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집 짓기에 관해 문의해 보고 싶다는 분이 사무실로 찾아왔다. 집을 짓기 위해 땅을 보고 있는데 후보 대지가 있어서 자문을 받아보고 구입 여부를 판단하려 한다는 것이었다. 그밖에 집을 짓기 위한 절차나 공사비 등 제반 사항을 들어보고 싶다고 했다. 원래는 이런 상담에도 비용을 받아야 하지만 설계 의뢰를 받기 위한 서비스로 무상으로 진행하는 게 보통이다.
대지는 면적이 90㎡, 건폐율을 적용하면 한 층에 54㎡를 지을 수 있으니 협소주택으로 지을 조건이었다. 도로가 북동쪽에 있어서 햇볕을 집에 들이는 게 쉽지 않은 대지이다. 그분께 집을 지어서 살려는 특별한 이유가 있는지 묻고 부부가 의논을 잘해서 결정하라는 자문을 해드렸다. 아파트 생활에 익숙한 우리나라 사람들은 내 집을 짓는 게 얼마나 지난한 일인지 당해보지 않으면 알지 못한다.
아파트 생활을 포기하고 우리 식구들만의 보금자리를 단독주택으로 지어보려는 건 인어공주가 다리를 얻어 사람이 되려는 것과 같다. 왕자님을 사랑하게 된 인어공주는 사랑을 얻기 위해서 벙어리가 되어야 하고 한걸음 내딛을 때마다 바늘에 찔리는 통증을 감내하며 사람이 되었다. 순간순간의 고통도 감내해야 하지만 왕자님의 사랑을 얻지 못하면 물거품이 되고 만다는 무서운 조건까지도 받아들였다.
왜 편하게 살 수 있는 아파트 생활을 포기하고 집을 지어서 살려하는 것일까? 아파트에 산다는 건 편할 수는 있지만 집이 주는 행복을 얻을 수 없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아무튼 우리 식구가 살 집을 짓는다는 건 오로지 우리집에서 행복하게 살 수 있다는 확신이 필요하다, ‘우리집이 아니면 집에서 행복할 수 없다’는 나만의 주거 철학이 확고하지 않은 한 집 짓기는 시도해서는 안 된다는 결론을 그분께 전해드렸다.
설계를 의뢰받아야 할 일이 생기는 건축사가 이런 얘길 상담이라고 하다니 어리석은 일이지 않은가? 하지만 사랑을 얻지 못하면 물거품이 되어도 좋다는 큰 결심이 필요한 게 우리집을 짓는 일이라고 알려주는 것도 건축사라는 일의 도덕성이라는 게 내 생각이다. 땅을 구입하고 찾아온 분이라면 이런 얘길 할 필요가 없었겠지만. 상담 잘해줘서 고맙다고 하며 아내와 의논을 잘해보고 집을 짓게 되면 꼭 찾아오겠다는 말을 남기고 그분은 돌아갔다.
몇 십만 원으로 물건을 살 때도 사용 후기를 살피고 가격 비교 정보를 꼼꼼하게 살피지 않는가? 물건은 잘못 구입했다 싶으면 반품할 수도 있고 중고 장터에 내놓을 수도 있다. 그렇지만 집은 지어서 살아보다가 후회하면 그런 낭패가 없다. 마치 인어공주가 사랑을 얻지 못하고 물거품이 되고 마는 결론에 이를 수도 있다. 우리집에서 행복할 수 없다면 우리 식구의 행복은 없다는 게 내가 집을 설계하는 건축사로서의 확고한 생각이다. 그렇지만 집을 짓고 살아보니 우리 식구의 삶이 행복하지 않다면 그야말로 물거품이 되고 만 인어공주가 되고 마는 것이 아닌가?
그동안 많은 단독주택과 상가주택을 설계해 집을 지어 살고 있는 건축주 분들과 좋은 인연을 이어오고 있다. 아파트보다 우리집을 지어 살아야 한다는 생각이 틀리지 않았다며 우리 식구들은 행복하게 살고 있다는 얘길 전해준다. 집은 삶을 담는 그릇이므로 행복한 삶은 그에 맞는 집에 담긴다. 부디 어제 다녀간 그분도 식구들이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우리집'을 지어서 살 수 있길 바란다.
무 설 자
무설자(김정관)는 건축사로서 도반건축사사무소를 운영하고 있으며,
집은 만들어서 팔고 사는 대상이 아니라 정성을 다해 지어서 살아야 한다는 마음으로 건축설계를 업으로 삼고 있습니다.
어쩌다 수필가로 등단을 하여 건축과 차생활에 대한 소소한 생각을 글로 풀어쓰면서 세상과 나눕니다.
차는 우리의 삶에서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이만한 매개체가 없다는 마음으로 다반사의 차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집을 지으려고 준비하는 분들이나 이 글에서 궁금한 점을 함께 이야기를 나눌 수 있습니다.
메일:kahn777@hanmail.net
전화:051-626-62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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