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설자의 에세이 차 이야기 220831
내가 꿈꾸는 찻자리
오래전에 부산 도림원에서 노차의 지존이라 할 수 있는 홍인을 마셨다. 다연회 다회 찻자리에 도림원 원장님께서 그 귀한 차를 내어주셨다. 그 전에도 인급차를 마셔 보았지만 그날 마신 홍인은 거의 십 년이 지난 지금도 잊을 수 없는 향미였다.
그 뒤에 도림원에 들러서 원장님께 조심스레 홍인 얘기를 꺼냈다. 사실 함부로 청할 수 없이 귀한 차지만 원장님과의 친분을 내세워 한번 더 마셔볼 요량이었다. 그런데 원장님은 그날 우렸던 홍인이 소장하고 있었던 마지막 차였다고 했다.
차 가격으로 치자면 그날 원장님이 내주셨던 양이면 기백만 원은 족히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홍인, 그 귀한 차를 함께 마실 수 있는 상대가 되었다니 전율에 가까운 기분이 들었다. 귀한 홍인을 마셨다는 사실보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자리에 내가 있었다는 게 보통 일이 아닌 것이다.

내가 만약 그렇게 귀한 차가 한번 우릴 양이 남았다면 누구와 함께 마셔야 할까? 이 글을 쓰면서 제 앞에 앉을 사람이 누구일지 생각해 본다. 그 자리에 앉을 사람은 여러 명이어도 되겠지만 딱 한 사람과 마시고 싶다.
그 차는 그 자리에서 우리고 나면 다시는 마셔볼 수 없게 된다. 아마도 그런 자리라면 차를 다 우려낼 시간 내내 말을 하지 못할지도 모르겠다. 말없이 함께 마셔도 어떤 말보다 더 깊고 진한 다담이 오가는 것과 진배없을 것이다.
내가 꿈꾸는 찻자리는 어떤 분위기일까? 아마도 말없는 말로도 충만한 대화가 될 수 있는 다우와 함께 하는 자리일 것이다. 그 자리에 어울리는 차가 아직 없지만, 함께 앉아서 말없는 말을 나눌 다우를 정하는 게 쉽지 않을 것 같다.
말없는 말로도 마음이 충만할 수 있는 차와 다우,
내가 꿈꾸는 그 자리에 언제 앉을 수 있을까?
무 설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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