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보이차에 대해 가르침을 주셨던 분은 이제 고인이 되셨다. 그분은 오래 묵힌 보이차인 노차를 즐겨 마셨다. 만든 지 30년 이상 된 생차를 노차라고 하는데 찻값도 비싸거니와 진품을 알아보는 게 더 어렵다. 그렇지만 3년 전에 마셨던 차의 맛을 기억해 내는 분이었으니 그에게는 노차의 진품 여부는 별 문제가 아니었다.
이 분이 몹쓸 병을 얻어 세상을 떠나기 전 몇 달을 앞두고 홍인이라는 노차를 볼 기회가 있었다. 홍인은 1950년대에 만들어졌는데 노차를 대표한다고 볼 수 있다. 이 분이 홍인을 마셔보지 않았을 리 없었겠지만 온전하게 보관되어 개봉되지 않은 차는 처음이었다. 그는 지금 마셔볼 수 있는 최고의 노차인 홍인을 보러 가면서 명대 골동품 찻잔을 선물로 준비했다고 한다.
노차라고 하는 오래된 보이차는 어떤 차일까?
노차(老茶)는 한자 뜻 그대로 만든 지 오래된 보이차를 그렇게 부른다. 최근 들어서는 노백차, 노우롱차 등으로 다른 차류도 오래 묵힌 차를 노차라고 부르고 있다. 그렇지만 노차라는 말을 쓰게 되었고 생산연도를 공식적으로 따지는 차는 보이차이다. 물론 보이차와 함께 후발효차로 분류되는 복전 등의 흑차류도 노차 개념을 공유하고 있다.
보이차에서 노차의 가치는 상상을 뛰어넘는다. 최근 우리나라에서 있었던 노차 경매에서 홍인이 2억천만 원으로 낙찰되었다고 한다. 보이차를 잘 모르는 사람들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보이차 노차 가격은 날이 갈수록 오르고 있다니 마셔볼 기회를 어떻게 가질 수 있을까?
그런데 우리가 즐겨 마시는 녹차나 홍차, 우롱차는 만든 당해가 지나면 시장에서 유통되지 못한다. 만든 그해가 지나면 못 마시는 게 아니라 새 차가 나오면 더 이상 팔리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보이차는 올해 나온 차보다 만들어진 기간이 오래될수록 더 비싸게 거래된다. 그래서 보이차는 재고가 없다고 하며 팔리지 않아도 잠재 가치는 더 높아진다고 한다.
노차를 대표하는 홍인은 1950년대에서 20년간 생산되었으니 50년 이상 묵은 차이다. 보이차는 2010년 전후가 되어서야 중국 대륙에 투자 가치가 알려지게 되었고 윈난에 자금이 들어오면서 찻값이 폭등했다. 노차는 더 이상 만들 수 없다는 희소가치 때문에 시간이 갈수록 가격이 더 오르고 있는 실정이다. 그런데 시중에는 90년대 차가 많이 나돌고 있는데 그 차들은 어디에서 보관되었다가 나타나는 것일까?
노차 때문에 나도는 수많은 가짜 보이차
홍인으로 대표되는 인급 보이차는 중차패 포장지에 싸져 있다. 전문가가 아니면 진품 여부를 알 수 없다 보니 가짜 보이차라고 하는 방품이 많이 나돌고 있다. 오래된 차처럼 보이도록 위조된 포장지와 습도와 온도를 조절해서 발효를 시켜 오래된 차처럼 만든다. 노차를 마셔본 적이 있는 사람들도 감쪽같이 속을 정도로 교묘하게 만들어낸다고 한다.
진품 홍인을 마셔보았던 필자는 보이차 애호가들이 왜 노차에 열광하는지 충분히 이해가 된다. 가끔 노차 전문가들은 소장자들과 함께 인급차 위주로 마시는 다회를 열기도 한다. 다회 참석 회비가 수백만 원에 이르는 데도 금방 마감되어 버린다. 심지어 중국에서도 참석하는 사람이 있으니 노차의 향미가 어떤지는 마셔본 사람만 알 수 있을 것이다.
최근에 경매에서 홍인이 2억천만 원에 낙찰되었다고 하는데 이 차 5g을 우린다고 하면 300만 원가량 된다. 노차 다회는 5명 전후로 참석하는데 홍인급 노차를 몇 종류 마신다고 하면 회비를 얼마나 받아야 할까? 노차의 진미(珍味)를 아는 사람에게는 회비를 문제 삼지 않을 것이다. 다만 그 자리에 나올 노차가 과연 어떤 향미를 보일 것인지가 중요할 뿐이다.
노차는 후발효차로서 보이차의 정점(頂點)이라고 할 수 있다. 문제는 보관된 세월도 그렇거니와 어떤 모료를 썼는가에 달려 있을 것이다. 단지 오래된 차라는 것에 노차의 가치를 매길 수는 없으니 누구나 가치에 동의할 수 있는 홍인 등의 진품 여부를 어떻게 인정받을 수 있어야 할 것이다. 명품이라야 방품이 나올 수 있으니 헤아릴 수 없는 노차가 나돌고 있는 게 보이차의 명암이다.
보이차는 후발효차로 오래 보관하며 마실 수 있는 차
보이차를 마시는 사람이라면 명심해야 할 것이 후발효차에 대한 정의를 제대로 이해해야 한다는 점이다. 후발효차는 묵혀서 마시는 차가 아니라 오래 두고 마셔도 괜찮은 차로 받아들여야 한다. 물론 보이차는 모료에 따라 만들어서 오래 둘수록 생산된 때보다 쓰고 떫은맛이 줄어들어 더 좋은 향미를 음미할 수 있다.
그렇지만 보이차는 후발효차라서 만들어진 그 해는 쓰고 떫은맛이라 마시기 어렵고, 오래 보관해야 좋은 향미를 가진 노차가 된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 호박에 줄을 긋는다고 수박이 되지 않듯이 지금 마셔서 만족할 수 없는 차가 시간이 지나 좋은 차가 되기는 어렵다. 즉 보이차는 산지(産地), 수령樹齡, 채엽 시기에 따라 만들어지는 모차가 근본이 되기 때문이다.
지금 마셔도 좋은 차가 시간이 지나면 변화되는 맛이 좋은 차로 후발효차의 특성이 보이차가 가지는 장점이라고 알면 좋겠다. 즉 보관 기간의 제한 없이 오랫동안 언제 마셔도 좋은 차가 후발효차의 정의로 받아들여야 한다. 80년대, 90년대 차라고 유통되는 오래 묵은 차에 대한 환상이나 기대는 금물이다.
후발효차로서 보이차의 올바른 정의는 ‘當年好茶 經年新茶’라는 말이 가장 어울린다고 본다. 이 말은 보이차 전문회사 오운산의 캐치프레이즈인데 ‘그 해에 만들어 그 해에 맛있게 마실 수 있는 차, 세월이 흐르면 새로운 맛으로 다시 태어나는 차’라는 의미이다. 묵히기만 하면 무조건 가치가 오르는 게 노차가 아니라 오래 두고 언제 마셔도 좋은 차가 후발효차로서 보이차가 가지는 진정한 가치라고 볼 수 있다.
회복될 수 없는 병을 얻어 자신의 명이 언제쯤인지 알고 있었던 선배는 홍인의 포장지를 벗겨 보고 싶었다. 그 간절한 눈빛을 읽고는 그 자리를 주선했던 선배의 친구는 홍인을 가진 분께 당부를 드렸다. 그렇지만 노차의 포장지를 벗기게 되면 훗날 차를 팔게 되면 진품 여부를 의심받게 된다. 그렇지만 홍인의 임자는 흔쾌히 그 부탁을 들어주었고 선배는 홍인의 맨몸을 볼 수 있었다. 진품을 알아볼 수 있는 선배는 홍인을 보고 온 그날부터 잠을 이룰 수 없었다.
죽는 날을 받아두고 하루씩 명을 줄여가는 그때 선배의 일념은 그 홍인을 마시고 싶다는 마음뿐이었다. 마침내 그의 친구에게 홍인의 가격을 물어보라고 부탁했는데 선배의 형편으로는 선뜻 구입할 수 있는 찻값이 아니었다. 며칠을 고민하다가 마침내 구입하기로 결심하고 전화를 넣었지만 전날 중국에서 온 사람들이 전량 사갔다고 했다. 그리고 그때 포장지를 벗긴 홍인을 천만 원이 깎였다고 했는데 주인은 그렇게 될 줄 알면서도 허락을 했던 것이었다.
오래된 보이차, 노차는 돈을 주고 살 수 있는 게 아니라 인연이 닿아야만 만날 수 있다.
무 설 자
여성경제신문 '더봄' 연재-'무설자의 보이차 이야기' 13
원문읽기 : https://www.womaneconomy.co.kr/news/articleView.html?idxno=226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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