가 아니라 산화에 의해 종류가 나누어진다. 곰팡이의 작용으로 차를 만들어야 발효라고 쓸 수 있으니 보이차 숙차와 복전 등 흑차류만 해당된다고 볼 수 있다.
보이차도 생차는 산화가 지속되면서 차 성분 변화가 일어나므로 후발효는 오래 보관해 마실 수 있다는 개념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숙차도 차를 만드는 과정에서 발효는 이미 마무리되므로 만들어진 차의 변화는 발효와는 상관없다고 본다. 곰팡이의 작용으로 만들어지는 숙차는 제다과정이 끝나면 발효도 마무리되니 보관하는 시기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숙차는 일상에서 마실 수 있는 가장 대중적인 차
숙차는 어떤 차류보다 가성비가 높다. 357g 병차 기준으로 3만 원 정도의 차도 일상에서 맛있게 마실 수 있다. 한 번에 차 5g으로 1리터 이상 우릴 수 있으니 500원으로 하루가 즐겁다. 다른 차류는 커피처럼 카페인 때문에 빈 속이나 늦은 시간에는 마시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 그렇지만 숙차에도 카페인이 있지만 우리 몸에 미치는 영향이 적어서 때를 가리지 않고 마실 수 있다.
대엽종 찻잎에는 폴리페놀 성분이 많아서 쓰고 떫은맛이 강해서 마시는데 지장이 많다. 그렇지만 발효 과정을 거친 숙차는 폴리페놀 성분이 줄면서 달고 풍부한 맛으로 바뀌게 된다. 발효 과정에 생성되는 갈산 성분은 건강 유지에 특별한 효능이 있다고 한다. 또 몸을 따뜻하게 해 주어서 위장 건강에도 좋은 작용을 하므로 찬바람이 불면 특히 숙차에 손이 더 자주 가게 된다.
숙차는 우려 마시기도 편한 차이다. 거름망이 있는 차 주전자나 표일배로 뜨거운 물을 부어 바로 우려내면 된다. 차 전용 보온병에 적당량의 차를 넣어 뜨거운 물에 우리면 이동 중에도 따뜻한 차를 마실 수 있다. 차 중에서 숙차만큼 편리하게 마실 수 있는 차가 또 있을까 싶다. 현대 보이차라는 이름에 걸맞게 해마다 발효법이 개선되어 요즘 나오는 숙차는 숙미가 거의 없어서 더욱 마시기 좋아지고 있다.
200g 소병이나 250g 전차도 있어서 차를 마시지 않는 사람들에게 차 생활을 권하며 나눔을 해도 좋다. 가족이나 친구가 차 생활을 하게 되면 같은 주제로 나눌 이야기가 많아지게 된다. 숙차는 차 생활을 시작하는 데 있어 비용에서 부담이 없고 건강 유지와 취미 생활을 함께 할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은지 모른다. 차를 마시면 대화가 따르게 되니 활력이 넘치는 일상을 살 수 있게 된다.
차 생활은 건조한 일상을 풍요롭게 바꾸어준다. 차 한 잔 하자는 말이 빈말이 아닌 머그컵에 차를 담아 건네기 때문이다. 숙차를 우리면 혼자 마셔서는 넘치는 양이 나오기 때문이다. 차를 건네다 보니 주는 대로 잘 마시면 한 편을 나누는데 부담이 없는 숙차는 선물하기도 좋다. 차를 전했던 사람이 차 생활을 시작하면 다우라는 벗이 된다.
숙차는 누구나 마실 수 있고 내가 마시는 차를 부담 없이 나눌 수 있다. 나만 마시는 차라서 나누기 어려우면 대화를 나눌 벗을 곁에 두기 어렵다. 나도 마시고 가족이나 친구, 동료도 함께 마실 수 있는 차라서 숙차를 차중보살이라 부른다. 차는 마시는 것만이 목적이 아니라 함께 얘기를 나누게 하는 매개체로 삼으면 외롭지 않은 일상을 보낼 수 있다. 사람 사이에서 만남을 가질 수 있도록 큰 역할을 할 수 있는 차가 보이차 숙차이다.
여성경제신문 '더봄' 연재-'무설자의 보이차 이야기' 18
원문읽기 : https://www.womaneconomy.co.kr/news/articleView.html?idxno=227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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