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설자의 에세이 차 이야기 230131
코로나에 걸리고 나니 차맛이
주변에 코로나에 걸리지 않은 사람을 찾아보기 어려운데 아내와 나는 용케 잘 피해 다녔다. 코로나 얘기가 나오면 우쭐한 마음까지 들 정도였는데 이제 자랑거리가 없어졌다. 아내가 기침을 좀 오래 한다 싶더니 코로나 진단을 받아왔는데 나도 다음날 진단키트로 검사를 해보니 두 줄이 나왔다.
목감기 같은 증상에 몸살기가 좀 있는 정도로 열도 없었다. 코로나 초기의 무시무시하던 그 균은 이제 사라진 모양이다. 이제 코로나는 엔데믹으로 분류되는 분위기라 감기 정도로 받아들여도 될 듯하다. 실내 마스크 착용도 해제되었으니 두려워할 병은 아니라고 보아도 되겠다.
가벼운 감기정도로 넘어가는가 싶었는데 몸으로 느낄 수 있는 증상 중의 하나가 뚜렷하게 달라진 게 있었다. 코로나에 걸리면 냄새를 맡기 어려워 음식 맛을 모르겠다고 하는 걸 들었다. 그런데 나는 식욕이 좀 떨어지긴 했어도 음식을 먹는 건 괜찮았는데 차를 마시면서 그 차이를 알 수 있었다.
보이차에서 淸茶청차라고도 부르는 생차를 마시면 단맛을 느낄 수가 없었다. 생차를 마시면서 단맛은 미미하게 다가오고 쓴맛이 상대적으로 너무 강하게 느껴진다. 풍부한 단맛과 쓴맛이 조화를 이루어야 제대로 차를 음미할 수 있다. 그런데 단맛을 느끼기 어려우니 차를 마시기가 힘들다.
생차는 단맛과 쓴맛의 조합이 예민하게 다가오는데 향미의 균형이 깨어져 다가오는 셈이다. 이 차도 마셔보고 저 차도 마셔보았지만 소용없었다. 시도 때도 없이 하루 내내 마시는 차인데 차맛이 이 지경이니 일상의 즐거움이 사라져 버렸다. 코로나로 인해 내가 겪어내야 하는 가장 큰 시련이다.
어차피 생차를 마시기는 틀렸고 숙차는 괜찮을까? 살짝 긴장을 타면서 숙차를 우렸다. 숙차는 생차에 비해 쓴맛이 덜한데 괜찮았으면 좋겠다. 숙차도 차맛이 좀 덜하기는 했지만 생차보다는 마실 만했다. 숙차보다 단맛이 더 좋은 滇紅전홍-운남 홍차는 어떨까 싶어 마셔보니 괜찮았다.
생차보다 진한 숙차나 홍차는 그나마 마시기가 수월했다. 요즘은 숙차는 아침에 한번 마시고 그 나머지는 하루 종일 생차만 마셨는데 당분간 생차는 멀리하게 생겼다. 근래에는 생차를 마시느라 밀쳐두었던 숙차와 홍차를 단맛이 더 좋은 걸로 찾아 마셨다.
코로나에서 벗어나도 입맛이 정상적으로 돌아오는데 시간이 좀 걸린다고 한다. 감기증상이 물러나면서 밥을 먹는 건 지장이 없는데 아직 차맛은 돌아오지 않고 있다. 차맛을 음미하는 감도가 예민한 편이 아닌 내가 이런데 차 향미에 민감한 사람은 참 힘들지 않을까 싶다. 밥은 미루어도 차를 마시지 않으면 안 되는 사람에게 코로나는 그 어떤 병보다 치명적이 될 수도 있겠다.
나의 코로나 치유는 생차의 향미를 음미할 수 있는 그날이라야 완전히 끝났다고 할 수 있겠다. 그나마 숙차와 홍차를 마실 수 있으니 차맛에 예민하지 않은 내 입맛이 참 다행이지 싶다. 이제 할까 말까 망설였던 코로나 백신 4차 접종은 안 맞아도 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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