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이야기/행복한 삶을 담는 집 이야기

밥에 대하여-테이블이 있는 자리가 소중한 이유

무설자 2022. 3. 28. 1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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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밥이다     

 

밥이 인생이라고 하니

쯧쯧 혀를 차는가?

인생이라 큰 그림을 그리며 살아왔지만

눈물 묻은 빵에 인생이 있는 걸 뒤늦게 알았다네

     

먹기 위해 산다고 하니

눈을 돌리는 사람이여

더 살아보면 알게 될 일이라

절실한 일이 그밖에 또 없다는 걸 깨닫게 될 거라네

    

밥 먹는 그 자리

어떤 이는 죽지 못해 먹는다고 하니

밥 먹으며 웃으려면 살아온 그만큼

딱 그만큼 웃을 수 있다는 걸 알게 될 걸세

    

밥은 인생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인생을 살아보면 밥만큼 가질 수 있는

딱 그만큼이 행복이라네

 

              

밥이 인생이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나이를 먹어갈수록 밥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걸 알게 된다. 먹기 위해서 산다고 하니 안타깝다면서 혀를 찰지 모르겠지만 살아볼수록 밥 먹는 만큼 소확행인 건 없다. 오늘 한 끼, 다시 돌이킬 수 없는 소중한 시간이다.

     

누구든지 밥을 먹지 않고 사는 사람은 없다. 아침밥을 거르는 사람이 많다고 하지만 그 사람이 바라는 바가 아닐 것이다. 아침을 먹지 않고 나온 사람이 가장 부러워하는 사람은 배를 든든하게 채우고 집을 나선 사람일 것이다.     

 

한동안 인기가 있었던 “밥은 먹고 다니냐?”라는 광고 멘트가 있었다. 경상도 말로 하면 “밥은 뭇나?”일 테고 더 줄이면 “밥은?”이 된다. 늙으수레한 할머니가 “밥은 무꼬 댕기나?‘라고 하면 눈가가 촉촉해지는 사람이 적지 않을 것이다. 어떤 멘트일지라도 밥을 먹고 다니느냐는 이 말에 마음이 북받쳐 오르게 되는 것일까?

    

점심은 대부분 밖에서 먹으니 누구든 별 일이 아니겠지만 빈 속에 물 한 잔 마시고 나서는 아침 출근길이 즐거울 수는 없을 것이다. 꼭 밥을 지어먹지 않더라도 식탁에 앉아서 아침을 먹을 수 있는 사람은 하루의 출발부터 발걸음이 가볍다.  

   

오래전에 기업체 정기교육 프로그램에 강의를 가서 교육생들에게 이런 질문을 했었다. “열심히 살고 있으신데 그렇게 사는 이유가 궁금합니다.” 내가 생뚱맞게 던진 질문에 답을 하는 사람이 없어서 몇 사람을 지목해서 대답을 요구했다. 대부분의 답이 행복해지기 위해서라는 말이었다. 내가 다시 그들에게 그 행복이라는 말을 구체적으로 얘기해보라고 했다. 이 질문에는 누구도 얘기하지 못했다.  

   

나는 그들에게 내가 생각하는 행복이 무엇인지 이렇게 말했다. 그 자리에 참석했던 사람들은 대부분 여자들이었다. “혹시 오늘 아침밥을 식구들과 함께 먹고 나온 분이 있으시면 손을 들어 보시겠습니까?” 몇 사람이 손을 들기는 했지만 대부분은 머리를 숙이고 있었다. “저는 식구들과 아침밥을 먹는 것보다 더한 행복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나의 이 말에 다들 수긍하는 분위기였다.   

  

내가 주택을 설계하면서 가장 관심을 많이 가지는 자리는 테이블을 놓는 곳이다. 굳이 식탁이라고 쓰지 않고 테이블이라고 하는 건 거기서 밥만 먹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테이블은 주방 가구가 아니라 생활 가구가 된다. 우리집에서 식구들이 마주 보고 앉을 수 있는 유일한 자리가 바로 테이블이니 얼마나 중요한 가구인가?     

 

삼시세끼라는 말에는 밥을 잘 챙겨 먹는다는 의미가 들어있다. 밥을 먹는 자리에서 식구들의 일상적인 대화가 이루어지게 된다. 그러니까 밥을 먹는다는 건 곧 대화를 한다는 것이다. 집에서 밥을 먹지 않는다는 건 식구들의 대화가 없다는 것이나 다름없으니 그 집의 분위기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지 않을까?   

   

이 시대를 살아가면서 많은 사람들이 안고 있는 서글픔은 대화를 할 상대가 많지 않다는 데 있다. 혼자 사는 사람도, 부부만 사는 집에서도 대화 없이 사는 건 견디기 어려운 삶이다. 외로움은 우울증을 부르고 그 상태가 지속되면 병증으로 이어지게 된다.  

   

밥 먹었느냐고 물어오는 어머니의 목소리를 닮은 광고 멘트에 눈시울이 붉어지는 건 외롭기 때문이다. 배를 채우는 건 꼭 밥이 아니라도 되지만 마음을 채울 수 있으려면 누군가와 마주 앉아서 밥을 먹어야 한다. 혼자 먹는 밥, 식구가 아닌 가족으로 함께 먹지 못하는 밥은 사는 의미를 알지 못하게 한다.  

   

이제 글을 시작하면서 끄집어낸 말을 다시 되뇌어본다.    

   

밥이 인생이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나이를 먹어갈수록 밥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걸 알게 된다. 먹기 위해서 산다고 하니 안타깝다며 혀를 찰지 모르지만 살아볼수록 밥 먹는 만큼 소확행인 건 없다. 오늘 한 끼, 다시 돌이킬 수 없는 소중한 시간이다.