茶 이야기/에세이 차 이야기

2023년 癸卯年, 첫날에 나를 위해 마시는 차

무설자 2023. 1. 2.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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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설자의 에세이 차 이야기 230102

2023년 癸卯年, 첫날에 나를 위해 마시는 차

 

 

 

오늘은 2023년 1월 2일, 올해 첫 근무일이다. 매주 월요일은 한주를 시작하는 회의를 하지만 오늘 회의는 시무식으로 한해의 각오를 다지는 특별한 자리이다. 시무식을 마치고 올해 사무실에서 마시는 첫차로 대평 '범두호'를 골랐다.

 

매일 서너 종류의 차를 마신다. 어떤 차를 마실까 고르는 것도 200종이 넘는 보이차를 두고 마시는 내게는 흥미로운 일이다. 200 종이 넘는 차가 있지만 자주 마시는 차는 그중에 30종 정도 되는가 보다. 오늘은 한해 근무를 시작하는 날이니 특별한 차를 마셔야겠기에 신경 써서 고른 차가 범두호이다. 범두호는 보이차의 산지 중에 인기가 있는 곳이라 값이 비싼 차이다. 일용할 양식이 아니라 기념일 같은 날에 먹는 특식 같이 마실 차이다.

 


차생활에 있어 보이차는 다른 차와 달리 물보다 더 자주 마시게 된다. 녹차는 일본에서 다도로, 홍차는 영국에서 격식을 갖춰 마시는 쪽으로 인식되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기호음료보다 예법이나 절차에 치중하게 되는 번거로움에 부담을 느끼게 되어 우리나라에서 차생활의 일상화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 하지만 보이차는 그런 형식에 매몰되기보다 마시는 그 자체를 즐길 수 있어서 좋다.


세끼 먹는 밥을 맛을 따져 이러니 저러니 투정을 한다면 어떻게 식탁을 차릴 수 있을까? 매일 먹는 밥은 건강한 몸을 지킬 수 있도록 끼니를 거르지 않으면 그만이다. 사실 식구들의 식사를 책임지는 입장에서 아침저녁에 차릴 메뉴를 정하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신경 쓰이는지 모른다. 주면 주는 대로 잘 먹는 게 밥상을 차리는 사람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가 아닐까 싶다.  


매일 마시는 차만 해도 그렇다. 내가 가지고 있는 차라면 어떤 걸로 우려도 그냥 마시면 그만이다. 그러니 선택의 폭을 너르게 가질 수 있게 종류가 많을수록 좋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보이차는 선택의 여지를 너르게 가질 수 있는 참 좋은 차라고 하겠다. 보이차를 일 년만 마셔도 최소 열 종류 이상 가지게 되니 십 년이면 백 종류 넘게 가지고 매일 차를 마시는 게 보통이다.

특별하다는 건 일상에서 얻을 수 없는 게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

 

그런데 매일 집밥만 먹고사는 건 아니니 주말이나 휴일은 입을 즐겁게 할 특식을 먹는다. 집에서 먹을 수도 있고 심사숙고해서 맛집을 찾아가기도 한다. 이 날은 밥값을 여유 있게 치를 마음을 먹고 맛을 따져 메뉴를 선택한다. 그래서 음식 맛도 따지지만 특별한 날이라면 식당의 분위기가 더 중요할 수도 있다. 특별하다는 건 일상에서 얻을 수 없는 게 많으면 많을수록 좋으니까.


차도 밥과 다르지 않아서 특별한 날에 마시는 게 따로 있다. 일상적이지 않은 날이란 어떤 날일까? 첫눈이 내린 날, 빗소리가 유난히 마음을 흔드는 날, 달빛이 휘영청 밝아 창 안으로 드는 날에 혼자 차를 마시는데 어떻게 아무 차나 마실 수 있을까? 손님이 온다는데 그가 차를 마시는 사람이라고 하는데 어떤 차를 내어야 할까? 내가 차를 마신 지 오래되었다는 걸 아는 귀한 손님이 오는데 내어야 할 차는?


오늘은 한 해를 시작하는 날인데 어떻게 손을 뻗으면 잡히는 아무 차나 마실 수 있을까? 대평 범두호는 茶中至尊차중지존이라 부르는 빙도차의 산지인 빙도노채의 인근에 있는 파왜차이다. 빙도노채 차는 가격이 넘사벽이라 탐내기 어려우니 빙도차구의 다섯 곳 중의 한 곳인 파왜차가 내 손에 있다. 올 한 해도 열심히 살아야 하니 그 첫날에 나를 위한 차 한 잔을 빙도 차구의 파왜를 우려 마신다.

 


2023년 癸卯年계묘년,

온 세계가 힘들다고 아우성이니 험난한 한 해가 될 것이다.

어려움 없이 지날 수는 없을 테니 용기 백배해서 잘 이겨나가도록 낸 용기를 이 차 한 잔에 담아 마신다.

올해도 힘들 때도 마시고, 힘낼 때도 마시고, 좋은 일에도 마시면서 차가 주는 기운으로 잘 이겨나갈 수 있을 것이다.    

 

무 설 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