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 다섯 개인가 여섯 개인가 모르겠지만 특급 호텔 셰프 출신 요리사가 자신의 레스토랑을 개업했다고 한다. 조미료, 특히 MSG는 절대 쓰지 않고 식재료 본연의 맛으로 승부해 보겠다는 일념으로 음식을 만든다고 했다. 광고를 따로 할 것도 없이 그의 명성만으로도 손님들이 밀려들었다. 그런데 그가 그토록 추구하는 조리 철학을 담아 만든 음식에 한껏 기대했었는데 첫 술을 뜨고 나서 수저를 놓는 사람이 적지 않았다.
유명 셰프의 레스토랑은 개업 날 이후에 좌석이 잘 채워지지 않게 되었다. 그가 들었던 최악의 한 마디는 이 음식을 먹으라고 내놓는 거냐는 말이었다. 요리계의 명인이 그런 말을 들었으니 그의 심정은 어떠했을까? 하지만 그는 곧 그 이유를 알아차리고 낸 수습 방안으로 그의 명성에 걸맞게 손님이 들게 되었다. 그는 어떻게 다시 손님의 호응을 얻게 되었을까?
차를 만들면서 생성되는 꽃향과 과일향
찻잎을 가공해서 차를 만드는 제다법에 의해 크게 여섯 종류로 나누게 된다. 찻잎의 산화가 일어나지 않도록 열을 가해 만드는 녹차, 찻잎을 시드는 과정만으로 만들어지는 백차, 찻잎의 산화를 필요한 만큼만 일으켜 만드는 청차와 찻잎을 살짝 산화시키고 약하게 띄우는 과정이 들어가는 황차, 찻잎의 산화를 적극적으로 일어나도록 해서 만든 홍차, 미생물 발효를 통해 만드는 흑차로 나눈다.
녹차는 중국에서 생산되는 차 중에 60%가 넘는다고 한다. 그래서 중국에서 바다에 접한 지역이 차산지인데 중국을 대표하는 명차는 대부분 녹차이다. 녹차는 차나무의 종류도 다양하지만 지역마다 독특한 향미를 다투게 되는 건 제다법이 다르기 때문이다. 명차로 이름을 올리는 녹차들은 저마다 독특한 제다법으로 차를 마시는 사람들을 유혹한다.

청차는 차향으로는 다른 차류가 따를 수 없다. 무이암차나 철관음으로 대표되는 청차는 차를 만들면서 향기를 드러내는 공정이 저마다 특징을 가진다. 그 공정이 아주 복잡하고 난해해서 향미의 차이에서 찻값은 크게 달라진다. 청차의 향미에 빠져들면 돈을 가지지 못하는 걸 한탄하게 될 정도이다.
홍차는 전 세계인이 즐겨 마시는 차로 커피만큼 교역량이 많은 차다. 수요가 많은 만큼 제다법도 산지마다 다른데 복잡하게 분류되어 다양한 방법으로 차를 즐긴다. 세계 3대 홍차에 중국차는 기문홍차만 이름을 올리는데 인도와 스리랑카, 케냐 등 전 세계에서 생산되고 있다. 홍차는 나라마다 음용 방법도 다양해서 이에 맞추어 다른 제다법으로 수많은 종류가 생산된다.
보관되는 시간과 함께 진화되는 보이차의 향미
보이차는 육대차류 분류로는 흑차에 들어가지만 숙차만 해당된다고 볼 수 있다. 보이차는 생차와 숙차로 나누어지는데 생차를 흑차로 분류하는 건 무리가 있다. 제다 과정으로 보자면 생차는 녹차와 다름없기 때문이다. 찻잎을 따서 시들여서 뜨거운 솥에서 덖는 과정까지 녹차의 제다법과 크게 다르지 않다.
녹차는 증기를 쐬거나 뜨거운 솥에서 여러 번 덖는 과정으로 찻잎이 산화되는 것을 중지시켜 만든다. 여기서 보이차는 솥에서 한 번만 덖고 햇볕에 말려 건조해 만드는 게 녹차와 다르다. 보이차는 녹차에 비해서 차를 만드는 과정이 비교적 단순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보이차도 만약 솥에 덖는 과정을 반복해서 건조하면 녹차와 같은 향미를 얻을 수 있지만 향미에서 만족하지 못한다.

찻잎을 한번 덖어 햇볕에 말리면 보이차의 원료인 毛茶모차가 된다. 모차를 만드는 방법을 보면 다른 차류에 비해 단순한 만큼 그 향미는 풋내가 나며 쓰고 떫은맛이 많다. 보이차를 만드는 대엽종이 차나무의 원조라고 하는 만큼 제다법도 다른 차류에 비해 너무 단순해 보인다. 그래서 모차는 완성된 차가 아니라 생차나 숙차의 원료로 포대에 담아 창고에 보관된다.
제다법만으로 보면 보이차는 다른 차류와 비교해서 원시적인 차가 아닐까 싶다. 제다의 기술을 발휘해서 더 좋은 향미를 만들어내는 차는 아니라는 것이다. 다른 차류는 같은 찻잎으로 만들어도 제다 기술의 여부에 따라 차의 등급에서 큰 차이가 난다. 그렇지만 제다 과정이 단조로운 보이차는 찻잎의 등급이 바로 차의 등급과 동일시된다고 할 수 있다. 이에 더해서 햇볕에 말리는 제다 과정으로만 상온 보관으로 세월과 함께 진화되어 생성되는 보이차만의 독특한 향미로 가치가 더해진다.
보이차는 왜 차산지가 차 이름이 될까?
보이차는 중국차인데도 오랫동안 다른 차류에 비해 그다지 큰 명성을 얻지 못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던 건 제다기술로 만드는 차가 아니라서 맛도 향기도 다른 차류에 미치지 못하기 때문이다. 맛으로 보면 감칠맛에서는 녹차에 미칠 수 없고, 맛의 깊이로는 홍차보다 못하며, 감미로운 향기에는 청차와 비교되지 못했었다.
그랬던 보이차가 2010년을 전후해서 중국 대륙의 주목을 받아 갑자기 인기가 급상승하게 되었다. 만들어진 그해에 마시고 마는 다른 차류와 달리 몇십 년을 두고 마셔도 되는 후발효차의 가치 때문이었다. 보이차는 만들어진 그 해에 향미가 판가름되는 게 아니라 묵히면서 변화되는 맛을 즐길 수 있는 차로 매력적인 투자의 대상이 되었다.

그러다 보니 찻잎이 가진 성분에서 향미가 두드러진 특정 산지의 차에 투자가 집중되었다. 처음에는 노반장이 타깃이 되었다가 넘치는 수요에 투자 대상 산지가 점점 더 확대되었다. 2015년을 기점으로 보이차 가격이 급상승하게 되면서 새로운 산지의 이름이 속속 나타나게 되었다. 노반장, 만송, 빙도노채, 석귀 등이 유명 산지로 고수차는 품귀 현상이 생기는 지경에 이르렀다.
다른 차류는 구입한 그 해에 다 마시지 못하고 이듬해에 새 차가 나오면 버려야 한다. 그런데 보이차는 유통기간 없이 소장 연수만큼 값이 더 오르는 데다 수령 백 년 이상인 고차수는 한정되어 생산량이 적어서 특정 산지 차의 주가는 해마다 상종가를 치고 있다. 지금은 노반장이나 빙도노채 등 몇몇 특정 산지 차는 진품 여부를 가려야 할 만큼 희소가치가 있어서 소장하는 것으로 차부심 (茶負心)을 가져도 될 정도이다.
셰프는 식재료 본연의 맛을 살려 최고의 요리를 만들어내겠다는 일념을 굽히지 않았지만 손님의 입장에서 한발 뒤로 물러섰다. 그는 음식을 내면서 MSG를 담은 통을 식탁에 비치하고 기호대로 넣어 먹도록 안내했다. 그의 요리에 MSG를 넣어서 먹더니 사람들은 역시 대단한 셰프라며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그런데 시간이 가면서 MSG를 넣지 않고 먹는 사람들이 늘게 되었고 그 셰프가 추구하는 식재료 고유의 맛이 드러내는 음식의 가치를 아는 사람들이 줄을 잇게 되었다.
보이차는 찻잎을 최소한으로 가공해서 만드는 차라서 찻잎 본연의 향미를 음미할 수 있다. 그래서 보이차는 다른 차와 달리 향과 맛이 자극적이지 않다. 보이차 향미는 은근하지만 산지마다 다른 고유의 특징과 수령이나 채엽 시기에 따라 몸으로 다가오는 반응도 다르게 느낄 수 있다. 보이차를 마시게 되면 다른 차류의 차에 손이 잘 가지 않는다는 사람이 많다. 제다 기술에 의해 만들어진 향미는 구감과 후각에 그치지만 보이차는 찻잎의 순수한 향미를 온몸으로 받아들이게 되기 때문이지 않을까 싶다.
여성경제신문 '더봄' 연재-'무설자의 보이차 이야기' 14
원문읽기 : https://www.womaneconomy.co.kr/news/articleView.html?idxno=226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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