茶 이야기/에세이 차 이야기

가을밤에 홀로 마실 차가 있는지요?

무설자 2022. 10. 5. 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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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설자의 에세이 차 이야기 221005

가을밤에 홀로 마실 차가 있는지요?

 

 

 

아이의 성적을 보면 잘하는 과목과 못하는 과목이 있다. 한국의 교육은 베스트를 지향한다. 그래서 못하는 과목의 성적을 올리기 위해 아이를 학원에 보낸다. 유대인은 다르다. 못하는 과목의 성적을 끌어올리려고 하지 않는다. 대신 아이가 잘하는 과목을 갈고닦아서 세상에서 우뚝 서는 사람이 되라고 한다. 베스트는 한 반에 한 명만 나오지만, 유니크는 한 반의 모든 학생이 될 수 있다.        - 홍익희 교수  

 

   

보이차는 다른 茶類차류와 달리 구입한 뒤에 평가를 받는다. 그런데 그 평가가 객관적일 수 없으니 마시는 사람마다 다르게 평이 나올 수밖에 없다. 특히 가성비라는 요인이 있어서 싸게 구입하다 보면 낮은 평가에도 불구하고 대부분 시간이 지나면 좋아질 거라며 그냥 넘어간다. 내 입맛에 맞지 않아도 두고 보자며 쿨한 결론을 내리는 게 보이차이다.     

 

보이차의 특징이자 혼란에 빠지게 하는 게 바로 객관적인 평가를 내리기 쉽지 않다는 것이다. 보이차의 지존이라 할 수 있는 남쪽의 노반장, 북쪽의 빙도를 마셔보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편당 300~500만 원이나 하는 이 지존 보이차를 찻자리에서 맛 본 게 아니라 대부분 몇 편씩 소장하고 있다는 게 참 아이러니다. 하긴 포장지에 적힌 이름은 노반장 빙도지만 가격은 몇 만 원으로 구입했을 것이다. 그러니 지존이라는 말에 어울리는 향미를 맛보지는 못했을 것이다.     

 

보이차로 차생활을 시작해서 몇 년이 지나면 소장한 양이 백여 편은 기본이고 수백 편씩 방을 채우다시피 하는 게 보통이다. 보이차를 마시면서 구입하는 차마다 만족도가 높지 않으면서 자꾸 구입하는 이유가 있다. 다른 차에 비해 아주 저렴할 뿐 아니라 후발효차라서 시간이 지나면 좋아진다는 말을 믿기 때문이다. 소위 가성비와 후발효라는 치명적인 오류, 함정에 빠져나오지 못하는데 그게 함정 인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보이차를 구매할 때 빠지기 쉬운 함정은 가성비와 후발효차라는 말이다

 

보이차의 기본 형태인 병차餠茶 한 편의 무게는 357g이다. 물론 200g, 250g, 1kg 등 다양한 단위로도 나온다. 한 편의 가격이 5만 원 이하가 주로 많고 10만 원만 넘어도 비싸다는 반응을 보이고 백만 원 이상이면 넘사벽으로 넘겨 버린다. 과연 357g에 10만 원도 비싸다고 하면 그 차는 만족도를 보장할 수 있을까?

     

우리나라 녹차 가격에 비교를 해보면 우전차는 80g에 십만 원 정도라야 기대치에 미칠 수 있다. 이를 보이차의 무게로 환산하면 네 편 정도가 되니 40만 원이 된다. 만약 357g 병차 한 편에 30만 원 정도로 구입한다면 구입하는 차마다 향미에 만족할 수 있을 것이다. 상인은 구입하는 사람이 있어야 물건을 들여오게 되니 싼 차보다 좋은 차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이 늘어나길 바란다.     

 

보이차를 구입하는 단위는 보통 편이 아니라 통이다. 한 통은 일곱 편인데 추가로 한 편을 더해서 한 통 한 편으로 구입한다. 한 편은 맛보기로 마시고 한 통은 長期장기로 보관하기 위함이다. 그런데 대부분 보이차 마니아들 한 편을 다 마시기도 전에 또 한 통 한 편을 구입하는 구매 패턴을 가지고 있다. 이렇게 구입하다 보니 죽순껍질로 포장된 통이 계속 쌓이고 한 편도 제대로 마시지 않아 양은 많은데 손이 가는 차는 없다고 푸념하게 된다.     

 

보이차에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은 더 많이 가지려고 하기보다
지금 마시는 차에 만족하는 일이다

이제 보이차도 양보다 질로 구입하도록 생각을 바꿨으면 좋겠다. 한통 한편을 구입하는 비용으로 두 편을 사면 차생활이 어떻게 바뀌게 될까? 우선 차를 심사숙고하여 구입하게 될 것이다. 50만 원을 기준으로 구입한다면 한통 한편은 편당 6만 원, 두 편은 편당 25만 원이니 네 배가 차이가 난다. 당연히 비싸면 좋은 차가 아니냐고 얘기할 수도 있지만 마실 때마다 만족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가 들 것이라 말해야 한다. 한편은 마시고 다른 한편은 보관하게 되는데 차가 줄어드는 게 안타까워하며 마시게 된다.     

 

가성비를 기준으로 차를 구입하면 수장된 양을 자랑하게 될 것이다. 그렇지만 꼭 마시고 싶은 차를 심사숙고해서 사게 되면 차생활의 즐거움을 얘기하지 않을까 싶다. 내가 소장하고 있는 차의 향미를 잘 알면 마실 때마다 선택하는 즐거움을 누릴 수 있을 것이다.     

 

날씨에 따라 골라 마시게 되고, 기분에 따라 선택하는 차가 달라질 것이다. 꽃향기 날리는 봄날 오후, 긴 장마로 비가 그치지 않는 여름날 아침, 단풍이 짙어져 낙엽이 흩날리는 소리에 마음이 내려앉는 가을날 밤, 앙상한 나목이 보이는 창가에 앉아 인생을 음미하게 되는 겨울 저녁에 어떤 차를 고르게 될까?     

 

 

 

차를 많이 가지고 있는 걸 뽐낸다면 차 마시는 사람이 아니다. 차는 찻잔에 따를 때 제 가치를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유난히 무더웠던 여름이 지나고 소슬한 바람이 창을 넘어 들어오는 가을밤, 어떤 차를 마시면서 홀로 있어 더 좋은 계절의 흥취를 누리고 있을까?  

 

 

무 설 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